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해킹을 통한 스마트폰 감청 의혹에 대한 의문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이 ‘직원 일동’ 명의의 성명까지 내며 정면돌파를 택했지만 의심스러운 정황이 계속 추가 보도되고 있다. 다만, 보수언론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겨레는 22일 1면에 이탈리아 해킹팀사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대행한 나나테크 대표가 국정원의 주된 감청 대상이 중국의 휴대폰이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 발언이 이병호 국정원장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감청 프로그램을 활용한 적도, 활용할 이유도 없다”, “해당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대북 첩보 수집 활동에만 활용했을 뿐 국내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과 배치된다면서 “해킹팀 유출 자료를 보면, 실제로 국정원이 내국인을 상대로 해킹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해킹팀에서 유출된 로그 기록에 국내 통신사에 할당된 IP주소가 기록돼있다는 것이다.

▲ 한겨레 22일자 1면 기사

한겨레는 “만약 국정원이 내국인 해킹을 시도했다면, 이는 ‘악성프로그램의 전달 또는 유포’를 금지하고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시각이 많다”면서 “여당 일각의 주장대로 ‘감청’이라 해도 내국인 상대로는 사전에 영장을 받아야 하는 게 원칙이라 역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와 나나테크 대표와의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됐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딸이 출산할 예정이라 나나테크 대표가 출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일보는 이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일보는 같은 날 4면 하단에 <국정원과 伊 해킹팀 중개한 업체 대표 출국, 당국이 도피 방조했나> 제목의 기사에서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사건 핵심 관계자로 거론되는 나나테크 대표 허모씨가 최근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새정치연합 등 야당은 사건 초기부터 국정원과 이탈리아 해킹업체를 중개해준 허씨의 출국금지를 강하게 요청한 터여서 정부 관계 당국의 도피 방조 논란도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 한국일보 22일자 3면 기사

한국일보는 국정원 직원인 임모씨가 관련 자료를 삭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4면에 하단 기사에서 “국가정보원이 자살한 직원 임모씨의 실종 당시 가족에게 거짓 신고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면서 국정원이 임모씨의 부인에게 경찰에 남편에 대한 실종신고를 할 것을 요구하면서 “부부싸움으로 집을 나갔다”는 이유를 대고 위치추적을 부탁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이러한 의혹에 대해 국정원이 “전반적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반응했다고도 보도했다.

또, 한국일보는 해킹 프로그램의 용도를 대북 공작용으로 설명한 국정원의 주장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이 북한의 ‘붉은별 리눅스’ OS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USB를 활용한 오프라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인 RCS(Remote Control System)의 리눅스 버전을 구매하거나 이를 위한 업그레이드를 요청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당시 임모씨가 국정원의 감찰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료 삭제에 나선 것에 대해 “허술한 내부 정보 관리가 도마에 올랐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에서는 해킹 문제를 이병호 원장에 앞서 남재준 전 원장도 인지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서 사태의 향방이 주목된다”고 쓰기도 했다. 해킹팀과 국정원이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보면 남재준 원장 시절 국정원 수뇌부가 해킹 프로그램 노출에 대해 우려한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22일자 3면 기사

전임 국정원장에 대한 문제는 경향신문도 다루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날 3면 <해킹 장비 구매 당시…원세훈 “사이버 종북좌파 청소” 지시> 제하의 기사에서 원세훈 전 원장이 재임 당시 ‘종북좌파’를 야권 일반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했고 중요 시기마다 ‘종북좌파 청소’ 등을 언급했다며 원세훈 전 원장이 ‘종북좌파’와 관련한 지시를 할 때마다 국정원의 해킹 라이선스 추가 주문 등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또 4면에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국가들 중 논란이 되고 있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는 국정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시사하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미국의 포천지 등이 이 문제를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고 이 문제에 연루된 키프로스 정보기관장은 사임했으며 방콕에서도 인권위원장이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고 공식적으로 발언하는 등 논란이 확대되고 있고 콜롬비아에서도 현지 언론 등이 이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 중앙일보 22일자 4면 기사

이러한 언론들의 보도에 반해 보수언론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 톱에 국회의원이나 공직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대화를 회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하고 이어지는 4면에서 “이 기회에 국가 안보와 범죄 근절을 위한 합법적 감청 범위를 정하고 불법 여지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는 여당 의원의 주장을 전했다. 또, 중앙일보는 같은 면 기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임모씨가 자료를 삭제할 수 있었던 것은 서버를 독립적으로 관리해왔기 때문이라고 전하면서 임모씨가 맡았던 임무에 위법적인 내용은 없었다는 국정원의 주장 역시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지면에 야당이 국정원의 해킹 의혹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북한 사이버 테러에는 침묵했다는 비판적 내용의 김진 논설위원 글을 배치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22일자 4면 기사

동아일보는 4면 하단 기사에서 중국 정보기관에 군사기밀을 넘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기무사 소속 해군 모 소령이 자신을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에 의한 불법 증거수집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나선데 대해 “국익을 지켜야 할 기무사 장교로서 되레 간첩행위를 했다는 비난을 받은 S씨가 최근의 ‘국정원 해킹 의혹’ 논란에 편승해 확인되지 않은 엉뚱한 주장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국정원이 S씨가 아니라 S씨에게서 군사기밀을 받아간 중국인 A씨 등의 휴대전화를 대상으로 RCS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S씨의 혐의를 포착한 뒤 나중에 적법한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정식 수사로 전환했을 수도 있다”면서 국정원의 불법행위 의혹을 방어했다.

▲ 조선일보 22일자 3면 기사

조선일보는 앞의 두 신문보다 적극적이다. 조선일보는 1면 톱에 북한이 이번에 유출된 이탈리아 해킹팀사의 해킹 프로그램을 분석해 과거보다 강력한 해킹수법을 동원해 사이버 공격을 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향후 2~3년간 북한의 사이버공격을 막기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3면에 국정원이 해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재미 과학자 안수명씨에 대해 여권이 ‘대공혐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사회면에서는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정원 직원에 대한 음모론을 경계하고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서 서중석 원장은 임모씨의 시신에 전형적 일산화중독 패턴이 나타났다고 전하면서 “모든 과학적 증거가 자살로 나타나는데도 타살설이 끊이지 않는 세태가 답답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날 주요 일간지 지면을 보면 보수언론은 국정원 측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를 주로 보도하고 이외의 언론은 취재와 자료 분석을 통해 추가적인 의혹을 발굴해 보도하는 이원적인 현상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점의 차이는 보일 수는 있지만 과연 각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라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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