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벌의 조명탑은 평소보다 좀 더 오래 일을 해야 했다. 두 팀의 승부가 9회로 정해지질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 끌지 않은 승부였다. 기아의 복덩이 브렛 필이 안타로 진출하고 김다원이 적시타를 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기아의 마무리 윤석민은 세이브는 놓쳤지만 KBO리그에서 591일 만에 승수를 더할 수 있었다. 즐거운 소식은 더 있었다. 선발 서재응의 합격점을 줘도 좋은 선발 합류와 불펜 한승혁의 가세였다.

기아의 선발투수는 퓨쳐스에서 3게임을 거치고 1군에 합류한 서재응이었다. 오랜만에 복귀한 서재응의 구속은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지만, 그의 장점인 다양한 구종과 제구력으로 막강 타선 두산을 5와 1/3이닝 동안 2실점으로 막아냈다. 선취점은 내줬지만 2 대 2 동점 상황에 내려갔기에 승패 기록 없는 일단은 성공적인 복귀전이었다. 4.5선발의 고민을 안고 있던 기아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 KIA 타이거즈 서재응(연합뉴스 DB)
서재응의 복귀에 팀 동료들도 한결 힘을 냈다. 서재응이 내려가고 마운드를 이어받은 임준섭이 김재환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해 다시 역전당했지만 요즘 기아의 모습이 그렇듯이 8회에 다시 드라마가 써졌다. 8회초 선두타자 브렛필이 볼넷으로 1루에 나가자 두산은 가장 믿음직한 투수 김강률을 올려 보냈다. 그러나 김강률도 나지완에게 사사구를 허용하면서 무사 1,2루가 됐다.

볼넷을 허용한 김강률은 다음 타자 이범호를 맞아서는 제구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1볼 2스트라이트 상황으로 투수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다. 모처럼 맞은 절호의 기회였지만 기아쪽에 조금은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나 다음 볼이 타자 몸쪽으로 높이 제구가 됐다. 분명 실투였다. 베테랑 이범호는 김강률의 실투를 용납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쳤고, 그라운드에 닿고는 느리고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주자들은 달릴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이 안타에 2루주자 브렛필은 물론이고 1루주자 고영우 역시 빠른 발로 홈을 밟았다. 타자 이범호는 2루에 도착하며 양팔을 번쩍 들며 환호하는 팬들에 화답했다. 2회초 솔로홈런으로 타격감이 좋던 이범호가 결국은 역전을 이뤄낸 것이었다.

▲ KIA 이범호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래도 안심할 수 있는 점수는 아니었다. 전날 경기에서도 후반에 열심히 추격했으나 결국 두산은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막강한 타격을 보여준 바 있었다. 1점차의 승부는 보는 사람은 즐겁지만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는 피가 마르는 일. 전날 패배로 5할 승률에서 이탈한 기아로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승리였기에 8회 1사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 윤석민이 이르게 등장했다. 윤석민은 8회는 잘 막았다. 그러나 야구는 늘 그렇듯이 9회말이 문제였다.

9회말의 윤석민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나흘만의 등판에다가 1점차의 마무리는 아무리 윤석민이라도 편치 않을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만루상황에서 김현수의 희생플라이로 실점하면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나마 1사 만루에서 동점 이상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연장을 맞은 기아는 기가 막히게도 선두타자 브렛 필로 공격을 시작했다.

▲ KIA 김다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격수 방면 땅볼 타구를 수비 잘하기로 정평이 난 김재호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브렛필은 1루 베이스를 통과했다. 8회에 이어 또 다시 기회를 잡은 기아는 착실하게 희생번트로 주자를 2루로 보냈고, 다음 타자 최용규가 땅볼로 물러났지만 김다원이 두산의 마지막 투수 이재우의 정말 잘 던진 공을 배트 끝에 맞추면서 우중간 안타를 만들었다. 짧은 안타였지만 2사 후였기에 2루주자 브렛 필이 홈을 밟기에는 충분했다. 9회말 아쉬운 송구로 동점을 허용했던 김다원의 결자해지 역전 안타였다. 그래서 또 다시 역전, 그러나 여전히 1점차의 피 말리는 리드였다. 그러나 윤석민은 9회말과 같은 실수를 거듭하지 않고 팀의 승리와 자신의 승리를 함께 챙겼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딱 요즘의 기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적어도 최근의 모습만 보자면 반드시 그렇다. 선취점을 주고도 역전, 다시 역전을 당하면 또 다시 재재역전. 그리고 9회말 동점을 허용하고도 곧바로 역전해내는 모습에 야구팬이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경기내용이다. 야구는 역전의 묘미가 가장 큰 스포츠이다. 기아의 올 시즌 전력을 분명 강하지도 않고, 투수진이나 타선 모두 안정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후반에 들면서 끈적해지며 역전을 끌어내는 모습에는 중독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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