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특수한 경험들이 보편적 가치를 구성한다.
- 미셸 K. 들뢰즈(질 들뢰즈가 아님, 바로 나)

역시, 세상은 계급으로도 나눠지지만 근본적으로는 똘아이와 안똘아이로 나눠진다.
- 어느 블로거(역시, 바로 나)

심상치 않았다. 인터넷에 악플 다는 일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하겠지만, 분명 심상치 않았다. ‘광주좌익’, ‘빨치산의 손녀’ 따위의 문맥이 우르르 쏟아지는 일은 그리 평범한 풍경은 분명 아니다. 더군다나 그날은 <조선일보>마저 칭찬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익들이 궐기했던 날이었고, KBS가 시선을 360도 돌려버려 미네르바에 이어 아고라까지 돌아버린 그런 날이었다.

▲ 11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
물론, 그 행위의 천사스러움은 비범한 일이다. 우익 악플러들이, 아니 우익 악플러들의 손가락질을 결정한 그 자가 ‘그 비범한 천사스러움’을 어찌 알 수나 있겠는가. 그건 손톱의 때만큼도, 정말 가당치도 않은 생각이다. 그 자는 “광주 사태는 17~22살 양아치 계급과 일부 시민, 학생들이 조직적인 선동에 놀아나 벌인 난동”이라 말하고, 김구 선생을 일컬어 “현대판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나 마찬가지”라 칭하고, 심지어 “조선이 먹힐 짓해서 일본에 먹힌 것 아닌가. 못나서 당해 놓고 일본을 원망한다” 따위의 사사로운 발언으로 겨우 연명하는 치이다. 그 자가 ‘그 비범한 천사스러움’을 이해한다면 오히려 그것이야 말로 난리법석 날 일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시스템 클럽인간 뭔가 하는 음습한 시시껄렁함을 운영하는 그 늙은이가 얼큰하게 술이라도 걸친 듯 심상치 않은 문맥으로 인터넷에 올랐다. 당시, 인터넷에 악플 자리는 비어있었고,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기사는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 시스템 늙은이는 똘아이들만의 전용 카드인 ‘연좌제 하나면 충분해’ 카드를 사용한다. 광주 좌익과 빨치산을 옵션으로 하는. 그 시스템 늙은이는 급하게 ‘좌익 여동생’을 주문했다. 그를 따라 잇따라 인터넷에 오르게 된 오른손잡이 청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더군. 그들은 결단코 후에 있을 조선일보의 날카로운 배신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그렇게 ‘좌익 여동생’을 퍼 날랐다. ‘연좌제 카드’를 사용한 시스템 늙은이의 악플깡은 처음엔 괜찮아 보였지만, 결국 시스템 늙은이와 우익 신문의 얇은 우애마저 치명적으로 갈라놓게 된 눈물의 씨앗이었지.

그렇다. 언제나 문제는 사소하고 아주 개인적이지만 또 언제나 늘 정치적인 것이다. 시스템 늙은이는 조선일보의 놀림에 발끈하여, 현재의 상황이 좌익 인민재판임을 주장하며 오늘 아침 성큼성큼 라디오로 걸어 나갔다. 글쎄, 그걸 뭐라 해야 할까? 출연료를 챙기기 위한 한 인간의 숭고한 걸음. 아니면 집단적 따돌림과 그로 인한 고독을 존재 입증으로 연결하기 위한 실천적인 헛소리. 그것도 아니라며 시대의 뒷자리 귀퉁이 어딘가를 멍하니 뭉개고 앉아있는 사물적 존재가 아닌 동물적 존재로서의 자기 웅변이랄까. 하여간 그 시스템 늙은이와 오늘 아침 라디오는 그렇게 하찮았다.

<시스템 늙은이> “이러저러하니, 이래저래 하니 … 모략이고 좌익세력에 의한 인민재판을 중단해주세요.”
<라디오 진행자> “이러저러하니, 이재저래 하니 … 이치에 맞는 얘기를 하시죠.”

이제 됐으니 재판이나 어서 끝내 달라는 그 늙은이와 묻는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이나 하라는 진행자간의 팽팽한 긴장과 모순은 결국, 조선일보에 의해 중단됐다. 셧더마우스를 뜻하는 사이버모욕죄의 빨간 불이 들어왔다.

<한나라당> “이러저러하니, 이래저래 하니 … 지만원은 우익이 아니란 말이야.”
<조선일보> “이러저러하니, 이래저래 하니 … 지만원 같은 악플러는 ‘사이버모욕죄의 도입이건 아니면 다른 무슨 방안이건 무책임한 사이버 폭력을 몰아내기 위한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 한단 말이지.”

앞말은 길어지고 뒷말은 짧아지는 조선일보만의 언어적 격렬함은 우익 안에 새로운 리듬감을 생성했다. 조선일보 입장에서 시스템 늙은이는 괴기스러운 악플이 천사를 노려보고 있는 인터넷의 풍경과 기막히게 매치되었으며, 나경원의 처절함과 최진실의 절명함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얽혀든 시원한 뚫림이었다. 고마워요, 시스템 늙은이. 잘 썼어요, 당신 따위. 내게 중요한 것은 ‘사이버모욕죄’ 뿐이랍니다.

어찌되었건, 천사를 향한 그 늙은이의 도발은 그 늙은이가 장삿속으로 천사를 팔려 인터넷에 오르던 그 순간에 이미 어쩔 도리 없는 파국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구? 이유는 조선일보만이 안다. 너와 내가 그 시간에 우연히도 인터넷에 함께 올라, 늙은이를 욕하든 천사를 욕하든 ‘우리’라는 이름의 악플러로 불리게 된 어떤 이치처럼. 어떤 집단 그리고 그 집단 내 사건들은 명확한 결론 없이 흐르기만 할 뿐이고, 그것은 누구도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이 ‘사이버모욕’이 될 뿐이다. 언제나 악플이 있고, 그건 때때로 위험하니까. (그렇다고 나경원처럼 모든 악플을 일일이 삭제하는 번거로운 일을 할 순 없잖아? 바쁘디 바쁜 국회의원 나리께서.)

분노를 이기지 못한 그 늙은이는 결국 다시 한 번 천사를 걷어찼다지만, 조선일보는 보란 듯 돌이킬 수 없는 사설을 쏟아 부었어.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은 바로 이런 때 일어나는 법이지.

<조선일보> “거, 좀 ‘입법’합시다.”

그 늙은이와 천사를 횡단하며, 인터넷 안의 긴장을 날카롭게 째고 든 조선일보의 오래된 외침은 실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반전이었고, 나경원 외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발력이었다. 생각해보라, 우린 이렇게 앞가림조차 분간할 수 없는 무거운 엉덩이를 걸친 사람들이다. 아, 어쩌란 말인가. 그럭저럭 겨우 ‘우리’가 네티즌이 된 것 뿐인데, 그 모두를 동일한 모욕이라 하여 처벌하겠다는데. 지만원이 나쁘다면 사이버모욕죄를 찬성하세요. 조선일보, 당신은 그것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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