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또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지도부가 욕설이 뒤섞인 막말을 주고받으며 회의석상에서 정면충돌했기 때문이다. 22일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에서 정봉주 전 의원이 특별사면 1호가 돼야 한다는 취지의 모두발언을 했다. BBK 사건 의혹을 제기하다가 피선거권을 상실한 만큼 ‘정상참작’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위)과 이용득 최고위원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에 대해 이용득 최고위원이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이용득 최고위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8·15 특별사면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공개석상에서 이와 배치되는 발언을 한 유승희 최고위원의 언행을 문제 삼았다. 이용득 최고위원은 “당이 왜 이 모양이냐”, “당이 싫으면 떠나면 되지 왜 당을 상처내고 그러느냐”, “트러블메이커다”라고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이에 유승희 최고위원도 이용득 최고위원이 반말을 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맞서 회의석상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이후 정봉주 전 의원이 본인의 사면에 대한 입장을 SNS 등을 통해 밝히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뒤로 물러나 있으려니 정봉주 답지 않은 것 같아 한마디 해야겠다”며 “이용득이란 사람은 내 기억 속에 그렇게 맑고 깨끗하다거나 소신있는 사람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용득 최고위원이 과거 한국노총 위원장이던 한나라당과 정책공조를 이뤘고 참여정부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당신들이 정봉주 사면하라고 해서 되지 않는다. 이 정권이 소통을 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당신들 지금까지 한 모습이 존재감 제로에 도전하는 무한도전 제로 정당이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시선은 다시 문재인 대표 쪽에 쏠리고 있다. 주승용 최고위원과 정청래 최고위원이 충돌한 이후 유사한 상황이 다시 반복되면서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다시 되풀이해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의 존재 등으로 인한 원심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내부에서의 혼란이 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은 반복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표가 이날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한 것은 이런 상황들에 의해 증폭되고 있는 리더십을 둘러싼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대표는 공개서한에서 “최근 당 일각의 상황에 대해 우려가 많겠지만 단언하건대 분당은 없다. 통합만이 있을 뿐”이라며 “지역 정서에 기대어 분열로 정권교체의 희망을 무산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민심의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표는 “보수 집권세력이 하나로 뭉쳐 있는 상황에서 야권이 1대 1 구도로 맞서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다”, “여야 1대 1 대결구도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우리 당도, 야권 전체도 희망이 없다”, “두 번의 대선승리도 크게 보고 멀리 보며 하나 되는 단결의 구심력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대표는 “나의 임기는 총선까지다. 마지막 죽을 고비에서 장렬하게 산화할 각오로 총선을 이끌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도 주장했다.

문재인 대표의 편지에 드러난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이 편지가 당 내외에 걸쳐 분당을 포함한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흐름에 공개적인 경고장을 날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무소속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구상이 적혀있는 문건 등을 보도하고 야권 주변의 소그룹들이 제각기 추진하고 있는 정계개편 등을 전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를 곤란하게 만든 바 있다.

두 번째는 분열을 경계한다는 차원의 논리를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여야 1대 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로 확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표면적으로 보면 천정배 의원 등 넓게 보아 제1야당의 정치적 범주 안에 들어가는 외부의 구심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좀 더 넓게 본다면 진보정당과의 선거연합을 언급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특히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치세력의 재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표의 이러한 입장 표명은 물론 그 폭과 정도가 2012년의 ‘야권연대’에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 걸친 선거연합이 어찌됐든 고려될 수는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대표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총선까지’로 분명히 못 박았다는 것인데, 이 대목도 두 가지 해석을 가능케 한다. 당내 비주류들은 ‘친노 패권주의’를 문제 삼으며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포함한 공천 혁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이 계속 흔들리는 상황으로 갈 경우 10월 재보궐선거 전후에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재인 대표가 총선까지의 임기를 채우고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주장한 것은 중도사퇴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책임을 지겠다’고 주장한 부분에도 눈길이 간다. 이는 문재인 대표가 취임하면서 자신에게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을 반영한 것인데, 총선 결과에 따라 대권후보로서의 지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자기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의 혼란상은 2016년 총선 공천을 겨냥한 것이지만 장래에는 대선주자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표의 이와 같은 입장은 이후 상황이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풀이된다.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문재인 대표가 이런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공개했음에도 분열적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23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최고의 혁신은 문재인 대표의 퇴진이다, 이런 여론이 많다”면서 “전 국민의 보편적 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단언컨대 분당은 없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두렵다”면서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내가 또는 다른 누구가 어디에 가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도 발언했다. 박지원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고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은 단결과 정권교체를 주문하지만, 신당 창당파들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당 주류는 양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놓은 '셀프디스' 시리즈. 문재인 대표 편.

어찌됐건 당 운영의 ‘키’는 문재인 대표가 쥐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이후 행보가 중요해졌다. 5본부장 체제로 변화된 중앙당 인사를 탕평 원칙에 따라 하고 9월 중앙위에서 혁신안을 처리하며 공천 원칙을 확립하는 등의 절차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의 주요 관심사를 외부로 돌리는 것 역시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추가경정예산 처리나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한 대응,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에 대한 입장 표명 등 ‘재료’는 많은 상황인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심이 여기에 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내부의 분열상은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당 내의 다른 대권주자들의 역할을 충분히 만들어주고 천정배 의원 및 진보정당 등 외부의 정치세력과의 공동전선 형성을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최고위원들의 막말’과 같은 가십거리가 더 이상 제1야당의 주요 이슈로 취급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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