지난 5일, 전국 25개 로스쿨들의 정시모집 합격자 결과가 발표되었다. <법률신문>에 따르면,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법대생들이 전체합격자의 66%를 차지한다고 한다. 지금도 법대 출신이 사법 고시를 ‘독점’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그 ‘과점’마저도 로스쿨에서 깨진 셈이다.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이들을 법조계로 유인한다는 로스쿨 도입의 가장 주요한 논리가 숫자로 드러난 것이라고 봐야 할까.

하지만 현실을 그렇게 낙관하기만은 어려울 것 같다. 비법학 전공자의 합격 분포를 보면, 상경계열이 15.4%로 가장 높았고 사회계열 14%, 인문계열 12.9%, 공학계열 12.5%, 약학계열 3%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통계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미디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10년 뒤 사회 지배 구조를 내다볼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임은 확실한데 말이다.

▲ 12월 8일자 새전북신문 10면.
현재도 법관이 옷을 벗으면 삼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출세라는 농담이 있다고 한다. 법률가, 대자본, 대형로펌의 카르텔이 심각한 사회적 왜곡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 특검의 검사가 삼성의 법률 자문을 하는 살풍경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경계열자들의 로스쿨 대거 합격은 다른 계열 합격자 비율보다 가중치를 두어 읽어야 한다.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 가운데 상경계열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만큼 시험 응시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상경계열 출신들이 로스쿨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건 법조인과 자본의 친화력이 높아지고 있는 현재의 방증이자 10년 후 사회 지배 구조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상경계열 합격자 가운데는 공인회계사 자격증 보유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일각에서는 학비가 최대 3억 정도에 이르는 로스쿨의 운영 원리로 볼 때, 가난한 사람의 법조 진출이 원천 봉쇄된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나마 어느 가난한 ‘로스쿨 낭인’이 그 바늘구멍을 통과한다고 해도, 쌓여 있는 비용을 생각할 때 인권변호사나 노동변호사 같은 낭만적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지방로스쿨의 수도권 대학 출신자 합격비율이다. 수도권 대학에서 지방 로스쿨로 진학한 비율은 전북대 74%(59명), 경북대 73%(88명), 영남대 71.4%(50명), 전남대 67.5%(81명), 부산대 62.5%(75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소한 지방 로스쿨의 셋 중 둘 이상은 서울 출신이란 얘기다. 아예 지역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곳까지 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알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과 서울의 시각은 완전히 엇갈린다. 지역 일간지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비중 있게 다뤘다. 사설을 쓴 곳도 여럿이다. 대조적으로 서울 중앙일간지들은 일제히 침묵하거나 전혀 다른 소리를 해대고 있다. 새전북신문과 동아일보의 기사를 비교해보면 확연하다.

<새전북신문>의 사설은 지역의 박탈감을 그나마 정제된 형태의 언어로 뽑아낸 것일 테다. 이에 반해 문패 제목부터 ‘횡설수설’인 <동아일보> 육정수 논설위원의 칼럼은 제목 그대로 ‘횡설수설’ 하고 있다. 서울 출신들이 지방 로스쿨에 가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인지, 지역 균형 발전을 하지 말자는 얘기인지, 로스쿨 정원을 늘려 경쟁을 유도하자는 것인지.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횡설수설하니 도통 알 수가 없다.

▲ 12월 9일자 동아일보 30면.
이번, 수도권 출신의 로스쿨 독점의 함의는 명확하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의 막가파식 수도권 규제 완화 논리와 비슷하다. 강준만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지방은 식민지다. 바야흐로 서울공화국의 제도적 완성이다.

지역 일간지들의 지적과 항변은 정당하고 합당하다. 지역에서 로스쿨을 마친 많은 이들이 서울로 돌아갈 것이다. 지역에 닥친 의료 공백, 교육 공백이 법률 공백으로까지 심화될 것이다. 사회적 서비스의 근간이 스멀스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 공공성의 보루들이 무관심 속에 헐리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 도입 당시의 뜨거웠던 논란을 기억한다. 로스쿨 도입은 법조인의 경쟁력을 높이고, 배출을 늘린다는 취지였다. 설왕설래들이 많았다. 로스쿨이 법조기득권 세력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한 타협이란 비판이 거셌다. 그 논란은 ‘사법개혁’이란 슬로건으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로스쿨의 첫 번째 결과물이 나왔다. 합격자가 발표됐다. 결과는 어떠한가?

슬로건만 펄럭인 ‘사법개혁’이 서울의 지방 착취를 더욱 가속화하는 괴물이 되었다.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중앙 일간지는 왜 이렇게 조용한가? 서울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로 환원하며, 여유롭게 존재의 우위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 ‘지방’을 숙명적 패배자로 만들었다고 낄낄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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