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 자숙 기간을 거쳐 복귀를 하는 ‘루틴’을 보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친한 PD의 강력한 요청과 설득이라는 부연설명이 붙는다. 방송에 나와서는 여지없이 셀프디스를 ‘시전한다’. 이 허무한 자학은 탁월한 자기방어다. 잘못을 반성했으니 당신들은 이제 그만하시라는. 그래서 이 자학은 자기애로 귀결된다. 스스로를 잉여로 칭하는 것도 그 자체로 자기방어이며 충분히 효과적이다. 노홍철은 방송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였고, 매니지먼트와 전속 계약도 했기 때문에 방송 복귀는 애초에 시간 문제였다.

지난달 27일 방송분에서 노홍철은 운전할 수 있느냐는 외국인의 말에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허무한 자학이 아닌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 받는 지적은 문제 연예인의 성급한 방송 복귀뿐만 아니라 저들이 청춘과 잉여라는 지시어의 지시대상이 맞는가 하는 문제였다. 취업을 위해 졸업을 유예한 명문대생, 모델 겸 배우, 여행작가, 미술작가(방송에선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소개), 그리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는 연예인이 흔히 말하는 잉여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 방송인 노홍철. (사진=연합뉴스)

은폐된 승자독식의 문화산업

프로그램을 볼 때 잉여의 개념 정의는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불필요하다. 봐야할 지점은 음주운전으로 10개월을 자숙한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무엇을 잃었는지,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다. 잉여 논쟁은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한다.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방송을 쉬고 있는 동안 어떠한 생각을 했고 어떠한 일을 했는지 알 필요는 없다. 다만 방송 복귀를 위해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하고 방송이 예정된 프로그램을 촬영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홍철은 10년간 방송을 해온 베테랑이고 주변에 유명 연예인과 PD들이 많이 있다. 잉여 개념보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이번 방송 복귀도 친한 PD의 설득(매니지먼트의 경우 유재석과의 친분)이 있었다. 이러한 개인의 친분은 강력한 인맥(네트워크)으로 작용하며, 먹고 삶의 문제에 큰 도움을 준다. 무한도전을 통해 전국적 스타로 발돋움한 장미여관과 혁오밴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여기서 이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다. 간단히 반론하면 노력은 누구나 하고 있으며 노력으로 넘지 못하는 다른 힘이 문화산업에는 작동한다. 슬프지만 한국사회 전반도 마찬가지다. 방송 10개월 쉰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할 수 있는지, 과연 무엇을 잃었는지 묻고 싶다.

30만~40만원이면 가까운 곳에 그리고 짧게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고 말한다. 실행에 옮기는 지인들도 있다. 그러나 월세 30만원을 위해 일을 하며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세계 여행하는 잉여. 방송에 나온 이들은 스스로 잉여라고 했다. 훌륭한 자기방어지만 잉여라는 문화적 코드를 입고 싶은 잉여 코스프레가 정확하다. 거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표현보단 보헤미안, 레 미제라블이라는 단어가 미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문화적 사대주의를 넘어선다. 경제활동을 노동으로 표상하지 않고 문화나 미적활동으로 표상하고 있는 문화경제에서 개인의 활동은 보다 심미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방송만 보면 잉여도 유행이 돼서 중산계급이 자신들의 소비 지향을 보여주는 맥락에서 작동되는듯하다.

the winner takes it all...그리고 진짜 남겨지는 것들

노홍철은 휴식기간 동안 유재석으로부터 ‘그 녀석’이라는 멋진 브랜드를 하사받았다. 그 녀석을 통해 문제 연예인의 이름이 거론되는 불편함을 피했으며, 타인에 의해(그래서 나름 객관적으로) 잘못이 꾸짖어지는 위치에 놓였으며, 잘못했기 때문에 막해도 되는 심지어 부르기도 편한 그래서 다시금 친근해지는 일종의 캐릭터가 됐다. 이 캐릭터는 상품가치도 가지고 있다.

그들만의 네크워크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른바 무도빨이라는 단어가 왜 나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만의 세계에 입성하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미디어는 계속 이슈를 만들며 그들의 인지도를 높여준다. 연관 검색어, 낚시성 기사, 조회 수 상승, 이 관계는 문화산업과 미디어산업이 하나의 연합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만의 네크워크에서만 상품은 재생산되고 소비된다.

지난 6월 두 명의 무명배우가 떠났다. 5년 전에는 한 영화인의 쓸쓸한 죽음이 주목을 받아서 관련법을 만들기도 했다. 예술인복지법이다. 일부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서 복지에 반대하기도 한다. 음주운전도 도덕적 해이다. 도덕적 해이는 우리사회의 상류층에 나타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잘 팔리는 상품만 생산하고 유통하는 문화산업에서 남는 것은 가난한 예술가뿐이다. 이들은 창의적 직업이라는 외투를 입고 이른바 경쟁사회에 놓여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쟁은 불가능하다. 먹고 살기가 고달픈 이들의 실제 모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가치)는 자본가 계급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계속 가난한 상태로 남는다. 잉여 코스프레를 통해 잉여로 남는 것이 아닌 승자의 네트워크에 접속이 되었나? 그러면 축하할 일이다.

한찬희 _ 언론학을 공부하고 직업인이 되었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때문에 십대 시절 심취했던 음악분야로 탈주하기 위한 경로를 아무도 모르게 구축하고 있다. 문화의 표상방식과 이데올로기 비판에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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