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차승원의 요리 레시피 보물창고 중에서도 물건이 될 만한 것이 등장했다. 어찌 보면 별 것도 아닌 요리일 수 있다. 제육볶음이라는 것이 워낙 흔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황사가 시작되는 때면 우리는 삼겹살 못지않게 제육볶음을 찾는다. 믿거나 말거나 돼지고기가 체내의 먼지를 쑥 밀어내준다는 속설 때문이다.

차승원이 딸의 생일파티를 위해 뭍으로 나가 다시 만재로 돌아오는 아주 고단한 길에도 잊지 않고 챙겨온 것은 돼지고기였다. 지난 삼시세끼 정선 편에서는 흔했던 고기가 만재도에서는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섬이라는 특성상 제작진도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을 주지도 않고, 거론하지도 않았지만 참 입맛이 싼 손호준을 위해서 형 차승원이 잊지 않고 사운 것이다.

또 그만큼 자신도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언제나처럼 차승원은 거침없이 그리고 아주 간단히 제육볶음을 해나갔다. 먼저 밑간을 하고 이후 제육볶음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양념장을 만들어 거센 장작불에 볶았다. 그러나 하필 그 순간 만재도 세트장에 또 정전이 찾아왔다. 그 와중에서 만재도 한석봉 어머니 차줌마의 손길은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제육볶음을 만들었고, 그것이 식탁에 올라왔을 때 새로운 손님 추성훈까지 포함해서 모두가 굶주린 사람들처럼 접시를 비워냈다.

다른 때의 차승원 레시피들이 모두 실전적이어서 요리 초보자에게도 훌륭한 선생이 되어주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요리라고 스스로를 위해 혹은 손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레시피 하나를 얻게 됐다. 더군다나 차승원이 소개한 제육볶음은 신사동의 아주 유명한 기사식당의 레시피를 전수받은 것이라 하니 더욱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사실 제육볶음하면 역시나 기사식당이 으뜸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제육볶음은 특히 혼자서 점심 혹은 저녁을 먹어야 할 때에 아주 적절한 메뉴다. 우리나라 고기집은 거의 1인분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제육볶음은 더 소중하다. 또한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맵고 달고 적당히 짠 맛은 잃은 입맛을 되돌려주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식당에서 맛보게 되는 환상의 제육볶음은 소갈비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맛있다.

차승원의 제육볶음 레시피의 핵심은 고추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고춧가루를 아주 듬뿍 집어넣어 칼칼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내어준다. 솔직히 만드는 과정만 봐도 차줌마의 제육볶음이 맛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이번 삼시세끼가 끝난 후에는 새로 등장한 게스트 추성훈도 아니고, 매주 살인 귀염을 과시하는 산체도 아닌 제육볶음 레시피였다. 사람들은 정말 비슷한 공감들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오늘 점심이나 저녁때에 식당이나 가정에서 제육볶음이 선택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방송 시간이 워낙 늦어 정말로 입맛 당기는 차줌마표 제육볶음을 먹고 싶어도 참았던 많은 시청자들이 차승원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할 것이 분명하다. 당장 나부터도 오늘 저녁엔 제육볶음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내놓을 것이니 말이다.

물론 차승원의 레시피가 이번만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차승원의 레시피는 항상 실전적이어서 누가 해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는 정말로 요리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삼시세끼 정선과 만재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선 그리고 이서진의 삼시세끼는 아주 어렵게 때우는, 그렇지만 거르지는 않는 밥 챙겨먹기 프로젝트였다면 차승원의 만재도 삼시세끼는 여전히 조촐한 식단이지만 때우는 것에서 한참 진화한 식사를 충족시키는, 진짜 요리왕 프로그램이 됐다.

이서진의 참 못하는 요리가 대부분의 남자 시청자들의 현실이었다면 차승원의 셰프 뺨치는 요리는 남자들의 로망이 됐다. 그러니까 삼시세끼가 공감에서 희망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삼시세끼가 남자 시청자들의 분발의 동기가 되어준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그러면서 은근히 다음 삼시세끼 정선 편에서 이서진의 요리가 얼마나 나아졌을지 살짝 기대를 갖게 된다. 혹은 여전히 변화 없을지도.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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