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영방송은 ‘체제 위기’를 맞고 있다. 기술발전에 따라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과정이 진전되고 있는 상황을 거스르긴 어려우며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공영방송 체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디까지나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하나의 전제에 해당되며, 이에 앞서 정치권력 변화에 따른 위협적인 상황들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연주 전 KBS 사장 강제 해임의 전 과정을 꼽을 수 있다. KBS라는 공영방송을 무슨 관제방송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벌인 21세기판 언론장악 시도라는 점에서 구태의 정황은 생생하기만 하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속내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노골화된 ‘인적 관제화’라는 얘기다.

▲ 지난 8월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권고안 처리를 위한 KBS 임시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경찰 수백명이 방송사 안에 들어가 회의장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한 채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윤희상
이 대목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정리한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의 말을 옮겨본다. 강 교수는 “방송은 자본의 영역보다는 공동체의 영역에 자리매김돼 왔으며, 이윤추구 동기에서 해방되고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어 왔다”며 “권력이 쉽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 자체가 공공영역이며 공영방송의 역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사태는 권력에 예속되는 공영방송의 위치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동시에 한편에선 공영방송을 자본에 종속시키려는 시도들이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맞물려 가시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영방송의 관제화와 더불어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방송을 자본에 내어주는 정책들이 현실화의 목전에 있다. 방송 ‘선진화’의 구호는 한국사회의 모든 공적 영역의 선진화 구호 다를 바 없이, 공공재를 사적 소유의 대상으로 격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현실에 접근하기 전에 간단하지만 중대한 문제를 시사하고 있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의사를 밝히고 있는 다민영 1공영, 대기업의 방송진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 방송광고공사 해체와 민영 미디어렙 도입, 국가기간방송법 제정, 신문·방송 겸영 허용의 공통점은? 정답은 공영방송 체제 해체라는 방송구조개편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방송을 자본에 예속화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공공영역을 지탱했던 공영방송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 여러 미디어 정책은 각각의 영역에서 방송 사영화의 표적 한 곳을 일제히 조준하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미디어스
이런 여러 가지 정책 중 가장 앞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현재 의결이 보류돼 있는 상태이며 국회 설명회를 거칠 예정이다.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확대하는 문제를 간단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처리하려는 방통위의 계획이 반대에 직면한 것이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공영방송의 민영화라는 다민영 일공영 체제와 연계되며,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가능하게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상파방송, 종합편성PP, 보도전문채널 등에 진출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이 3조에서 10조원으로 확대된다. 방송법에서 대기업의 방송 진입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까닭은 정치적 의제 설정과 전파력이 매우 큰 방송을 대기업이 소유, 기업이 시청자의 이익보다 특정 기업의 이윤이나 정치권력의 이해에 이용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방송에서 사적 이익보다 공중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방송법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대기업 진입규제 완화는 그만큼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시청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공공 영역의 훼손을 불러올 대기업의 방송시장 진출 확대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의 질 하락과 경쟁 과열로 인한 시청자 피해를 발생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여당의 ‘한국방송광고공사 해체와 민영 미디어렙 도입’ 방침도 자본의 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단순히 방송광고판매 체제를 경쟁 체제로 전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엄청난 파급 효과를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그 파급효과는 정확하게 공적 영역의 후퇴로 귀결된다.

코바코의 순기능이 광고시장 확대라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경쟁을 활성화해 광고시장이 확대된다는 주장이 가지는 이면의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방송광고판매에 경쟁 체제가 도입된다면 광고 수주를 위한 방송사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이를 위해 시청률 올리기에 적당한 상업적 콘텐츠가 범람하게 될 것이 불보듯 하다.

또한 광고판매 연계제도가 사라지면 그동안 다양한 공적 기여를 해온 종교·지역방송도 경영난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결국 적자생존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방송계를 뒤덮을 것이며 생존을 위해 공적 역할을 뒤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방송사가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코바코 체제 위에서 버틸 수 있었던 공적 영역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얘기다.

이처럼 일단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정책들이 사회적 합의 없이 가시화되거나 추진되는 상황이다. 이 정책들이 시행되면 방송 영역은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투전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어이, 공영방송!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붙여 먹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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