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을 통한 스마트폰 감청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사태는 점입가경의 수순으로 번지고 있다. 국정원은 ‘직원 일동’ 명의로 입장을 발표하는 극약처방까지 써가면서 정면대응을 감행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여당인 새누리당도 야당의 의혹제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보수언론 역시 다소 신중한 태도로 국정원측 입장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21일 1면 하단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와 국회 상임이 차원의 청문회 개최, 국회 긴급 현안질의, 국회 내 별도 특위 설치, 이병호 국정원장의 현안 질의 출석 등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검찰 역시 수사에 들어간 상황은 아니라고 전했다.

▲ 조선일보 21일자 3면 기사

또,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3면에 <“정치권 소모적인 논쟁 그만, 빨리 국정원 들어가 로그기록 조사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빨리 로그 기록을 확보해 분석하는 것이 논란을 종식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실었다. 이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유출된 자료에 국내 IP 138개가 발견된 점을 들어 내국인 사찰 의혹 등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해커는 해킹할 때 수십개 이상의 IP를 경우하는 게 통상적이다”라면서 “해커가 우리나라 사이트를 해킹하면서 중간에 미국, 일본, 중국, 영국 등 10여개 국가를 경유했다고 그걸 다 해킹했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안철수 의원이 보안 전문가라곤 하지만 20년 전 인터넷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을 만든 뒤로는 경영자였거나 큰 회사의 이사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해킹과 보안 현장에 있지 않았다”, “국회의원 중 가장 전문가인 안 의원조차 국정원의 복잡한 로그 기록을 직접 봤을 때 제대로 분석하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아무도 로그 기록은 보지 않고 외부에서 정쟁만 하다가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도 모른 채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최전방 공격수’인 안철수 의원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3면 하단 기사에서 현행 법령에 따라 감청을 해야 할 때 내국인일 경우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북한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정보·수사 당국이 북한 국적자를 비롯한 외국인에 대한 감청 허가를 4개월에 한 차례씩 대통령에게서 받는다”는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21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국정원 해킹 의혹’ 음모론까지 번진 건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국정원의 입장을 재차 옹호했다. 조선일보는 해킹팀의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30여개국 중 대형 정치 스캔들로 문제가 비화된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면서 “2008년 광우병 시위 때부터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까지 대형 현안이 터지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음모론이 판을 치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병이라 해도 달리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러면서도 “이렇게 된 데는 국정원의 책임이 크다. 불법 도청과 정치 개입으로 얼룩진 국정원의 과거가 이런 음모론의 온상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19일 국정원이 ‘직원 일동’ 명의로 성명서를 낸 것에 대해 “2012년 대선 막판에 불거진 댓글 의혹, 간척 조작 논란 등에 휘말리면서 누적된 국정원의 위기의식이 이런 집단 행동으로 이어졌다”면서 “그렇다 해도 국정원이 과연 이 나라의 최고 정보기관답게 행동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국정원을 향한 의혹 제기를 ‘자해 행위’에 비유하면서 “정치권이 국정원 해킹 의혹을 규명하면서도 국가 안보를 해치지 않는 방안을 찾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 더 큰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이런 보도와 주장을 검토하면 균형이 잡혀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 문제를 1면에 대서특필하는 형식으로 부각시키지 않으면서도 정치권과 국정원에 대한 비판을 골고루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잘 뜯어보면 결국 국정원에 우호적인 행보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사에 나온 ‘전문가’들의 발언은 결국 국정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들이며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국정원의 대응을 비판한 것도 근본적 쟁점을 짚은 게 아니라 해당 의혹이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이병호 국정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 오히려 문제라고 주장한 것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21일자 2면 기사

이날은 다른 보수언론도 조선일보와 비슷한 편집과 톤으로 일관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에 자살한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본인의 대북공작용 해킹이 내국인 사찰로 오해받을까 걱정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기사를 배치했다. 중앙일보는 2면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이 해킹 의혹에 대해 이례적으로 발빠른 대응을 했고 이를 계기로 국정원 내부 감찰 등이 진행돼 임모씨가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됐을 수 있다고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번에 문제가 된 장비 도입이 지난 정부 때 일이라 감찰팀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과감하게 조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여권관계자의 말을 전하면서 “임씨에게는 감찰이 야당의 정치 공세 만큼이나 큰 심적 부담이 됐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이 문제와 관련한 사설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 다만 중앙일보는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기자의 ‘취재일기’ 코너 칼럼을 통해 국정원이 ‘직원 일동’ 명의로 낸 입장문에 울분과 억울함이 묻어있다면서 “그들이 느끼는 억울함에 국민이 선뜻 공감하지 못하는 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된 국정원의 ‘흑역사’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팀을 운영했음을 실토한 2005년의 불법감청파문, 현재진행형인 2012년 국정원 심리전단의 비방 댓글 파문 등이 그 단면들”이라고 지적하고 “대선과 총선을 앞둔 2012년에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건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맨 것”이라는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역시 결국 이 문제의 책임이 현 정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동아일보도 위의 보도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관점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4면 기사에서 진영논리나 정치논리가 아닌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의혹을 풀어가야 한다고 쓰고 국정원이 ‘직원 일동’ 명의로 낸 입장문은 이병호 국정원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중앙일보처럼 이 문제에 대한 사설을 따로 배치하지는 않았다.

▲ 동아일보 21일자 칼럼

하지만 동아일보는 김정훈 사회부장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코너의 칼럼에서 해킹 프로그램의 구입 절차가 2010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질 당시 시작돼 의혹을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면서도 “총선 직전에, 대선 직전에 구입한 걸 보니 선거용 사찰을 한 게 틀림없다는 식의 의심을 퍼뜨리는 것은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썼다. 이 글에서 김정훈 사회부장은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 모든 걸 공개하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이를 근거로 진실이 뭔지 따져볼 일”이라면서 “더욱이 야당에는 안철수라는 당대 최고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가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보수언론이 안철수 의원을 향한 ‘아웃복싱’을 시도하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라도 국정원 내부의 어떤 기록이나 장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직감하고 있다. 국정원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방법을 얼마든지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결말에 가서는 안철수 의원이 ‘독배’를 마시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때가 되면 보수언론이 이날처럼 점잖은 태도만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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