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제 확대에 관해서는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6할에 가까운 찬성 응답이 나왔으나 이것은 ‘비례대표제 확대’앞에 ‘지역주의 기득권 제거’라는 설명이 붙은 결과였다. 기득권세력은 거리낌없이 비례대표 축소-지역구 의원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수 여론이 비례대표제에 거부감을 가진 요인 중 하나는 ‘비례대표는 의정활동에 무능하다’는 인식이다. 그럴까. 법률소비자연맹이 지난 6월 29일 낸 보고서에 따르면, 출석률과 참여율 등을 종합한 의정평가점수에서 국회의원 평균은 68.4점이었고 비례대표 의원은 평균 73.5점이었다. 2014년 경실련이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28명 중 비례대표 의원이 10명이었다. 국회의원 가운데 비례대표 의원은 20%에 미달하지만, 국감 우수 의원의 36% 가량이 비례대표였던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비례대표 의원은 특정 지역의 민원 해결이나 지역구내 행사 참석 따위에 드는 시간을 법안 만들기나 국정 견제에 쓸 수 있다.

사실, 비례대표 수가 너무 적은 것이 비례대표제가 미움받는 주요 요인이다. 국회보다 더 적은 비중의 비례대표 의석을 가진 지방의회를 보자. 의석수의 1/10 이상을 비례대표로 할당하도록 되어 있다. 가령 구미시의회는 의원정수 23명에 비례대표 의원 3명이다. 선거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2석은 새누리당(과 그 유사정당)의, 1석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고정적인 몫이다. 그러니 절대 다수 주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당내 암투가 치열할 수밖에. 새누리당 공천이 여의치 않은 사람이 새정치민주연합 문턱을 두드리고 심지어 비례대표 한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이런 배신이 어디있는가. 기초의회 의원수의 하한선은 7명이므로 인구수가 적은 지역은 비례대표 의원을 1명만 뽑기도 한다. 1등 정당에게 ‘가산 의석’이 주어지는 셈이다.

비례대표, 늘리고 열어야 반감이 해소

현재와 같은 비례대표 비중이라면 차라리 후보 공천을 1990년대처럼 하는 게 나아 보인다. 과거의 ‘전국구’에는 정당의 대표적 인사들이 자신이 ‘전국구’임을 과시하며 명단에 올랐다. 김영삼, 이회창 등은 1번을 달았고, 김대중, 박찬종 같은 이들은 전략적으로 후순번을 택하기도 했다. 의원은 계속 해야겠는데 지구당은 후진에게 내놔야 할 운명의 정치인이 전국구로 가는 사례도 있었다. 반면 21세기 한국에서 비례대표 의석은 지역구에 곧바로 진입하기 어려운 정치신인들의 등용문으로 쓰이고 있다. 각계 전문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물 몇몇을 빼면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이 비례대표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전국구처럼 여전히 국민들에게는 ‘옥상옥’으로 비쳐지니, 먹을 만한 욕과 안 먹어도 될 욕을 모두 얻어먹는다.

그래서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려야 한다. 국회 구성 원리로서의 ‘비례’가 더 돋보이도록 말이다. 옥상옥이 아니라 건물 전반을 구성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표를 방지하고 국민 여론의 다양성이 국회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명분을 지키는 것이다.

▲ 지난달 26일 오전 강원 춘천시 명동 입구에서 정의당 강원도당, 강원 녹색당, 노동당 강원도당 등 강원지역 진보정당 대표들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자신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인물이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데 대한 찜찜함이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다. 첫째, 비례대표와 지역구에 함께 입후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비례대표 후보를 뽑는 잣대가 정당의 공천뿐 아니라 지역구 선거에서의 득표력으로 확장된다면 그러한 불만은 작아질 수 있다. 독일 녹색당 소속인 오시카 피셔 전 외무장관도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출마해, 지역구에서는 낙선하면서도 비례대표를 통해 국회의원이 되고는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안’의 ‘석패율제’ 역시 이런 가능성을 만들어준 안이다.

둘째, 비례대표 후보 경선의 국민 참여 개방이다. 개방형 경선제는 비당원, 심지어 적대자의 경선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폐해가 있고 나 역시 이를 정당정치의 방해물로 규정한다. 다만, 비례대표에서만큼은 일정한 개방을 검토해봄직 하다. 10명 이상, 20명 이상 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키는 거대정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거대정당 공천권자의 수중에 들어간 무더기 의석을 곱게 볼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셋째, 경선이 아니라 본선거에서 국민의 개입을 이끄는 방안도 있다. 개방형 비례대표제로, 지역구를 여러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택하고, 단순다수득표제가 아닌 비례대표식으로 당선자를 가리는 것이다. 후보자들의 득표를 각 정당별로 합산하여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각 정당에 의석을 배분한 다음, 정당내에서는 후보들의 득표 순위에 따라 당락을 가르는 방식이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지지 정당과 지지 인물을 동시에 표기할 수 있다.

다른 지역 사람은 몰라도 영남과 호남의 시민들은 비례대표제를 강력히 지지하고 이번 기회에 ‘비례대표제 확대’로 뭉쳐야 한다. 거대정당의 공천 절차가 마무리되는 즉시 유권자들이 ‘을’로 전락하는 게 영남과 호남의 시민들이다. 선거만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역구 대표자들이 도대체 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는가? 구미불산사태 같은 재해나 노사갈등이 터질 때 지역구 의원들은 ‘못 찾겠는 꾀꼬리’고, 그들이 비운 자리를 채우는 건 시민들 대다수가 처음 보는 비례대표 의원들이다.

지역구 의원 숨어버려도 비례대표가 나타난다

전진영 국회 입법조사관이 지난 1월 발표한 바에 의하면, 비례대표 의원들은 복지와 노동 등 ‘보다 광범위한 인구집단을 정책 대상으로 하는’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의원보다 더 국회의원다웠다는 뜻이다.

근래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은 특히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지역구 인구 편차가 3대 1에서 2대 1로 줄자 농어촌 지역구가 도마에 오른 탓이다. ‘농어민의 이익은 누가 대변하느냐’며 비례대표 의원을 줄여서 농어촌 지역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녹색당은 9월 1일 이렇게 답했다. “과연 농어촌 지역구 의원 가운데 몇 명이나, 타들어가는 농민의 심정과 세파에 절은 어민의 처지를 대변했는가. 역대 정부의 농수축산물 개방에 당당하게 저항했던 의원보다 파괴적 개발사업 유치로 지역민들을 도탄에 빠트렸던 의원이 더 많을 것이다. 국민들과 우리 녹색당 당원들은 이를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다.” 고로 농어촌 지역구를 챙겨줄 바에는 차라리 비례대표 의원 일정수를 농어촌 정치인에게 할당하는 게 낫지 않을까. 강기갑의 ‘농민의 킥’도 그가 지역구 의원에 당선되기 전 비례대표 의원이었었기에 가능했다.

의외로 많은 거대정당 지지자들은 말한다. “그래도 우리 지역에서 그들이 다 해먹는 건 싫습니다.” 하지만 거대정당은 영남과 호남에서 ‘다 해먹고’ 있는 현실. 무시당한 시민들을 그나마 챙겨줄 이는 지역구에 구애받지 않는 비례대표 의원라는 것을, 추석에 친지들을 만나거든 꼭 전해주시라. 호남과 영남의 시민들이여, ‘비례대표제’로 단결하라!

김수민 / 녹색당 언론홍보기획단장 안티조선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거쳤고 2010년 구미시의회 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불안정노동 양산을 막는 조례들을 제정했으며 특혜성 보조예산과 박정희기념사업에 저항했다. 2011년 녹색당 창당에 참여했다. 낙동강 준설공사가 초래한 구미 단수사태 당시 정치경제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고, 투쟁을 계기로 만난 노동자들이 존엄한 시민으로 사는 궁극적인 해법이 '녹색전환'에 있다고 확신했다. 2014년 낙선 이후 지역에서 풀뿌리정치혁신모임인 '구미 새로고침'을 이끌었고, 현재 녹색당의 언론홍보기획단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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