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에 빠지거나 불편한 희망에 매달리는 건 부질없다. 승리의 욕망, 담대한 전략으로 돌파해야 한다.” - 경향신문, “왜 하필 지금 ‘노동개혁’일까?”, 이철희, 2015.07.28.

2015년 상반기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노동당 당대회는 나경채 대표가 출마공약으로 내걸었던 진보결집 관련 당원총투표 안건을 부결시켰다. 대표는 빠르게 거취를 결정했다. 사퇴 후 당 밖에서 외곽조직을 결성했다. 이름은 ‘진보결집더하기’였다. 진보정당들의 ‘복잡한’ 역사 계보에 화살표 하나가 추가되었다.

▲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에 정리된 진보정당 계보 (그림=백상진)

다시, 비상대책위원회

‘진보결집더하기’는 ‘새진보통합연대’를 떠오르게 했다. 새진보통합연대는 2011년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안건이 부결된 후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가 탈당하여 결성한 조직이었다. 노동당은 다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가 되었다.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전국위원회의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정치적 논쟁은 없었다. 서울시당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이 되었다. 3년이 조금 넘는 당직 동안 비대위를 세 번 겪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앙당에 남은 두 명의 실장 중 한 사람이었다.

중앙당의 많은 당직자들이 비슷한 듯 다른 이유로 당직을 그만두었다. 열다섯 중 열 명이었다. 결집에 관련한 ‘거취’ 결정이 가장 주요했지만, 누군가는 떠나가는 자들과 남은 자들을 지켜보고 있기가 힘들어서라고도 했다.

무엇이 다른가

당대회가 있기 5일 전, 노동당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한 당원의 글이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다. 조회수는 당원 수를 넘어섰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글의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무어라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긴 글이었지만 이목을 끄는 문장은 분명히 있었다.

“노심조의 문제는 공은 사유화하고 과는 공유화한다는 거에요.”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활동했던 상당수의 ‘운동권’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낸 정치적 결실이었다. 그리고 그 결실의 끝에 민주노동당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인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가 있었다. ‘운동권 정당’이 ‘노심조’를 낳은 것이다.

민주노동당에서부터 자신들의 역사를 찾는 노동당도 ‘운동권 정당’이긴 마찬가지이지만, 비슷한 과정을 통해 쪼개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한 노동당에게 정치적 결실이라고 할 만한 거물급 정치인은 없었다. 2011년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에게 쏟아졌던 비판들은 이제 김종철, 강상구, 나경채를 향했다. 어떤 측면에서 그들은 사유화할 공조차 배분 받지 못한, 몫 없는 자들이었다.

‘2세대 진보정치’

비슷한 시기,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의 정당’도 새로운 지도체제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가 한창이었다. 조성주 후보는 출마선언문을 통해 민주주의 바깥의 시민, 노동조합운동 바깥의 노동자들을 호출했다. 2세대 진보정치는 그 ‘광장 밖의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조 후보의 출마는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운동권 정당’에서 태어난 정의당의 새로운 면모로 받아들여졌다. 정의당의 당원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결과는 ‘아직도 심상정’ 혹은 ‘이제 심상정’의 당선이었다. 그녀는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당원들이 만나는 장소가 집회나 피케팅하는 데가 아니라 동네 주점, 낚시터, 야구장 같은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변했다. 이것이 나쁜 의미냐, 좋은 의미냐 하는 것은 상관 없었다. 다만 변하지 않은 채 머무르는 건 노동당 뿐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오랫동안 노동당에 몸담았던 이들에게 절망은 익숙해졌고, 희망은 불편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떠났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행선지가 없는 출발이었다. 노동당의 당원 수는,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소리 없이 줄어들었다.

논쟁과 상처

“논쟁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일단 그것이 시작되면 발밑의 세계보다 머릿속의 세계가 훨씬 중요하게 느껴지고, 이론이 규정하는 적보다 이론을 공유하는 논쟁 상대가 더 사악해 보이는 것이었다.” - <디마이너스(손아람)> 중에서

진보정치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지만, 진보정당운동의 당사자들에게 가장 극적으로 바뀐 것은 진보정당의 개수와 분노의 상대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실망감의 크기였다. 진보결집 총투표 안건을 다루는 찬반토론에서 주요한 대결구도는 어쩔 수 없이 ‘이제 망했다’는 절망 대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었다. 절망과 희망은 서로를 악마로 만들었다.

이에 반해 움직여서 해낼 수 있는 일과 자리를 지켜서 해낼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그 중 어떤 것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욕망하느냐 하는 ‘영악한’ 문제는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노동당의 정치적 자원을 증대시키는 수단이 대립했고, 어느 한 수단이 기각되면 당이 쪼개질 만큼 노동당은 연약해져 있었다. 누군가의 탓이 아니라, 그냥 그랬다. 예정된 수순대로 당은 쪼개졌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진보정당 운동에 몸 담아왔던 이들에게‘만’ 치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제대로 평가하는 일의 어려움

정치적 평가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건강한 ‘멘탈’을 가진 주체와 그 평가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건강한 방향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 노동당은 지난 성과와 과오에 대해 제대로 된 정치적 평가조차 불가능한 조건에 서 있다. ‘정신승리’로 버티기에는 나의 희망이 불편해졌다는 걸 알아채 버렸고, 날선 비판을 던지기에는 상대의 절망이 너무 익숙하다는 걸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노동당 박은지 전 부대표의 부고 이후 사람들은 그동안 궂은 일을 해왔다는 진보정당 운동가들에 대해 연민을 표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민중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스스로와 주변 사람의 아픔에는 무감각했다’는 집단적 반성도 있었다. 연약해진 사람들에게 격려가 필요한 시기였다. 노동당 결집파의 탈당 이후에는 진보정당 운동에 애정을 갖고 오랜 시간 투신했던 자들의 이야기가 한겨레 지면을 통해 다뤄졌다. 이렇게 진보정치와 진보정당운동의 한 시기가 지나고 있었다.

▲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인상 반대 주장 피켓팅을 하고 있는 노동당 서울시당원들. (사진=연합뉴스)

자꾸 희망하기

슬픈 역사가 그저 슬프게 남아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 애도의 시기를 잘 보내야 할 것이다. 희망적인 일에 기뻐하고 절망적인 일에 좌절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충분히 서로를 격려하고 나서 마침내 힘이 생긴다면 함께 바깥을 보고, ‘파이’를 늘리고, 제대로 평가할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함께 하는 이들의 존재를 잊지 않고, 바깥에 손 잡을 이들에게 손 내밀고, 착실하게 정치적 자원을 늘릴 방법을 꾀하고, 발전의 밑거름이 될 평가를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청년진보당, 사회당 같은 과거의 한 지점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조건으로부터 출발하자. 우리에게는 다시 희망하고 또 절망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김현우의 글을 빌려, “자꾸 이야기를 꺼내고 희망하기를 반복해야 꿈은 기획이 되고 현실이 될 것”이므로.

노동당은 이제 당대표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단순히 좋은 당대표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좋은 당대표를 세우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좋은 당대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과거로부터 배우고, 어려운 상황임을 인지하면서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며, 이 당의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사람일 것이다. 노동당 당원 모두의 과제다. 다시 희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당면한 과제를 수행하며 희망의 근거를 찾기를 기대한다.

백상진 / 노동당 서울시당 총무부장

평당원으로 활동하다 노동당 서울시당의 업무 보조를 위한 자원봉사를 맡으면서 당직자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 지방선거 때 출산휴가를 떠난 회계 담당자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임시로 채용됐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초보 당직자지만 선거에 출마한 다른 당직자들의 회계, 홍보, 대외협력 등 업무까지 떠았다. 평당원 두 명과 함께 '음기양조'라는 당내 행사 기획 그룹을 만들었고 '당원-되기', '내 꿈은 연대왕', '더 시리자 임팩트' 등의 행사를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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