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과 삼성전자의 법적 분쟁이 전자신문의 ‘오보 인정’으로 끝났다. 지난 3월 전자신문은 갤럭시S5의 카메라 렌즈 수율 문제를 언급하며 생산 차질 가능성을 제기했고, 삼성은 억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삼성과 전자신문은 6개월 동안 공방을 벌였으나 전자신문은 26일자 지면에 오보를 인정하는 내용의 공지를 실었다.

▲ 전자신문이 25일 온라인이 게재한 삼성전자 기사 관련 <알립니다>.

전자신문은 26일자 19면 <알립니다>(온라인에는 25일 오후에 게재)에서 “본지는 지난 3월 17일자 21면에 ‘출시 코앞 갤럭시S5, 카메라 렌즈 수율 잡기에 안간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해당 기사는 “삼성전자 갤럭시S5의 카메라 렌즈 수율이 20~30%에 불과해 출시 예정인 갤럭시S5의 생산에 차질이 생길 공산이 크고 출시 계획을 미뤄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갤럭시S5에 적용된 카메라 렌즈의 수율은 보도 시점 당시 양산을 시작하는 데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고, 이에 따라 갤럭시S5 생산도 당초 계획대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며 사실상 오보를 인정했다. 그리고 삼성의 주장도 전달했다.

이에 앞서 25일 오후 5시 반께 박승정 편집국장은 기자들을 불러모아 설명회를 열고 26일자 19면에 실릴 ‘알립니다’ 내용의 취지를 설명했다. 복수의 전자신문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박 국장은 “그래도 그 동안 잘 싸우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공방을 진행하던 김동석 부국장(성장산업 총괄)은 “오보를 인정하는 정정보도가 아니고 (삼성과 협상 결과 나온) 절충안”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석 부국장은 설명회가 끝난 직후 직접 공지를 등록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일부 기자들은 ‘윤전기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언론계 인사는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지배하는 언론시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전자신문은 지난 6개월 동안 삼성의 3대 세습, 삼성 백혈병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도해왔다. 특히 삼성 관련 콘텐츠를 한 데 모아 이용자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노동조합 등에서 전자신문 구독 열풍이 불기도 했다.

▲ 삼성전자와 전자신문

전국언론노동조합 김유경 전자신문지부장은 26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25일) 설명회에 참석한 기자 대다수가 ‘오보를 인정하는 문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따졌지만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며 “편집국장은 오히려 기자들의 문제제기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유감 표명 없이 본인이 왜 기자들을 설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김유경 지부장은 “6개월이 넘게 하나가 돼 삼성과 싸우면서 정정보도만은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었지만 편집국장은 사실상 정정보도문 문구를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전자신문이 삼성 광고 없이 6개월을 보내다 갑자기 항복을 선언한 배경에는 매출 하락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신문의 지난해 매출은 327억 원, 이중 삼성 광고와 협찬은 23~24억 원 수준으로 7% 수준이나 삼성 협력업체들의 광고와 협찬까지 고려하면 10%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영권 승계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 입장에서는 비판 언론을 하나라도 줄일 필요가 있고, 전자신문은 매출 하락을 만회해야 할 처지다. 삼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온 박승정 편집국장과 김동석 부국장, 경영진이 갑자기 돌아선 이유로 보인다. <미디어스>는 26일 오전 박승정 국장에게 관련 입장을 물었으나 “회의가 끝난 뒤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이후 백여 차례 통화 시도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기자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박승정 편집국장 불신임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유경 지부장은 “단체협약 상 편집국장이 제작공정성과 명예를 실추했을 경우, 불신임을 결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신문지부는 26일 오전 긴급총회를 열고 불신임제 추진을 결정했다. 전자신문지부는 26일 성명을 내고 “2014년 9월 26일자 전자신문 19면의 ‘알립니다’는 삼성에 대한 항복 선언을 넘어 우리 신문에 대한 사망 선고”라며 “모든 구성원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은 채 우리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완전히 인정하는 오늘의 ‘정정보도’를 끝으로 언론으로서 전자신문은 죽었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전국언론노동조합 전자신문지부 성명 전문.

<“오늘, 언론으로서 전자신문은 죽었다”>

결국은 가장 치욕스러운 굴욕인가. 2014년 9월 26일자 전자신문 19면의 ‘알립니다’는 삼성에 대한 항복 선언을 넘어 우리 신문에 대한 사망 선고다.
언론사로서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삼성과 힘겹게 싸움을 벌여온 지난 6개월 간, 우리는 그 끝이 무엇이든 이것만은 아니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구성원의 열망을 무참히 짓밟은 채 우리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음을 완전히 인정하는 오늘의 ‘정정보도’를 끝으로 언론으로서 전자신문은 죽었다.

편집국장에게 묻는다. 그토록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가. 편집국장은 기사 게재 하루 전 기습적인 ‘사전 설명회’에서 충격적인 ‘정정보도문’으로도 모자라 모든 기자 조합원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기만했다.
6개월간 함께 싸워온 구성원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결론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너무도 당당했다. 적어도 ‘정정보도’임을 인정하는 자세라도 보였다면, 이 최악의 결론에 대해 설득하려는 성의라도 보였다면 우리는 이처럼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종일관 편집국장은 기자 조합원들의 상식적인 의문마저 ‘대답할 가치가 없는 항변’으로 치부했다. ‘앞으로 어떻게 기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울분을 ‘세대 차이’라는 말로 폄하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그 본질이 ‘거대 자본의 언론 길들이기’임을 인정했기에 쉽게 끝날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삼성 매출이 빠진다고 언론의 자존심을 버릴 수 있냐”고 공언하던 대표다. “기자로서 자존심을 갖고 당당하게 싸우라”던 편집국장이다. 광고 중단과 신문 절독 등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는 삼성의 압박에도 그 어느 때보다 회사 전체가 일치 단결해 싸웠던 6개월이다.
이처럼 순식간에 자본에 철저히 무릎을 꿇고 만 오늘의 비극에 대해 ‘그래도 잘 싸웠다’는 비겁한 말로 합리화할 것인가.

지부는 26일 오전 긴급 비상총회를 열고, 사전 설명회에서 편집국을 이끌 자질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한 편집국장에 대해 ‘불신임제’를 통해 분명한 책임을 묻기로 결의했다.

편집국장은 소송 당사자이자 기사를 출고한 해당 기자에게조차 설명 없이 정정보도를 내보냄으로써 해당 기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끝까지 구성원간 불통으로 직무를 유기했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구성원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할 결론으로 언론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단체협약 제 27조에 보장된 ‘편집국장 불신임제’를 즉각 추진할 수밖에 없는 사유들이다.

편집국장에게 요구한다. 한 때 명예로운 싸움을 이끌며 편집국원들의 자긍심을 키워주던 이로써 마지막 양심이 남아있다면 더 늦기 전에 스스로 결단하라!

2014년 9월 26일 전국언론노조 전자신문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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