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 예술 분야에서 기관 통폐합 문제가 다소 간의 논란이 되었다. 문화예술 관련 부서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문화예술기관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 퍼진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 4월 15일 프레스센터에서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향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기재부 입장을 대변한 발제자는 문화 부문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와 예술경영지원센터(예경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예술교육진흥원) 등 기능이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기관들을 하나로 묶는 방안을 거론했다.(더불어 한국문학번역원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합치는 방안도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예술계에서는 문화예술 분야 지원기구들의 위상과 역할, 형태에 대한 논의가 문화예술 측면이 아닌 오로지 재정효율성이라는 일방향적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듯 하다. 필자 역시도 이런 우려에 대해 대부분 동의하는 바다. 기구 통폐합을 주장하는 측이 내밀고 있는 효율성의 강화나 시너지 효과의 증대는 실상 전혀 검증되지 않았거나 검증되기 힘든, 제대로 시뮬레이션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사견에 불과하겠지만 현재의 구조에서 각각의 기관들의 기능을 기계적으로 결합한다면 시너지를 발휘하기는커녕 기존의 미약하게 존재하고 있는 기능마저도 정부의 편이주의 예산 지출의 흐름에 휩쓸려 한 두 개의 국책성 사업으로 심각한 쏠림이 일어날 것이라 예단해 볼 수도 있다. 이것이 행정이 생각하는 효율성 강화일 수도 있겠지만 문화 정책과 예산의 집행은 불가피하게 소액다건을 부분적으로는 취해야 한다고 본다. 문화예산에서도 효율성이 중요하지만 그 효율성은 규모를 통해 추구할 수 있는 효율성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문화정책은 어차피 공공 정책의 성격이 강하며 문화예산 역시 즉각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가시적인 투입 효과로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현재 경제부처 등에서 그리고 있는, 예술위를 중심으로 한 예경센터와 예술교육진흥원 통합 방안에 대해, 어떤 깊은 우려나 기대에 앞서 실소부터 터진다. 각각의 기관, 특히 가장 중심이 되고 있는 예술위의 현재 포지션을 보자면 특히 그렇다. 과연 예술위가 예술위답게 존재하고 있는가. 공교롭게도 올 8월이면 예술위는 과거 문예진흥원에서 예술위로 전환한지 10년을 맞는다. ‘1973년 체제’라고 이름 붙인 관치 행정기관(문예진흥원) 중심의 문예진흥기금 지원 사업에서 탈피하여 민간자율을 선언하고 10여년이 지난 것이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다양하게 터져나왔던 사회적 개혁의 흐름 중에서 문화예술정책 분야의 가장 큰 이슈가 바로 독임제 중심의 문예진흥원을 민간자율기구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을 주도했던 것은 예술의 자율성과 문화민주주의적 입장을 내세웠던 소위 민예총, 문화연대 등 진보문화예술운동 진영이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전문적인 예술경영의 중요성과 역할을 깨닫기 시작한 공공예술기관의 인력들과 전문예술경영인들의 상당수도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전의 관치 중심의 예술지원기구 운영의 심각한 비효율성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2000년대 초반 모금 종료된 문예진흥기금의 일례와 같이, 더 이상 권위주의 시절과 같은 방식의 예술지원의 국가 책임성이 불가능할 것이란 것에 대한 예감이 깔려있었다. 정부 주도의 영화진흥공사가 민간 참여를 기반으로 한 영화진흥위원회로의 변신을 통해 영화계 현장과의 접촉면을 넖히고 한국 영화 산업을 끌어올렸던 것 또한 좋은 선례로 작용했다. 예술지원기구 역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끌고가는 대신 민간참여 폭을 대폭 확대하여 보다 효율적인 정책을 생산해내고 그런 가운데에 모금이 불가능해진 재원의 한계를 돌파해보자는 것이었다.

최근 문예진흥기금이 2016년, 혹은 2017년에 고갈될 것이 예측되면서 2000년대 초반 기금 모금이 중단되었을 때 조성된 기금의 투자 등을 통해 장기적 운용이 가능하다고, 당시에는 예측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이미 금리는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고 기금 투자를 통한 운용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복권기금(토토) 수익금 등 다른 다양한 재원에서 예술 진흥을 위한 재원의 일부를 얻어오는 방안이 심각하게 검토되었다. 필자도 故 강태기 선생을 비롯한 원로, 중견 예술인들과 함께 국회 등을 방문하여 복권기금 수익금의 일부를 문예진흥기금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예술위 출범 역시도 단지 문예진흥기금을 통한 예술 지원 사업에 있어서 예술현장이 직접 참여하여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고갈이 뻔히 예측되는 예술지원재원 문제를 문화예술계가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풀어보자는 속내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예술계가 직접 나서서, “우리 분야에 쓸 돈을 내놓으라”는 거대한 민원 집단을 공공히 만들자는 얘기도 또한 아니었다. 예술지원정책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민간의 정책적 역량을 성숙시키면서 동시에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을 밟아보자는 거였다. 1973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문화예술 지원이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어떤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급했던 방식이었다면 예술계가 예술위라는 공적기관을 통해 예술지원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일련의 과정을 밟아보자는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단순하게 보자면 예술 지원의 사회적 정당성의 재확인을 통해 고갈이 예측되는 재원 문제를 풀 수 있는 인식의 단초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좀 더 심층적으로 보자면 예술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을 통해 예술활동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의 문화적 토양을 두텁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 유명한 배우였던 유인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하며, 문화부 장관에 올라 이른바 '좌파적출' 행정으로 문화예술행정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연합뉴스

물론,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런 아름다운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흔히 예술위의 실패를 규정하는 측들은 2008년 이명박 집권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 정부의 문화정책기조를 꼽는다. 물론 이는 결코 틀린 지적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유인촌 장관 시절 대표적인 기관장 해임 사태를 거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술위였기 때문이다.(또 다른 한 곳으로 김윤수 관장을 몰아낸 국립현대미술관을 꼽을 수 있겠다.) 민중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민미협, 문화연대 등을 거쳤던 김정헌 위원장을 별 뚜렷한 해임사유가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몰아내는 과정을 밟으며 문화부는 예술위가 갖고 있던 민간자율기구의 성격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더군다나 김정헌 위원장의 해임이 법적으로 무효처리가 되고(김윤수 관장도 비슷한 결론이 내려졌다) “한 지붕 두 수장” 사태 등을 겪으며 예술위의 위상 자체가 예술계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소위 좌파문화권력 적출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예술위에 대한 과도한 정치 개입은 단지 예술위 안의 진보적 목소리를 지운 것이 아니었다.(실상 당시 예술위 활동을 돌아보면, 위원 중 김정헌 위원장을 비롯해 진보계열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일부 속해있었지만 실제 정책 결정과정에서 특정한 정치 편향성을 드러낸 경우 자체가 거의 전무했다. 좌파 문화권력이란 것 자체가 뉴라이트라고 자칭하는 이들의 상상 속에서만 활동했다고 봐야 한다.) 민간자율기구를 표방하며 최소한 대외적으로만큼은 문화부 등 정부부처의 위계적 종속 구조에서 벗어나보려 했던 예술위는 그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관에 종속되어 문화부 하청기관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협치는 예술계 동원령을 지칭하는 말이 되버리고 예술위의 정책생산기능 같은 것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상황의 악화만이 예술위가 제 위상을 잃고 기능을 상실하게 된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다. 예술위가 망가지게 된 이유는 그 내부에도 복류하고 있었다.

우선 첫째, 오랫동안 관치행정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예술지원 사업의 관성이 강력하게 존재했다. 문예진흥원에서 예술위로 전환되었을 당시, 필자는 예술위 비젼 설계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예술위 사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예술위가 문예진흥원 구조의 탈피를 외치고 있으면서도 문예진흥원 사업을 거의 그대로 가져가려는 관성에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위원으로 참여했던 이들 중에는 사업방식의 근본적 개선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1기 위원이었던 故 강준혁 선생 같은 분은 문예진흥원 시절부터의 예술위 인력 구조가 지나치게 행정 및 관리 인력에 치중되어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예술위가 지원컨설팅을 전문으로하는 기구로 가기 위한 인력구조의 재편 및 재교육을 주장했다. 이는 단지 강준혁 선생만의 주장이 아니었고 꽤 많은 위원 및 소위원들이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이미 예술위는 문예진흥원 시절부터 굴러가는 챗바퀴 위에 올라타 있었고 이런 근본적 변화에 대한 의견개진들은 쉽사리 실행력을 갖지 못했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기관평가에 대한 압박은 예술위가 혁신적 변화를 추구하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 기제로 활용되었다.

▲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대학로 시대를 마감하고 광주·전남 빛가람 혁신도시로 이전을 완료했다. ⓒ연합뉴스

이런 관성은 단지 기관 안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현장 예술계 역시도 민간자율, 협치구조로서의 예술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30년 이상 스스로의 지원정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예술계로서는 위원회를 정책생산의 구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예술지원의 밥그릇을 적당히 배분하는 통로로 비쳐졌던 측면이 더욱 강했다. 특히 전통적 소장르 중심으로 짜여졌던 초기 소위원회 구성은 이런 장르간 갈등의 원인이기도 했다.

또한 예술위가 관리 운용하는 문예진흥기금 사업에 복권기금 수익금 사업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예술위 사업의 변질과 불균형의 문제를 들 수 있겠다. 문예진흥기금 고갈의 해결책으로 끌어들인 복권기금은 기금 성격상 예술 창작 지원이 아닌 소외계층의 예술향유사업 지원을 위해 쓰게 되어있다. 넓게 보자면 예술향유 증대를 통해 창작자들에게도 간접적인 지원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사업을 예술위가 주관하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복권기금 사업의 설계에 있어서 예술위는 자율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에 있었다. 복권기금 사업의 결정권한은 복권위원회에 있었고 복권위원회와 예술위의 사이에는 문화부가 끼어있었다. 문화부는 복권위원회를 앞세워 충분히 예술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런 것은 예술위 사업으로 존재했다가 도서관협회 사업으로 옮겨갔다가 최근 최악의 형태로 사라져버린 “문학나눔 사업”의 경우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예술위와 문예진흥기금 사업의 근본적 한계와 극복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최종적으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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