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흐립니다. 비가 오래도록 오지 않아 비를 잊었는지 흐린 하늘을 보고도 비 올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아침내 여름에 담았던 여름효소 거르고 효소창고에 항아리들을 씻어 옮겼습니다. 항아리는 지푸라기를 태워 소독하라는 부모님 말씀대로 연기소독을 했습니다.

숙원사업이던 효소창고를 여름내 땀 흘리며 지었는데 항아리 옮기고 효소를 정리하니 뿌듯합니다. 늦게나마 호두가 있나 보고, 따던 야광열매도 딸겸 산을 한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 감나무
9월에 있던 호두는 이미 다람쥐가 다 가져갔는지 한 알도 없습니다. 호두 따기엔 좀 늦었기에 다람쥐가 다 가져갔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두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듯이 한번에 모든 열매를 거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거두지 못한 열매는 산짐승들이 거둬야 함께 먹고 살기도 하고요.

호두나무를 지나 야광나무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지금 야광나무엔 빠알갛고 윤이 반질반질한 열매가 달려있습니다. 야광나무 열매는 잎이 다 지고나서도 빠알간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11월에 보면 잎 다떨어진 나무에 빠알간 열매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단풍든 나무처럼 아름답습니다. 겨울에 먹을 것이 부족한 두발 동물들에게 훌륭한 먹을거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나무입니다.

야광나무 열매를 한참 따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가을비는 태풍이 오지 않고서는 많이 내리는 비가 거의 없습니다. 조용히 추적추적 분위기 있게 내립니다.

조금 딴 열매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가 밤까지 내립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가을비로 가을이 더욱 깊어질 것 같습니다. 나뭇잎은 더욱더 노오랗고 붉은 빛으로 물들 거고 가을비를 양분으로 감과 돌배는 더욱 커지겠지요.

거의 모든 열매들이 가을이 깊어지면 성장을 멈추는데 유독 감과 돌배는 가을이 깊어지면서 커집니다. 감 따서 곶감 깎는 때는 서리가 한두번 내려 감잎이 떨어지고 남은 감잎이 붉게 물드는 10월말쯤 입니다. 앞으로 며칠 남지 않았는데 지금도 감은 갓난아기 주먹만도 못합니다.

“이 감이 며칠동안 곶감 깎을 만큼 커지나?”하는 의심을 해마다 반복합니다. 더구나 다른 열매들은 진작부터 성장을 멈추고 익어 가는데 감은 조그만하니 해마다 반복하는 의심을 합니다. 풋풋한 풀빛이던 감이 어느새 노오랗게 익어가고 있어 더욱 의심은 깊어지지만 자연은 이치대로 틀림없이 흐를 것 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이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가을이 깊어지듯 우리도 아름다운 빛으로 마음을 물들이고 생각은 더욱 깊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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