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변화의 상징’이라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앞다투어 칭송하던 보수신문들,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훈계’가 시작된 것이다.

▲ 조선일보 14일치 1면
<조선일보>는 오늘치(14일) 1면 아래의 ‘팔면봉’에서 “오바마, 인터넷으로 국민과 대화 정치한다고 많이 듣던 얘기. ‘컴맹’ 노년층은 그냥 가만 계시라?”라며, 느닷없는 ‘컴맹 배제론’을 꺼내들고 오바마 당선자의 행보를 강하게 비꼬는 내용을 실었다.

조선, 오바마의 인터넷 소통에 불만?

또 이날 조선 국제면(21면)에는 ‘‘오바마 2.0’ 시대’ 기사를 통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이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의 내용을 다루면서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결집한 지지자들이 한번 돌아서면 더 큰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지난해 오바마도 테러 용의자에 대한 감청을 허가하는 법률에 동의했다가 지지자 수천명이 그의 웹사이트로 몰려가 비난의 글을 쏟아부었던 적이 있다”면서 ‘오바마 식 소통 정치’에 딴죽을 걸고 있다.

조선의 같은 날 오피니언(30~31면) 지면에서 오바마에 대한 훈계는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이날 사설 ‘오바마 육성으로 북이 넘어선 안 될 선 그어야’에서 조선은 최근 북한의 강경대응과 관련해 “한·미의 대응은 이 같은 북한의 계산을 헛되게 만들 수 있을만큼 단호하고 대담하되, 유연함과 절제가 있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육성을 통해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일”이라고 충고했다.

▲ 조선일보 14일치 31면 사설
이어 조선은 오바마 당선자의 지난 10월 성명 중 ‘만약 북한이 철저한 검증을 거부한다면 에너지 지원을 중단하고 최근 철회한 제재를 다시 가하며 새로운 제재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인용하면서 “북한이 오바마 당선자에 대한 오판과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게 하는 데 필요한 조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동아, 오바마에 ‘북의 실체 똑바로 보라’는 충고

같은날 <동아일보>도 ‘훈계조’의 사설을 내놓았다. 해당 사설 ‘오바마, 북의 생떼 보며 어떤 집단인지 통찰하기를’에서 “우리 정부도 잘 대응해야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진영의 인식과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면서 “오바마 당선인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북이 어떤 집단인지 그 실체를 똑바로 봐야 할 것”이라고 대북정책론(?)을 강의하고 있다.

또 “앞에서는 약속을 하고도 뒤돌아서면 온갖 트집과 조건을 붙여 이행하지 않거나 더 도발적인 조치로 논의의 초점을 흐리는 게 북이다. 이번에 나온 ‘핵 시료 채취 거부’가 단적인 예다”며 “북과 대화하는 것은 좋으나 북의 의도와 전술 전략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아는 “이를 위해선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가 절대적이다. 한국과 엇박자를 보이는 대북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면서 “한국 정부 이상으로 오바마 차기 정부도 한·미 공조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14일치 31면 사설
오바마의 ‘햇볕 정책’ 클린턴 정부 인사들 대거 기용 ‘눈길’

이같이 조선과 동아 등이 입을 모아 강경대응을 주문하며 강도높은 ‘오바마 훈계’를 선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오바마 쪽이 12일 ‘햇볕정책’의 대명사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을 G20 정상회담에 대리인으로 참석시키겠다는 발표를 의식한 것일까. 아니면 웬디 셔먼 등 클린턴 정부 시절 인사들이 오바마 인수위에 대거 포진하게 된 것 때문에 보수신문들의 ‘북미 관계’ 전망이 불안해진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는 닮은꼴’이라는 청와대와 보수언론들의 주장은 현실을 곧이곧대로 인정할 수 없는 자기기만이자, 불안을 달래기 위한 자기위안이었는지 모른다. 양쪽이 닮으려면 둘 다 변하거나 둘 중 하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

▲ 한겨레 14일치 14면 기사
보수신문들의 오바마 훈계가 자신의 정체성을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적극적으로 자아를 드러내는 것인지, 아니면 정체성을 버리는 과정의 ‘성장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지난 12일자 <경향신문>의 시론 '미 대북정책 변함없을 것이라고?'에서 이명박 정부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게 먼저라고 꼬집고 있다.

김 교수는 "부시와 오바마가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는 결국 북한이 무모한 짓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면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미 간 갈등은 일방의 전적인 책임이 아니라 대부분 상호적인 것이었다"면서 "오바마의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는 데도 북한이 약속을 팽개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 부시와 오바마의 차이에 대해 "상대방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대통령과, 상대방과 직접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대통령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면서 "오바마의 당선을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안타까움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일부러 눈감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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