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청년고용절벽해소 종합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결국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관계 부처 장관들과 경제 6단체장이 참석한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청년 고용절벽 문제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면서 “우선 단기적인 고용충격을 완화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향후 3~4년 간 청년층의 실업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번 대책을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세제 및 예산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청년고용대책은 2017년까지 약 20만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 대책에 따르면 교육 및 보건, 보육 등 공공부문에서 4만개 이상의 청년 일자리를 마련하고 재계를 중심으로 민간부문에서 16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정부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시 인정되는 세액공제 혜택을 연장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늘린 기업에 지원금 혜택을 주는 등의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의 대책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등 단체는 정부 대책에 발맞춰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 역할을 하겠다면서도 “경제계가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하반기 노동시장 개혁이 원만히 추진된다면, 청년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다섯번째)과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여섯번째)이 2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프로젝트' 정부-경제계 협력선언식에서 선언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연공서열 임금체계 등의 문제를 언급하고 “기업이 인력을 타이트하게 운영하는 것은, 노동시장이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최근 대통령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개혁을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다고 했는데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잘되면 기업의 신규채용도 늘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청년 일자리대책에 이어 4대 부문 구조개혁은 물론 제도와 관행, 의식과 문화 같은 사회부문의 선진화도 강력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가 하반기 국정운영의 중심에 구조개혁을 둔 것에 대해 전적으로 환영한다”고 발언했다.

결국 이 자리에서는 ‘청년 고용 확대’라는 정부의 민원을 재계가 다양한 형태로 수용하고, 정부는 기업에 ‘노동 개혁’을 비롯한 구조개혁을 추진할 것을 약속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다. 노동 개혁은 단지 청년 일자리 문제의 해결 뿐만이 아니라 저성과자 등에 대한 일반해고 도입이나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시 노동자 과반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한 조항의 삭제 등을 겨냥하고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안이 실행될 경우 일자리의 ‘하향평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그나마 민간부문이 만들겠다는 16만개의 일자리에도 불안정 일자리가 다수 포함돼있다는 것이다. 재계는 기존 인력이 이직을 하는 경우 등에 대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확보된 자원을 활용해 2017년까지 3만5000명 가량을 추가 채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나머지 12만5000명의 경우 인턴이 7만5000명 규모, 유망직종 직업훈련 및 일학습병행제를 통한 일자리 5만명 규모를 만든다. 결국 민간부문이 책임지는 16만 개 일자리의 대부분이 불안정일자리인 셈이다. 공공부문을 합쳐도 실제 창출되는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는 7~8만명 규모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서는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도 “16만명이 모두 취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표현 그대로 일자리 기회를 준다는 것으로 직업훈련 및 인턴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단기간에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는 공공부문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하고 민간부문은 향후 노동개혁 등이 진행되는 추이에 따라 청년 고용절벽 등의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관점에 따라서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민관이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했다기 보다는 정부만 마음이 급하고 재계는 청년실업 문제를 볼모로 고용유연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로 볼 수 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합동 대책회의에서 자료를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의 청년실업 문제는 대기업의 근시안적 경영과 이를 어쩌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이 합쳐진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고 최경환 부총리는 취임 당시 대기업이 쌓아둔 사내유보금을 가계에 흘러들어가도록 해 내수를 살리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취임 1년도 안돼 사실상 뒤집혔고 최경환 부총리의 야심찬 계획도 대기업들의 반발 속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재계는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미국의 금리인상,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저, 중국의 경기 둔화, 그리스 위기 등에서 보듯 외적 요인이 악화된데다 내수도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신규채용을 늘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 등 일각에서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가 된 주요한 이유로 비정규직법 등 정부의 고용유연화 정책과 대기업의 횡포로 인한 중소기업의 부실화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정부 대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기업의 책임은 경력직 채용을 선호한다는 것 정도 뿐이다.

경력직 선호 현상은 대기업이 교육을 통해 숙련노동자를 만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 비용을 교육기관 등이 분담하게 함으로써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번 대책에 기업이 채용을 조건으로 대학과 계약을 맺고 졸업 후 취업을 보장하는 형태의 ‘계약학과’를 늘리겠다는 계획과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및 일학습병행제도 확대 등이 포함된 것은 이를 반영한다.

결국 정부의 이번 대책에서도 기존에 내놓은 정책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손해는 최소화하고 노동자 서민들에게만 고통 분담을 강요하는 고질적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미 청년고용 등의 문제는 한계에 도달한 상황임에도 정부와 대기업이 문제에 안이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노동개혁은 대기업이 먼저 결단하고 무언가를 내놓지 않으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청년실업을 비롯한 노동문제는 그 심각성을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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