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몇 가지 장면과 기사들이 눈에 밟힌다. 관악산, 궁둥산, 안산, 우리 주변의 산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서울은 산이 많은 도시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은 70%가 산인 지형이라고 배워왔고, 한국지리 시간에는 이 나라를 관통하는 몇가지의 산맥을 외우느라 고생했었다. 산이 많은 한국은 교과서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대문구도 그 중심에 안산이라는 산이 있고, 안산 정상에 올라가면 바로 근처의 북악산이 보이고, 또 조금 넘어의 남산이 보이고, 머리는 청계산, 관악산, 북한산이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들어 흉물스럽게 올라오고 있는 제2롯데월드가 서울 어디에서도 보이는 건축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장면 1. 관악산과 16억

최근, 지난 가을 관악산 자락의 땅 약 1만평이 한꺼번에 거래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5명이 지난 해 9월 관악산 기슭의 필지 1만590평을 16억원에 샀다고 한다. 1만평이라는 면적도, 16억원이라는 돈도 잘 접해본 적이 없다. 그 면적은 통상적으로 아파트 1000가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라고 한다. 서대문에 새로 만들어진 가재울뉴타운의 25평 규모 아파트 매매가가 3억 9천이라고 하니, 16억이면 대략 25평 규모 아파트 4호를 살 수 있는 비용이다.

해당필지는 현재 주차장과 텃밭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예상컨대, 관악산 자락의 1만평의 토지를 산 ‘토지의 주인’들은 2020년 7월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20년 7월 1일,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가 적용되어 전국의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 해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도시계획시설 중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된 도심 근처의 산들이 대부분 이 결정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개발이 불가능해 애물단지처럼 여겨졌던 산이 개발이 가능한 보물단지가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토지가 개인의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이 질문은 차치하고서라도, 누구의 것이라는 의식 없이 오르내리던 산이 어떤 순간 누군가의 것이 되어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슬픈 일이다. 심지어 그 공간이 개발의 공간이 되어 그 누군가의 불로소득을 담보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빌려쓰는 비용을 지출하게 하는 사유공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정부도 지자체도 이 슬프고 끔찍한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장면 2. 서대문의 궁둥산

서대문구 연희동에는 궁둥산이 있다. 관악산과는 규모가 다른 작은 동네 산이지만, 사실 서울의 매력은 이런 작은 동네 산에 있다. 등산복과 등산화를 차려입고 올라가야 하는 산과는 다르게 간단한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운동삼아 오르내릴 수 있는 마을의 산. 이러한 산이 보여주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그나마 도시의 사람들은 사계절을 시각과 후각을 통해 경험하고, 녹지가 주는 편안함을 체험한다. 마을의 산을 지켜고자 했던 주민들의 싸움이 건강하고 튼튼한 마을공동체로 이어진 경험들이 있기도 하다. 궁둥산은 아마 주민들에게 지키고 싶은 그런 산일 것이다. 지키고 싶은 공간이 사라지는 도시에서 이런 산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이 산이 최근 형질변경과 토목공사 허가로 파헤쳐지고 있다. 비오톱 1등급이었던 이 산은 2013년 비오톱유형평가 3등급, 개별평가 2등급으로 하양조정되었다. 비오톱은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어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생물서식지를 뜻한다.(서울특별시 도시계획조례 제24조 별표1) 비오톱 등급은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하였을 때의 가치등급을 나타낸다. 비오톱유형평가 1등급이고, 개별평가 1등급인 토지의 경우, 대상지 전체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서울특별시 도시계획조례 제24조 별표 1) 심지어 궁둥산의 경우 토지주가 지속적으로 산지를 훼손해왔다는 의심도 받고 있고, 비오톱 등급이 하향조정된 시점은 지속적인 산지 훼손 이후라고 한다.

내가 비오톱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사실 지난 해 말 붉어졌던 이화여대 기숙사 증축을 둘러 싼 지역사회와 대학 간의 갈등 국면에서였다. 이 때도 역시 ‘비오톱’이 이슈가 되었었다. 기숙사 건설 현장인 북아현 숲의 비오톱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하향 조정된 사안에 대해 기숙사 증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문제를 제기한바 있었다. 기숙사 갈등의 경우, 임대업 주민들의 경제적 이해관계 등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어 판단과 해법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도심의 숲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에게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한다. 궁둥산도, 북아현숲도, 실제로 등급 조정 시점에 정확한 판단이 이뤄졌는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 정확한 근거를 두고 판단했을 것이라 믿는다. 오히려 문제는 비오톱 등급이 하향 조정되도록 묵인한 우리와 지자체의 관심부족, 관리부족의 지점이다. 개발이라는 지상최대의 목표를 제어할 장치가 우리 사회에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는 반성이 필요하다. 사유화된 토지, 그 토지를 소유한 토지주의 침해된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가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합의된 바 없는 것 같다.

▲ 비오톱유형평가도. 비오톱유형 평가도는 비오톱유형을 평가하여 5개 등급으로 나누어 표현한 도면으로, 도로, 수면 등을 제외한 67개의 비오톱유형에 대하여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하였을 경우의 가치등급을 나타낸 것이다. (출처: 서울특별시 도시계획포털)
▲ 개별비오톱 평가도. 개별비오톱 평가도는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하였을 경우의 비오톱 가치를 3개 등급으로 나누어 표시한 도면으로 비오톱유형을 크게 자연형, 근자연형, 비자연형, 기타의 4가지 범주로 나누고, 이 가운데 자연형과 근자연형의 28개에 해당되는 비오톱만을 대상으로 수행하였다. (출처: 서울특별시 도시계획포털)

장면 3. 박원순 시장의 녹색서울

봄과 여름 사이, 한국사회는 ‘메르스’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철저하게 뚫린 방역당국, 공공의료체계의 허점, 민간의료기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등 다양한 문제의식과 변화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던진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메르스 이후 또 하나 확실하게 확인한 것이 있다. 메르스로 멈추었던 이 도시의 어떤 체계와 그 체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 도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7월 1일 민선 1주년을 맞이하여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메르스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을 브리핑하며, 앞으로의 과제를 언급했다. 지자체의 리더십이 국가 전체의 정책 방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메르스 이후를 언급하며 ‘관광도시 2천만 서울’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자회견 이후, 직접 중국인 관광객을 가이드하는 모습,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 등을 본인의 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하고 있다.

공공연히 녹색서울과 지속가능성장 등의 가치를 강조하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 지점에서 박원순 시장과도 철저한 토론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 영향력 있는 지자체의 리더십, 심지어 서울의 정치적 리더십이 생각하는 ‘녹색서울’의 그림에 대한 토론 말이다. 관광객 2천만 서울을 만들기 위해 이 도시는 어떤 개발을 지속할 것인가? 혹은 그 개발의 유혹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관광도시 서울이라는 목표 설정이 내포하고 있는 성과의 지표를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그 지표가 서울을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지표일까?

7월 13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곳의 정체성은 고층건물이에요. 최고로 현대화된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최소한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보다는 나아야 하죠. 내년에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민자를 유치할 것입니다. 동시에 인근 탄천을 생태적으로 복원할 계획입니다. 올림픽대로와 탄천 도로를 모두 지하화한 뒤 상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할 것입니다.” 인터뷰가 왜곡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지만, 그가 다른 자리에서 공공연히 밝힌 주요 간선도로의 지하화 계획과 상부의 공원화 계획의 기억이 합쳐지며 두려움과 우려스러움이 커진다.

도시를 움직이는 새로운 규칙

슬프고 끔찍하고 두렵고 우려스럽다. 이 글에 내가 언급한 감정들이다. 감정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구체적인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도시의 생태적 다양성을 옹호하고 지속시킬 방법, 도시의 삶을 안전하고 안락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이 도시가 지속가능하고 회복력을 갖춘 도시로 변화해갈 방법. 각각의 방법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중요한 가치를 합의해야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경제적 이해관계의 무분별한 추구가 결국은 서로 망하는 길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합의로부터 이 도시의 개발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가 새롭게 정립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자세가 민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혹은 절대적인 다수가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도시를 움직이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태영 /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30대 초반, 지역활동가이자, 녹색당원. 풀뿌리사회지기학교와 신촌민회, 체화당이 어우러진 신촌의 일터에서 활동하고 있고, 서울녹색당의 정책위원장으로 역할하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조직한다.”는 목표로 2014년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로 출마, 낙선했다. 아직 그 목표는 유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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