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뉴욕현대미술관 25주년 기념행사로 거대한 사진전 <인간가족전(The Family of Man>이 열렸다. 이 사진전은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기획했는데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의 사진가의 작품을 모아 500장 이상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늙어서 죽게 되는 인류 공통의 이야기를 다룬 사진들이 전시되었고 뉴욕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 여러 국가들에서 순회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대중의 반응이 좋았다. 전시방법에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사진을 그저 벽에 걸어 일률적으로 보여주던 방식에서 벗어나 벽면과 천장, 지면 등을 모두 활용하여 관람할 수 있는 독특한 전시방식이 도입되었다.

2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 이 사진전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사랑과 가족을 강조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굳이 ‘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겠지만 이 전시회는 그 의도야 어찌됐든 또 다른 ‘효과’를 내게 된다. 보편의 강조를 통해 수많은 차이가 은폐되는 것이 그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세계의 각 국가들에서도, 모두 각기 다른 사회경제적인 상황이 존재한다. 결코 공평하지 않은 여러 조건들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당하지 않게 주어진 ‘차이’들이 ‘보편’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다. 사진 속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생로병사는 같은 무게일 수 없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보편적인 삶이지만 그들이 처한 삶은 모두 다르다.

미디어는 제작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정정도 이데올로기적으로 기능하게 된다. 우연과 무의식의 작동은 생각보다 힘이 있는 또 다른 결과 혹은 효과를 낳는다. 영화 <국제시장>은 우리 부모들과 조부모들이 어떻게 과거 속에서 현재를 일구기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들이 이 사회를 일구는데 흘린 땀을 존중하며, 이제는 늙어버린 그들을 위해 이 사회가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현실 속에서 노인에 대한 복지가 얼만큼 이루어지고 있나를 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영화가 담고 있는 가치에 부응하는 것이지 않나.

누군가는 추억으로 누군가는 감동적인 역사로 영화를 본다. 피곤하게 이데올로기를 운운하지 말고 편안하게 영화를 즐기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 속에서 숨겨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문득 어떤 프로그램에서 강용석이 아이들과 지내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 없이 세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이었는데 막내 아들과 악마놀이를 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도 평범한 아버지다. 피곤에 쩔어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고, 아이가 놀자고 하면 따뜻한 웃음으로 놀아주는 평범한 아버지다. 매우 일상적이고 편안한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참 따뜻한 아버지구나. 내가 그 사람을 잘못 알았었구나. 응답하라 시리즈도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를 자극하는데 기여했다. 우리 모두 지내온 과거. 젊음과 친구, 열정과 꿈.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존재한다. 최근의 경향은 분명히 뚜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보편적 정서를 자극하는 콘텐츠들. <국제시장>이나 응답하라 시리즈. 육아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예능 프로그램들. 각 콘텐츠들은 많은 인기를 얻고 있고 그 콘텐츠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경향이 의도치 않게 가려버리는 ‘차이’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정미정 /

현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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