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국회교섭단체대표연설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조를 비난한 사실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2일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통해 국민공천제 도입을 위한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하고 국회선진화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또 김무성 대표는 통일재원 마련 방안 논의 공론화를 요구하기도 하고 노동, 금융, 교육 등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해온 분야들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며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의 처리를 국회에 촉구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김무성 대표가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4대 개혁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면서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시장지배력 남용, 불공정거래를 통해 불법·편법으로 부를 쌓는 재벌들의 행위가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김무성 대표는 “재벌개혁이 반기업정책으로 변질돼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며 친기업적 시각을 재차 드러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교육 분야에 대해서도 논란이 될 만한 견해를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위한 국회 특위 설치를 제안하는가 하면 “역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의미에서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억지를 부리는 주장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정교과서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37회 국회 정기회 2차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무성 대표의 이와 같은 일련의 발언들은 두 가지 층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간 유지해온 스탠스대로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경제활성화 법안의 처리를 촉구하고 4대개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재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이 날 때마다 여당을 향해 주문해온 것들로 볼 수 있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 유승민 전 원내대표 파동, 국정원 해킹 의혹, 북한의 도발과 남북관계 개선 등의 사례에서 하나의 사안이 마무리 될 때마다 “이제는 경제활성화와 4대개혁”이라는 등의 발언으로 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김무성 대표가 이를 다시 강조하는 것은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청와대와 협력적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힌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을 해석하는 두 번째 관점은 중도층을 겨냥하기보다는 극우보수적 색채를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국정교과서 도입이나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주장은 진보와 보수 간의 정치적 논란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주제인데도 확고하게 보수적인 주장의 편을 들기 위해 나선 것이다.

야권의 비판 역시 김무성 대표 연설의 이러한 ‘색채’에 집중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김무성 대표 연설에 대해 “여러 대목에서 아주 극우적이고 수구적인 그런 인식을 보여 참 걱정스럽다”면서 “정말 거꾸로 가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발상으로 되돌아가는 주장이다”라고 혹평했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김무성 대표는 개혁적 보수가 되겠다고 천명했지만, 오늘 연설에서 진짜 개혁에 대한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면서 반발한 바 있다.

김무성 대표가 연설 직후 한 발언은 이런 우려를 더 심각하게 제기할 수밖에 없게 한다.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당이 “정부·여당이 노동정책 실패를 노조로 돌리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불법 노조에 공권력이 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10년째 우리나라가 2만불”이라면서 “그런 일이 없었으면 3만불을 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무성 대표는 최근 3사 공동으로 파업을 선언한 조선업계에 대해서도 “조선 3사가 7조4000억원 적자인데 지금 파업을 하겠다고 한다”라면서 “CNN에 경찰을 두드려 패는 모습이 보도되는데 어느 나라가 우리에게 투자를 하겠는가. 그들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상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가 이와 같은 주장을 반복 내놓는 것은 물론 평소 소신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차기 대권주자로서 극우적 보수층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계산으로도 보인다. 김무성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1위의 지지를 고수하고 있지만 여전히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특히 김무성 대표가 이명박 정부 시절 ‘탈박’으로 분류되며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이력은 현 정부를 지지하는 고령 및 대구경북 지지층으로부터 확실한 ‘믿음’을 얻는데 실패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던 상황도 김무성 대표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전통의 보수적 유권자들이 포진해있는 대구라는 지역적 기반 속에서도 중도적 메시지를 던져 ‘대통령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부산 출신인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서는 잠재적 경쟁자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두 경남 출신인 상황에서 대구경북을 확실히 잡지 못하면 이후의 행보가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마저 떠오르는 상황에서 확실한 보수적 메시지를 던지지 않으면 어필하기 힘든 입장에 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정치공학적으로 어떤 입장에 있든 그의 발언이 한국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 직선제의 경우 애초에 이 제도가 교육감 선출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맥락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또, 국정교과서 도입의 경우 역시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몰역사적 선택이라는 비판에서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노조조직률이 10% 수준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을 비난한 것은 김무성 대표의 사회통합 의지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노조조직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고 노동자들이 자기 이익에 충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그나마 있는 노조마저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반복 주장하는 것은 결국 기업에만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단견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파업을 감행하는 노동자들을 대기업 귀족노조로 취급한 것은 노동자·서민을 대상으로 한 편가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마저 자초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의 장점이라는 ‘선 굵은 정치’가 이 대목이만 이르면 엉망진창이 된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편향된 불통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김무성 대표의 이런 주장이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올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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