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의원정수 확대 등의 정치개혁안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정치권에 일대 파장이 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는 26일 국회 총예산 동결을 전제로 국회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69명으로 증원하는 안을 포함한 5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5차 혁신안에는 권역별 소선거구제-비례대표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선관위가 2월 국회에 제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5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혁신위원회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다수 언론을 통해 국회의원 정수를 390명으로 늘려야 하고 대신 세비 50%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구 대 비례대표의 비율을 2대 1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을 현행 246석에서 260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현행 54석에서 130석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위원회의 안은 현행 지역구 수를 유지한 상태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2대 1로 맞추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이러한 주장은 당내에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국정원 불법 해킹 의혹 규명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의원정수 문제로 그 문제를 가리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표는 또 혁신위가 발표한 혁신안의 주 포인트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면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를 하다 보면 의원정수 문제까지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결국 혁신위원회의 문제의식은 인정하지만 당장 의원정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역풍이 불 수 있으니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관련 논의에 포인트를 맞추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혁신안 전반에 대한 비토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조경태 의원은 이날 혁신위원회의 혁신안 발표 직후 “반(反)혁신으로 가는 혁신위는 즉각 해체해야 한다”면서 “비례대표제를 없애 의원 수를 54명 줄이는 게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례대표가 ‘나눠먹기’의 대상이 됐다는 취지의 비판인 셈이다.

비판 여론은 여당 측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을 발표한 직후 “혁신이 아니라 반(反)혁신, 반(反)개혁적 발상”, “정치 개악” 등의 수사를 동원해 비판에 나섰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안에 대해 “통일시대에 대비해 양원제로 전환하거나 할 때 논의할 만한 문제로, 개헌과도 맞물려 있다”면서 “지금은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식의 정치혁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 역시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의석수를 늘리자는 것은 국민 배신행위”라고 지적했고, 정치개혁특위 소속인 박민식 의원도 “청년실업에다 일자리도 구조조정 하는 판에 국회가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은 국민의 심각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새누리당이 이와 같이 반응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국민여론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회의원이라는 직(職) 자체를 기득권으로 여긴다. 최근처럼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한 때에는 기득권이 기득권의 숫자를 늘리는 개혁에 근본적인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표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의 우려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의 안은 정치권이 직면한 피해갈 수 없는 과제에 정면으로 맞선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3대 1인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2대 1이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결정한 바를 제도화하기 위해선 지역구 의원의 숫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현행 의석수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수만 줄이거나 전체 의원정수를 늘리거나의 양자택일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는 것은 정치개혁이라는 당위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게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역구도와 결합한 기득권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론은 의원정수를 늘리는 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정치권에 대한 대중적 냉소인데,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의원 세비 삭감을 주장한 것은 이를 감안한 주장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의 숫자를 늘리더라도 국민의 혈세를 허투루 쓰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국회의원이 기득권으로 비춰져온 것은 과다한 세비를 받으면서 자기 배를 불리고 있다는 식의 선입견이 작용한 측면이 큰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종걸 원내대표의 주장이 대중의 정치적 냉소에 대한 적절한 답이 될지는 의문이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단순히 세비를 많이 받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기관으로서 갖는 권력을 사익을 채우는데 활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세비를 삭감하면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뒷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구조에서는 단지 세비를 줄이겠다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어진다. 즉, 강력한 정치개혁과 부패척결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지 않으면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 미국 워싱턴·뉴욕·LA 지역을 방문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5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종걸 원내대표가 모처럼 공세적으로 이 대목을 강조한 것은 여당의 ‘오픈프라이머리 제안’에 대한 대응의 성격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주장해온 오픈프라이머리 여야 동시실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23일 “모든 정당 지역에서의 일률적 강제 시행은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도 같은 날 “경쟁을 가장한 독과점체제로, 기득권 질서만 고착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인데, 이는 마치 여당이 주장하는 어떤 개혁적 제안을 거부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러니 이를 거부한 대신에 다른 종류의 ‘개혁안’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이 돼버린 것이다.

반복 강조되는 것처럼 오픈프라이머리는 공천을 둘러싼 잡음을 없애면서도 현역 기득권에 유력한, 장단점이 명확한 제도이다.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문제라는 얘기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훨씬 더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하고 ‘정치개혁’이라는 이슈 자체를 정권과 여당의 손에서 빼앗아 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권에 악재가 될 숱한 사건들 속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이를 극복할 치밀한 기획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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