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 대타협 기구 활동 시한 종료를 앞두고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혁안의 핵심내용인 기여율과 지급률에 있어, 기여율은 7%+α로, 지급률은 1.9%-β로 표기한 상태에서 α와 β값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안을 내놓았다. 정부·새누리당 안에 이어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이 나왔지만 그래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수학시간도 아니고 국민을 놀리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공무원노조는 새정치민주연합 안이 ‘개악안’이라며 당사 점거에 돌입했다. 보수언론 역시 일제히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난하고 나섰다.

▲ 조선일보 26일자 1면 기사.

<조선일보>는 26일 1면에 <공무원노조, 野 연금개혁안도 거부>라는 제목의 기사로 공무원노조의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점거 소식을 다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자체 개혁안 내용보다 ‘개혁을 거부하는’ 공무원노조의 강경한 입장을 강조한 제목이었다. <조선일보>는 4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자체 개혁안을 비판적으로 다뤘고 이에 대한 사설도 썼다. 사설의 내용은 보수언론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조선일보 26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공무원연금 결국 국민연금 수준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연금으로 주는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에서 떼어가야 한다”며 “이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국민들은 은퇴한 공무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뼈빠지게 세금을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고 썼다. 또, <조선일보>는 “공무원연금은 장기 안목에서 보면 결국 국민연금 수준으로 가야 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이번에 여기까지 한 번에 가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음 정권, 그다음 정권이 2단계, 3단계 개혁을 하고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똑같은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주장은 공무원연금 개혁의 정당성과 이를 거부하는 ‘기득권’ 공무원 집단의 충돌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물론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 체계는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현재 재정상황에서 그래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전제는 공무원들이 공무원연금에 자신들의 노동권 일부가 제한되는 대가가 포함돼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공무원집단의 어떤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때문에 공무원연금 개혁의 진정한 쟁점은 얼마를 더 내고 얼마를 더 받을 것인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공무원노조 등이 기존 공무원연금에 퇴직금과 후불임금 성격의 지급금 등이 포함돼있다고 주장하면서 공무원연금 기금 부당사용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따라서 공무원연금에서 누적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공무원 집단과 함께 이런 저런 내용으로 제한돼있는 공무원들의 노동권을 어디까지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를 함께 묶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보수언론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의 쟁점을 국민연금 대 공적연금의 구도로 설정하고, 정치권이 이를 그대로 받아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해오며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채로 이어져온 것이다.

<조선일보>는 “국민의 세금” 운운하며 국민과 공무원을 대립시키고 있는데,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허구적 대결 구도를 이런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공무원은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며 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어찌됐든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일 수밖에 없다. 은퇴한 공무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만 국민이 뼈빠지게 세금을 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런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국민을 위해서 공무원들을 전부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해진다.

<조선일보>라고 이런 쟁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가 이런 쟁점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은 노동유연성의 제고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개혁 조치를 공무원에도 적용하겠다는 이념적 지향이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공무원과 일반 국민 사이의 차별을 지금처럼 둘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핵심이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통해 공무원의 실질임금 하락과 인원감축을 도모하는 것이다.

▲ 동아일보 26일자 사설.

문제는 다른 보수언론 역시 <조선일보>의 이러한 태도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기본 원칙은 연금 수급액이 적은 일반 국민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높은 공무원연금을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모순적 구조를 깨는 것”이라면서 “해결책은 공무원연금도 국민연금으로 통합하는 방안 하나뿐”이라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장을 인용했다. 또, <동아일보>는 일본, 미국, 오스트리아 등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이 여당이던 시절엔 신규 공무원의 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하는 안을 냈으면서 현재에는 공무원노조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비난하며 “야당으로 바뀌니까 갑자기 공무원들이 우군으로 보인다면, 혈세를 바쳐야 하는 국민은 적이란 말인가”라고 쓰기도 했다. 그간 보수언론이 제기해온 국민연금 대 공무원연금의 구도가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부분이다.

▲ 중앙일보 26일자 사설.

<중앙일보>의 경우는 보다 구체적인 주문을 내놓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날 <이젠 문재인 대표의 통 큰 결단만 남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자체안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개진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우등 공무원연금-열등 국민연금”을 언급하며 “공무원연금 개혁은 문 대표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일보>는 “4·29 재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공무원 눈치보기는 더 이상 안된다”면서 “국민이 화나면 정말 무섭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도 썼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의 재정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공무원연금의 개혁을 논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정부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보도하면서 공무원들의 입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국민의 세금’을 들먹이며 윽박지르기만 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만약, 이들 언론들이 진정으로 세금을 걱정한다면 자신들이 면제받고 있는 부가가치세부터 납부하겠다고 자청할 일이다.

언론이 사태를 악화시킬 요량이 아니라면 구체적으로 공무원들이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고 이의 해결을 차후의 과제로 남기더라도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실제 일선 공무원들이 갖는 불만을 직접 들어보면 상식적인 차원에서 합리적인 제도개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퇴직금과 저축계정의 신설을 포함하고 있는 절충안인 ‘김태일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나 ‘새누리당안’에서조차 퇴직금을 민간의 100% 수준까지 현실화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공론을 조성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국민연금과의 격차만을 내세우며 공무원을 윽박지르고 야당을 비난 하기만 하니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는 고사하고 이후 상황이 어디로 갈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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