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내놨다. 상환능력 위주 대출과 분할상환 관행을 정착시키고 상호금융권의 비주택대출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빚 내서 집 사라’로 요약되는 기존의 정책방향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금융관계기관들은 22일 이와 같은 내용의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했다.여기에는 주택담보대출 중 분할상환대출 비중을 현재 40%에서 2017년까지 45% 수준으로 높이고 거치식 대출의 거치기간도 현행 3~5년에서 1년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상기 방안을 언급하면서 “가계부채의 구조를 보다 근본적으로 건실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계의 대출구조를 처음부터 빚을 나누어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금리 변동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도록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대출 비중을 계속 높여나가겠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정책 취지를 설명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거치기간 동안 이자만 납부하다 원금을 한 번에 갚는 방식의 현행 방식의 대출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에 더해 금융회사들의 주택담보대출 심사 방식도 담보위주에서 대출자의 상환능력 위주로 전환되기 때문에 정부는 가계대출의 질을 개선하는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이 정부의 의도대로 실시된다면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손병두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기자실에서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에 대해 브리핑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비판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최근까지도 '빚내서 집사라'고 권유하다가 아제는 '능력 없으면 빚내지 말라'는 것”이라면서 “정작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액대출자의 허리띠만 조이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유은혜 대변인은 “자영업자와 서민들을 위한 수수료 낮은 자금 조달 지원과 소득 증대안, 복지 확대 등이 병행돼야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 역시 이날 브리핑에서 “불과 1년 전에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한답시고 주택담보 대출 규제를 크게 완화했던 정부가 다시 규제를 강화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결국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 직후 DTI(총부채상환비율)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살리겠다고 주장한 것과 이번 방안이 서로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전세대란’이 빚어지고 있는 와중에 부동산 대출 규제완화로 다소 무리해 빚을 져서라도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원금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가계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 역시 나온다. 또,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가까스로 온기를 살린 부동산 시장에 이번 방안이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부동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경기가 활성화되더라도 주택 가격의 상승의 폭이 적어 원금 상환 전망을 세우기 어렵게 됐고, 소액이라도 원금을 갚아나가는 게 장기적으로 가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다소 과열양상이 있었고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리스크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미국이 올 하반기에 금리인상을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증시가 위험한 신호를 보내며 경기 부진을 예고하고 있고, 그리스 문제 등 유럽발 위기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번 방안에 포함된 분할상환 원칙이 금융회사에 강제될 수 없는 선언적 성격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주택구입자금용 장기대출인 경우와 주택가격 및 소득 대비 대출금액이 큰 경우 분할상환으로 취급하고 만기연장 등 기존대출 대출조건 변경시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하면서도 “주택자금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예외 사항을 충분히 마련하겠다”고 언급해 이런 전망을 뒷받침했다.

최근 법원경매 물건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가계부채와 관련해 금융당국을 긴장케하는 요소다. 이는 아파트 등 주택으로 분류될 수 있는 신규물건의 증가폭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전세대란으로 무리하게 집을 구입한 세입자들이 빚을 갚는 과정에서 한계를 느끼고 원리금 상환을 포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들어 일각에서는 리스크 관리라는 측면에서 이번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를 위한 추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를 위한 정책이 성과를 거둔 바 없어 예기치 않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근로소득증대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 기업환류세제 등을 통해 가계소득 증대를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가계로 흘러들어가게 해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계소득 증가율 등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관측되지 않았고 배당소득증대 등에 대해서도 결국 외국인 투자자 등의 주주이익만 보장해주는 결과가 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 여당이 2015년 하반기 핵심국정과제로 ‘노동개혁’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가계소득 증대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문제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내용은 저성과자 등에 대한 일반해고를 가능케하겠다는 것과 노동자 불리한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 시 노동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조항 등을 개정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축소하겠다는 것 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해소하고 고용유연성을 제고해 기업활동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불안정노동의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결국 정부가 가계대출 문제를 포함해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대해 종합적인 청사진을 갖고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이번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은 근본적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단기적인 리스크 관리 효과를 내는 것으로 그치거나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외여건이 악화돼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메르스 등의 여파로 내수침체도 깊어지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이날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최근 경제전망 수정치를 발표하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낮췄다”면서 “추가경정예산을 고려하더라도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아진 수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해외 투자은행들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의 기구도 올해 경제성장율이 지난해보다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경기가 ‘장기적 침체국면’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위의 기관들은 한국의 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하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측면을 종합해보면 정부로서는 경기부양과 가계부채관리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언론들이 이번에 발표된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에 대해 표면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전체 상황에 대한 심층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정부의 정책기조가 오락가락한다는 수준의 비판으로는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데 불충분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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