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종종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서는 비평이 필요하다. '정치 멀리보기'는 분명한 관점과 과감한 전망을 바탕으로 정치적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심층 기사이다. 3류 정치평론처럼 소설의 영역으로 가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허황된 망상이 아니라 근거 있는 정치평론의 도를 추구한다.

다시 ‘노동개혁’이 화제다. 집권 여당 대표에 이어 대통령까지 이를 주제로 한 ‘개혁 드라이브’를 약속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국무회의에서 올해 하반기 국정운영과 관련해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준 권한으로 다음 세대에 좀 더 나은 미래를 남겨야 한다”면서 “개혁을 하지 않으면 미래세대에게 감당하기 힘든 빚을 남기게 돼 고통의 반복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이어 공공기관 선진화, 국고보조금 개혁, 임금피크제 확산, 정규직·비정규직 임금격차 개선, 노동유연성 제고, 핀테크 산업 육성, 금융규제 개선, 기술금융 확대, 자유학기제 확대, 일·학습병행제, 선취업후진학제 등 4대개혁의 주요 문제를 차례로 언급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선거가 없는 올해를 4대개혁의 적기로 보고 이를 추진하는데 올인하려 했으나 절반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다는 데 대한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도 “지금 꼭 해야만 하는 노동개혁을 잘 실천해 경제 대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최근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찍어내는데’ 역할을 해 당청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0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하반기에 노동개혁을 최우선 현안으로 삼고 당력을 총동원해서 추진하겠다”이라며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국민과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면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개혁을 해나가겠다”고 주장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작용하고 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 역시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노동시장의 역동성을 키우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사적 개혁으로서 노동개혁은 선택이 아닌 미래를 위한 필수 개혁”이라고 말해 김무성 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2일 예정된 확대 고위당정청 회동에서도 4대부문 개혁 중 노동개혁이 가장 무게감 있게 다뤄질 계획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은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정규직에 대한 고용유연화를 강화해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줄이며 노동조합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지난 4월 한국노총의 대화 결렬 선언으로 최종 무산된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논의에서의 핵심 쟁점도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였다.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의 경우 현재 정리해고와 징계에 의한 해고만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의 해고 관련 조항을 저성과자나 근무태도 불량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의 경우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돼있는 근로기준법 상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쉬운 해고’와 ‘노조 무력화’를 이루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이러한 내용의 노동개혁은 노동계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부의 노동개혁에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계획이다. 한국노총은 조합원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90%의 찬성을 얻어내 지난 13일부터 국회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의 경우 지난 15일 2차 총파업 집회를 열고 양대노총의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양대노총의 공공부문 노조들은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해 오는 9월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며 제조부문 노조들의 경우 오는 22일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김무성 대표가 “표를 잃더라도”라는 전제를 단 것은 이렇게 반대입장이 명확한 상황에서 노동개혁을 강행할 경우 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덕분에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4월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정부의 진단부터 잘못됐다면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화, 생활임금 도입 및 최저임금 인상 등을 주장한 바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러한 주장을 ‘소득주도성장’과 연결해 소비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이익도 극대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15일 한국노총 농성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행정 독재적인 발상”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입장’은 있지만 실제로 이를 정치적 문제로 제기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2016년 총선의 공천방식 등을 포함한 혁신안 등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일 중앙위원회에서 김상곤 혁신위가 제출한 사무총장직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의결하였지만 최고위원회 제도 폐지 여부와 공천 관련 방식 등의 결정은 추가 논의를 거쳐 오는 9월 중앙위에서 의결하기로 한 바 있다. 이러한 일정에 따르면 결국 혁신안과 관련한 논의가 9월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당내 혼란도 문제지만 당 외에서 원심력이 강화되는 것도 문제다. 최근 조선일보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창당계획 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천정배 의원은 이러한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 내외에서 2016년 총선을 대비한 신당창당 시나리오가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당력을 하나로 모아 단일의제에 대응하는 게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하반기에는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노동 개혁을 최우선 현안으로 삼고 당력을 총동원해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대안적 담론을 정치적인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장담하는 노동개혁에 보수언론들은 독일 사민당 소속 슈뢰더 총리가 추진한 하르츠 개혁 등을 덧붙여 담론화 하고 있다. 90년대 ‘복지병’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침체를 겪었던 독일 경제가 노동개혁을 통해 다시 되살아났고, 이를 추진한 사민당은 잠시 정권을 잃었으나(현재는 메르켈 총리의 기민연합과 대연정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됐다는 게 이런 담론의 핵심 내용이다.

그러나 하르츠 개혁이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평가는 독일 현지와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독일의 노동개혁에 대해 결과적으로 생산성 제고를 이루는데 실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고 강행한 하르츠 개혁에도 불구하고 실업기금과 생활보조금 지급액수가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 정권은 법인세를 낮추고 기업의 사회보장분담금을 줄이며 해고 제한을 완화하고 복지제도를 축소했으나 결과는 기업 이윤의 금융화였다. 오히려 독일 경제 성장의 기폭제가 된 것은 2002년 이후 유로화가 전면 사용되면서 였다. 수출 중심의 제조업 경제가 유로화의 혜택으로 호황을 맞이했고 이를 중심으로 독일은 유럽 최고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과정의 이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최근까지 논란의 대상이 된 그리스 위기가 잘 보여주는 바다.

정부 여당의 노동개혁에 대해서는 데이빗 캐머런 영국 총리의 ‘노조와의 전쟁’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는 영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미 마가렛 대처의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에 장기간의 피해를 입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이제 영국의 노동자들은 무기력한 노동당과 과거의 오류를 다시 반복하는 보수당 사이에서 또 한 번의 고통을 받을 운명에 처했다. 바로 이것을 따라하겠다는 게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라는 사실을 제1야당을 비롯한 전체 야권이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상황을 ‘노동 개혁’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 야권의 운명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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