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장기거치식 대출을 줄이고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 비중을 높이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23일 일간지들은 정부 대책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관성이 없는데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미봉책’이라는 점에서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 조선일보 23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는 이날 1면 <‘이자만 내는 대출’ 줄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대출받도록 하자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라며 정부 방안을 해설했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3면 기사에서 “정부는 가계 부채 증가에 대응한 ‘선제적 대책’이라고 하지만, 상당수의 전문가는 ‘가계 부채가 1100조원까지 증가한 뒤에 내놓은 대책치고는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건설업계와 부동산 업계에서는 올 초까지만 해도 주택구입을 권했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대출 규제로 돌아섰다는 불만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평가를 전하기보다는 정부 방안의 내용 설명에 치중한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정부 대책에 대한 비판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부동산 띄워 경기 살리려다 가계 빚만 늘었다>는 제목의 짧은 사설에서 정부가 지난해 7월 부동산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가 1년 만에 정책기조를 정반대로 바꾼데 대해 “대출 규제를 풀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는 했지만 가계부채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올해 상반기 전국 주택 거래량이 61만여 건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많았지만 은행 가계대출도 33조6000억 원 늘어 작년 같은 기간 증가액 8조5000억원의 4배 가까운 규모라는 점을 지적하며 “문제는 부동산 시장의 온기가 소비·투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올해 성장률은 3년 만에 다시 2%대로 꺾이게 된다”, “연내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국내 대출 금리까지 올라 가계 부실이 늘어날 위험이 크다”면서 “과감한 규제 완화로 경기 흐름을 바꿀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 조선일보 23일자 사설

조선일보의 이러한 지적은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에 의해 원리금을 갚게 될 경우 일시적으로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릴 뾰족한 방법은 없는 현실을 감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외여건조차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활성화에 속도가 붙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우리 경제는 부동산 부양 카드만으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이 지난 1년의 교훈”이라면서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려 주지 않으면서 빚만 떠안기는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해 이런 해석을 뒷받침했다.

가계 소득 증대를 ‘규제완화’를 통한 체질개선을 통해 이뤄야 한다는 조선일보와는 다른 부분에 주목한 신문도 있었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1면 <2억 대출자 월 갚는 돈 50만→111만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 방안을 서술하며 “지난해 7월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취임 후 완화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은 건드리지 않되 빚 갚을 능력을 엄격히 따져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만 제거하자는 취지”라고 해설했다.

중앙일보는 이어지는 3면 기사에서 이번 방안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가계부채 관리 관계 기관들이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대해 우려감을 갖고 토론한 결과라고 전했다. 미국 금리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기준금리 운용과 금융안정 측면에서 가장 큰 위협으로 판단하는 한국은행과 경기 회복을 원하는 기획재정부, 금융불안이 걱정안 금융위원회가 절충한 결과라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번 대책이 가계부채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데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면서도 대출 제약이 자영업자 등 특정 계층에 집중될 수 있고 주택실수요자인 2~30대의 주택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근본적 대책은 소득을 늘려 빚 상환 능력을 키워주는 것뿐”이라는 전문가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23일자 사설

그러나 다소 중립적인 보도의 톤과는 달리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정부 방안에 대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중앙일보는 <‘은행이 알아서 하라’는 게 가계부채 대책이라니…>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발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과 같은 예기치 않은 충격을 대비해야 한다며 “이걸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인인 경기와 부동산 시장상황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증가 요인의 절반이 주택마련을 위한 대출수요인 상황에서 대출심사강화를 통해 수요 억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창업 및 생활자금 대출 역시 감소할만한 경기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중앙일보는 “이번 대책은 제도보다는 금융회사들의 자율규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언뜻 시장 친화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또 다른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라고도 비판했다.

정부 방안이 일견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은 상대적으로 진보적 논조를 가진 언론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사항이다. 한겨레는 이날 5면에 관련 기사를 싣고 “전문가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반응을 내놓았다”고 썼다. 대출 총량 증가를 막는 직접적 조처가 없고 일자리 부족과 전세대란이라는 가계부채 증가의 직접적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DTI 전국확대 등의 추가 조치도 예정돼있지 않고 원금 상환 부담 때문에 민간소비 위축도 예상된다는 게 그 이유다.

▲ 한겨레 23일자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내보였다. 한겨레는 정부 방안에 대해 “발표한대로 시행되면 가계부채 문제를 푸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에는 힘이 많이 달린다”면서 가계부채가 정부의 부동산 금융 규제완화 및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증가했음에도 경기 부진으로 가계 부채 감당 능력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이 대출 증가세를 누그러뜨리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겨레는 “부동산 경기를 띄워 전체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불쏘시개로 삼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면서 “특히 담보인정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은이 기준금리를 조정할 여지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임금인상 등을 통해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는데 이는 조선일보가 ‘규제완화’를 통한 경기 회복을 주문한 것과는 차이를 보인 부분이다.

한편, 경향신문은 정부의 비일관적 정책 추진을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경향신문은 이날 1면 <‘빚내 집 사라’더니…1년 만에 말 바꾼 정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 방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잡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부동산 금융규제 강화 등 적극적인 규제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경제면에서 정부 방안에 대해 “위험 수위에 다다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어떤 식으로든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다급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총량 관리와 직결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는 놔둔 채 우회적으로 증가폭과 속도를 늦추려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 경향신문 23일자 16면 기사

경향신문은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우려해 LTV·DTI 규제를 지난해 8월 한시적으로 완화한 뒤 1년 뒤 연장했지만 이번 대책의 경우 우회적으로 LTV·DTI 규제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LTV의 경우 한도는 그대로더라도 일정 부분을 분할상환하게 되면 LTV를 낮추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고 DTI 역시 소득심사 강화를 통해 한도를 낮추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외에도 소득이 일정치 않은 자영업자나 서민들에게 금융기관 문턱이 더 높아질 수 있고 은행들이 원칙대로 소득심사를 할지도 미지수라면서 한계를 재차 지적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도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깨닫고 줄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우선 주택담보인정비율과 총부채상환비율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부채의 질을 관리하는 미세조정에서 벗어나 총량을 줄이는 근본 대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가계가 빚을 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생계비와 집값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소득이 늘면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 가계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 또한 정부 책임이다”라고 지적했다.

각 언론이 서로 주목하는 바와 대안으로 제출한 내용에 차이가 보이긴 했지만 정부의 의지를 어느 정도는 평가하면서도 한계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방안은 일단 잘못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정부가 가계 소득 증대와 경기 활성화를 위한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가 핵심인데, 올해 하반기 주요 국정과제의 방점을 ‘노동개혁’에 찍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이 대목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언론이 충실히 지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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