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서야 미네르바님의 절필 선언에 이어 은퇴선언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둥신과 미네르바님에 대한 재미로 볼 만한 포스팅도 한 적이 있는데 말이죠.
2008/10/30 - [BlahBlah] - 우연이 수없이 겹치면 필연이 되고 현실이 된다.

인터넷을 주욱 둘러보니 미네르바 은퇴 선언과 그를 부추긴 정부의 개인 뒷조사와 압력에 대한 글이 상당히 많더군요.
맞습니다.
지금은 우선 감정적으로 억울해야 할 것은 억울해야 하고 분한 건 분하다고 감정을 소모시켜야 할 때입니다.
얼마 시간도 지나지 않았고 이런 걸 그저 뒷짐지고 한걸음 물러나 관망만 한다는 것은 이런 류의 사건의 부조리함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히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우리는 감정이 없는 로봇이 아닙니다.

저는 경제에 대해 남과 심도 있는 토론과 의견 교환을 할 정도로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미네르바의 지금까지의 의견들이 정말 세세한 부분부터 큰 흐름까지 주욱 실현되어 왔던 걸 보았기에 저 사람은 참 대단하다… 무언가 혜안이 있구나 싶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직업, 교육 정도, 지식 등 뭐 하나 아는 바가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학문이 있으메 그 학문의 응용점의 한 부류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들 때 그 예측의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그에 수반한 지식과 정보 체계가 그 수준을 따라야 한다는 걸 믿으므로 어느 정도를 넘어선 경제 지식을 갖춘 현장 실무자가 아닐까 생각만 할 뿐이죠.

아무튼 미네르바는 한국을 버렸고 그렇게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옳은 소리를 한다고 지지받는 사람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수많은 그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마치 그 옛날 박노해님을 추억하게 하여 씁쓸하기만 합니다.

인터넷은 또다시 미네르바가 진짜 신이였냐?… 그렇게 쪽집게였냐?… 라는 무의미한 소모성 논쟁이 한창입니다.
거기에 편승하여 경제가 어려울수록 밝은 전망으로 투자와 소비심리를 위축시켜선 안 되기에 결과론적으론 이런 수순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는 결론까지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80년대의 박노해와 오늘의 미네르바가 말하는 게 모두 틀린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도 지금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냐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볼테르 (좋은 글 많이 써주시는 도아님 블로그에도 붙어 있더군요.)

경제에 관련한 분야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저마다의 지식으로 이번 미네르바 건을 재단질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저의 우문을 추가하고 싶은 용기는 없습니다.

허나 정부의 의도가 뭐건 경제가 어떻냐건 그런 걸 떠나서 우리는 오늘 정말 소중한 걸 잃은 것이 아닐까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의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사회적 담론의 수용성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런 담론의 하나를 강제로 빼앗긴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는 배움의 스승을 만나는 것이고 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사상의 폭을 넓힐수 있게 배우는 것이고 나 이외의 타인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그것을 판가름할 수 있는 이치를 획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고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옳든 그르든 타인의 정신을 최소한의 제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좁게는 친구, 가족의 얘기부터 시작해서 학교, 사회, 정부와 정권을, 기득권을… 어떤 부류, 어떤 이해관계를 떠나서 들을 수 있도록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일단 틀린 것이라도 그 틀린 것에 대해 뭘 제대로 듣고 나서야 틀린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오늘 일어난 미네르바 은퇴 선언이 지금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분하고 원통합니다.
어떤 이가 저 사람의 의견은 위험하다고 단정짓고 틀린 것이라 단정지어 제게 그런 다른 의견을 격리시킬 권리를 가진단 말입니까?
고작 한 사람의 네티즌의 의견이 아무리 지지층이 넓다고 해도 정부가 나서서 입을 틀어 막고 있는 이런 시대에 대한 절망이 가슴 한 가득 밀려듭니다.
우리의 전, 전전 세대들이 느껴왔던 그런 절망이 지금 2008년의 시대에 다시 재현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슬픕니다.

매카시즘이 경멸스러운 것은 공산주의라는 한 사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일방적인 차별과 격리의 장치로 작용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어떤 이즘의 원칙을 내세워 그에 반하는 모든 의견을 묵살시키고 침묵시켰기에 경멸스러운 것입니다.
드레퓌스 사건의 에밀 졸라가 위대한 것은 시대와 사회가 모두 그것에 대해 눈을 감고 모른 척할 때 그것을 분연히 일어나 홀로 고발하고 일깨웠기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합니다.
지금 이런 시대의 괴물들을 만든 당사자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말이죠.
혹자는 친일 청산의 부재, 성장제일주의의 폐혜, 이해와 관용의 부재를 논하겠지만 결국은 우리 스스로 이런 시대를 만들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이 새천년으로 접어든 지 10년 가까이 되었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단지 분노하기만 합니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너도 나도 분노하고 원통해하고 눈물 흘립니다.
하지만 그 게 끝입니다.
실천이 부재한 사고는 의식 없는 행동과 똑같을 따름입니다.
너도 나도 누가 지금 정권과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냐고 묻지만 당장 선거날은 즐거운 휴일인 사람들과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게 도운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까지 시간은 흘렀고 모든 것이 삐걱대기 시작했고 모두들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분노만 하고 있어서 달라질 게 무언가는 너도 나도… 모든 이들이 이제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실 첨언하자면 저는 인터넷에서 그렇게 분노와 원통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당장 행동해야 할 에너지도 부족할 판에 분노하고 억울해한 연휴에 밀려드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인간인 이상 모두들 가질 테고 그것을 추스려 일어나는 것은 차라리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보다 배는 힘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이 블로그에서 종종 얘기했던 촛불의 사그라짐에 대한 우려도 참여의 정량적 측정이 문제가 아니라 그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토론은 시끄럽다고 배척받고 “다른 데서 해주세요”라는 정중한 외면으로 취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실감과 정치적 사회적 담론에 대한 경멸이 지금 이런 시대를 낳았고 다시 반복하여 확대 재생산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은 바로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오늘은 미네르바로 상징되는 개인의 주리틀기까지 자행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최진실법이라는 걸 아직도 찬성하는 분이 계신지 참으로 궁금하고 아직도 정치 얘기라면 신물이 나는지, 격리되어 마땅한 저급한 얘기인지도 궁금합니다.

비평과 평론에 대안 제시는 필수라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 들려오는 해괴한 논리를 200프로 부정하지만, 하나 제시해본다면 실생활에서,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면서 복장이 무너지시고 기가 차서 하늘이 노랗게 보이시는 분들은 그 열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번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와는 의견이 다른 가족과 먼저 얘기해보시고 친구와 직장 동료들과 먼저 얘기를 해보세요.

활동을 하다보면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분노하시는 분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분들도 감히 그렇게 행동할 용기를 가지신 분들은 별로 없더군요.
그런 얘기는 가족간의, 친구간의, 동료간의 관계만 나쁘게 한다고 무조건 피하시는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서 여러분들이 여타의 다른 사람들처럼 정치, 사회적 단체를 만들고 가입을 하고 활동하시지 않는 이상 여러분들이 분노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진이 빠져 상실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힐 뿐이고 이건 상당히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인터넷에서 큰 소리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 땅이 뒤집히는 듯 통곡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떨 땐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땐 저렇게 분노하면서 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여 작은 것부터 바꿀 생각은 안할까 의문도 듭니다.
결정적으로 상실감의 허무에 빠져서 그것이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이어져 그 분위기를 더 확산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에밀 졸라가 위대한 것은 그가 진정한 용기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무도 그에게 동조하지 않았지만 “나는 고발한다”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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