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들썩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해온 ‘보통국가화’의 7부능선을 넘게 해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 정비를 집권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강행처리한 이후 반대여론이 폭발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를 통한 경기활성화로 긍정적 평가를 받았던 아베 내각은 이 사건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정치적 위기를 맞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산케이신문과 후지뉴스네트워크가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지난달 조사에서 6.8%포인트 하락한 39.3%에 그쳤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지난달 대비 10.2%포인트 상승한 52.6%였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재집권 이후 이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을 앞지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외에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교도통신, NHK 등의 여론조사에서도 아베 내각 반대 여론이 지지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거부감은 실체적으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15일 도쿄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약 6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안보법제 처리에 반대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안보법제 반대 시위는 삿포로, 나고야, 교토, 히로시마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이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을 추진하면서 3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안보투쟁’ 국면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2일 오후 도쿄 도내 쉐라톤 미야코 호텔에서 주일 한국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당성 위기와 미래 공포, 두 가지 저항에 휩싸인 아베 내각

아베 신조 내각에 대한 반감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확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집권 자민당이 이 문제를 중의원에서 처리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자민당은 지난 15일 중의원 안보법제특위에서 11개 안보 관련 법안 제·개정안에 대한 표결을 단독으로 강행한데 이어 16일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날치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단독 처리했다. 이런 모습을 연출한 것은 안보법제에 특별한 찬반 의사를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사태를 부정적으로 비치게 만들고 있다.

안보법제 처리에 대한 ‘위헌’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문제에서 부정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지난 6월 일본의 헌법학자 166명은 안보법제에 대해 “헌법 9조를 근본적으로 위반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20일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모임’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민당이 중의원 본회의에서 안보 관련 법안을 단독 처리한 것에 대해 “위헌성이 있는 법안이 중의원에서 강행처리된 것은 입헌주의와 민주주의의 파괴이며 국민여론을 무시한 독재정치”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장에는 150여 명의 학자가 참석했으며 성명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힌 학자는 1만 명을 넘겼다.

아베 신조 내각에 대한 반감이 확대되는 두 번째 이유는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실제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계기는 지난 1월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와 유카와 하루나를 참수한 사건이다. 당시 IS 측은 일본이 서방의 IS격퇴 작전에 2억달러 지원을 언급한 점을 문제 삼으며 “인질 참수는 일본 정부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중동 순방에 나서 이집트 카이로에서 “국제 협력을 기반에 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가치 아래 일본은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과 능력을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바치겠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언론은 이를 아베 신조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홍보용 연설’로 해석하기도 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말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논리적 전제이기 때문이다. 즉, IS의 일본인 인질 참수는 결국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실제로 일본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 사건은 2013년 말 일본판 NSC설립을 가능케 하는 ‘특정비밀보호법안’ 입법 반대를 주장하며 형성된 ‘반-아베’ 세력의 확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게 됐다.

신념형 정치인 아베, '보통국가'는 그가 정치를 하는 이유

그런데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눈치다. 아베 신조 총리는 ‘날치기 논란’이 빚어진 중의원 강행처리 다음날인 17일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건설 계획을 백지로 돌리겠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안보법제 정비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시사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1일 후지TV에 출연해 지지율이 하락하고 반대여론의 압력이 증가하는 상황에 대해 “지지율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를 받으면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안보법제 정비를 통한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밀어 붙이겠다는 주장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신념형 정치인’이라는 데에서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보통국가화야 말로 ‘정치를 하는 이유’에 해당하며 집단적 자위권 확보는 이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베 신조 총리로서는 안보법제 정비를 통한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이러한 입장은 ‘아베노믹스’와 미국의 지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집권 직후 ‘양적완화’에 비견되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래로 침체기에 들어섰던 일본 제조업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추진에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양해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미국은 그간 아베노믹스를 통한 엔저현상을 묵인하는 것으로 사실상 아베 신조 총리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왔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지지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는 안보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동중국해에서 영토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 관리를 시도하면서도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방식으로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추진을 통한 압박과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을 통한 저항(?)이 맞부딪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의 절대적 우방인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데 아베 신조 총리가 이를 추진할 적임자로 꼽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아베 신조 내각의 유지를 위한 일정한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이 어거지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했던 것도 이러한 미국의 입장이 작용한 측면이 크다.

즉, 아베 신조 내각은 경기활성화를 지렛대로 해 평화헌법 무력화에 나서고, 평화헌법 무력화를 통해 무너진 지지율은 다시 경기활성화를 통해 메꾸는 전략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고 미국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 기념 연설에 역사인식 개선을 통한 관계개선을 표명하고 중국이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2차대전 승전 70주년 행사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제스추어를 취하게 되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 재편이 불가피해진다. 여기서 새롭게 형성되는 질서에 따라 일본 내의 ‘반-아베’ 흐름의 향방도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동아시아 패권 재편기에 한국이 준비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아베 신조 내각에 반대하는 일본 내 흐름을 손놓고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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