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월세 40만원 위해 버스킹을 하는 가수를 소개한 기사가 났다. 댓글이 대단하다. “돈 없으면 알바해라”, “때려치우고 취업해라”, “돈 벌려고 버스킹하냐”, “좋아서 하는 음악인데 돈 벌려고 하냐” 이런 식의 댓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결국 기사 속의 가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심경을 토로했다. 다른 가수는 월세를 모으기 위한 버스킹(월셋날이 다가옵니다 프로젝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됐을까? 혹은 무엇이 문제가 있나? 하고 물어볼 수 있다.

우선 시스템의 문제를 좀 짚어보자. 한국의 음원 시장에서 음원 유통(또는 서비스)은 이동통신사와 몇몇 포털이 담당하고 있다. 유통 플랫폼이 많지 않다. 개별 이용자(음원 생산자) 차원에서 플랫폼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즉 협상력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음원이기 때문에 싱글로 제작되며 유통된다. 예전처럼 패키지로 제작되고 소비되지 않는다. 다수가 만들어지며 쉽게 소비된다. 가격 자체가 높게 책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수의 음원이 발매되어도 인기순위에 올라가지 못하면 흥행에 실패한다. 이 기간은 대략 2주로 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뒤로 밀린다.

인기순위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집계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처럼 어뷰징 발생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음원 수익도 문제가 많다. 음원 하나가 내려받기가 되고 600원이 결제됐다. 가수가 곡만 썼다고 보면 24원을 받는다. 작사, 작곡, 편곡이 10%의 수익을 가져가는데 이 세 부분의 분배가 4:4:2이기 때문이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대체적으로 작사, 작곡, 편곡을 다한다. 그나마 60원을 가져갈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음악을 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혼자 공부하거나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학습하게 되면 가사를 쓰고 곡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 60원마저도 전부 가져가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개별 음원 생산자 차원에서 음원 유통 플랫폼에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유통을 해주는 업체와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이 경우 유통업체가 적게는 20% 많게는 3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음원서비스, 음원유통은 대체적으로 수직계열화되어 있다. 문화산업에서 수직계열화는 종종 나타나는 사업전략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원수익은 대체적으로 플랫폼(서비스와 유통을 모두 하는)쪽이 높은 비중을 갖는다. 수익 분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획 상품처럼 쏟아내는 기획사들의 음원의 경우 분업화된 생산시스템에서 나오기 때문에 작사 따로 작곡 따로 편곡 따로 간다. 이 시스템에는 춤, 노래, 연기까지 가르치는 선생들도 포함된다. 시장에서 팔릴만한 상품으로 출시하고 당연히 수익을 얻는다. 음원 수익이 변변치 못하면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고 행사를 다닌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수익을 위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기획사는 음원 수익도 44%를 가져간다(제작과 기획이 따로 발생하면 44%를 서로 맺은 계약에 따라 배분한다). 개별 음원 생산자가 아니니 플랫폼에 접근하기도 유리하다. 오히려 플랫폼이 모셔갈지도 모르겠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은 위에 말한 기획사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음악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 그렇다고 좋아서 하는 건데 돈만보고 음악 하냐고 반문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자신의 삶의 조건을 재생산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번듯한 직장의 회사원이나 청소노동자나 음악하는 딴따라나 지금의 조건을 최소한의 상태로 유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저작권 수입으로 한 달에 몇 만원이 통장에 찍히고 기타레슨을 하고 클럽에서 공연하고 버스킹도 하고 전단지도 돌리고 이 모든 게 음악활동을 위한 포트폴리오다. 돈이 필요하면 때려치우고 회사나 다니라고 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공부만 해왔다. 음악을 안 하면 다른 적성을 찾을 수 있을까? 회사는 딴따라 출신을 어서 오세요 하고 받아줄까? 필자의 경우 실용음악을 전공했고 딴따라로 밥 벌어 먹고 살려다 이내 포기하고, 언론학 공부하고 직업인이 됐다. 전환 과정이 10년 걸렸다. 예체능의 경우 전공전환이 쉽지 않고 빈번하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분야 자체가 장시간의 숙련기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 차원의 이야기를 해보자. 인기도 없고 돈도 못 벌고 실력도 없고 재능도 없고 음악하지 말라는 말을 음악하는 사람에게 할 수 없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헌법에서도 보장하기 때문이다. 단순 비난에 불과하다. 무시해도 좋다. 버스킹으로 월세를 내려는 것은 하나의 실험이(었)다. 음악을 해서 최소한의 경제적 삶이 가능한지 실험한 것이다. 박봉에 시달리는 회사원이 퇴근 후 대리운전으로 부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모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퇴근 후 대리운전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원에게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옮겨라”, “공부 더 해서 이직해라”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나?

음악은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가 맞다. 싫으면 할 수도 없다. 좋아서 하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견디고 살고 있다. 사회는 좋아서 하는 행위에 대해서 직업적 성격을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경제적 보상이 형편없다. 이른바 열정 페이를 강요한다.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 프로 게이머를 꿈꾸는 사람들, 이들의 열정은 해당 분야에서 노동으로 착취되고 있다. 회사원들은 자기경영, 자기계발이라는 미적으로 포장된 노동 환경에서 놓여있다. 우리의 노동환경이 이러한데, 뮤지션(넓게는 모든 문화산업의 종사자)들의 경제활동에 대해서 우리가 비난을 할 수 있을까? 열정 페이가 강요되는 사회에 대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한찬희 _ 언론학을 공부하고 직업인이 되었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때문에 십대 시절 심취했던 음악분야로 탈주하기 위한 경로를 아무도 모르게 구축하고 있다. 문화의 표상방식과 이데올로기 비판에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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