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아닌 여러 괴물들이, 한 몸에서 부화한 괴물의 분신들이 바로 지금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치안국가라는 괴물이 한국사회를 공포로 내몰고 있다. 월스트리트로부터 전해오는 오싹한 붕괴의 소식만큼이나 섬뜩한 이야기다. 그래서 2008년 주변의 분위기가 너무나 흉흉하다. 두렵다. ‘대중의 공포’를 체험한 권력은 오직 자신만이 독점한 테러의 공포로서 우리의 ‘벌거벗은 삶’들을 징벌하고 나섰다. 약한 자의 신체, 호모사케르(homo sacar)의 몸에 비수 같은 채찍을 날린다. 낙인을 찍고, 경고장을 날리며, 징계를 가한다. 선량한 민주주의의 촛불이 꺼질 듯 불안하게 흔들린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제대로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다. 그 치밀한 전개, 조직적인 운동에 기가 질린다. 오랫동안 준비된 것이 분명한 조처. 미국자본주의를 뒤흔드는 ‘100년만의 대사건’이라는 증언이 제국의 중심부에서 나와도, 한국 실물경제의 위기라는 은행장의 예고가 따라도, 아무 동요 없이 ‘적출’의 작업은 착실히 진행된다. 현실의 위기 속 위기의 현실. 이런 것을 두고 관리·통제 불능의 공황상태라 하지 않을까? 대중은 가히 패닉 상태다. 얼마나 많은 사업들이 무너지고 있는가? 생명을 스스로 끊고 있는가? 이 절망의 와중에도 체제는 태연스레 징계에 몰두한다. 계획한 프로그램의 차질 없는 실행.

▲ 지난 18일 KBS 사원행동이 본관에서 '이병순 관제사장의 광기어린 인사 전횡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참세상 유영주
KBS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또한 그렇다. 목요일 밤의 잔혹한 복수극. 공영방송을 지키고자 한 소수자들의 ‘봉기’에 대한 권력의 반동이다. KBS의 권력 네트워크는 드디어 드라마보다 더 찐한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제작자가 누구인가? 누가 연출한 솜씨인가? 누구의 대본을 누가 어떻게 각색해 이리 예고도 없이 불쑥 한 밤중에 선사하시나? 11월에는 2편이 준비되어 있다는데, 그건 또 어떠한 내용인가? 이번보다 훨씬 더 세고 스케일 큰 드라마일 테지? 똑같이 비밀리에 준비되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예정이시지? 모두의 혼을 쏙 빼놓을 작정이겠지?

에잇, 부산방송총국으로 보내버리자. 글로벌 전략팀으로, ‘방송문화연구소’로 발령장을 내라. 양주중계소에 가서 중계기술을 익히도록 만들면 얼마나 좋은가? 더 해도 좋다. 아니 더 해야 한다. 진실을 파고드는, 저 밉상스러운 탐사보도팀을 당장 해체시킬 것. 팀장은 바닷바람 좋은 부산에 가 살도록 하라. 그래서 탐사보도의 책임감을 싹 잊도록 배려하라. 남은 기자들은? 정치외교팀으로, 아니면 ‘기자질’과 무관한 스포츠 중계팀으로 전속시키면 되지 않나. 문화복지팀, 뉴스네트워크팀, 한민족방송, 음악방송1FM, 장애인전문 3라디오 등등, 필요한 데가 얼마나 많은가? 거기가 일하게 하라. 아니 일하지 말고 쉬게 하라.

공영방송을 위해 행동하는 사원, 방송 독립성 수호의 행동선언을 한 사원들에 대한 학살극이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말했지 않은가. 긴 잔혹극의 서막이 겨우 올라갔을 따름이다. 그러하니 기대하고 또 대기하시라. 대국-소팀제 ‘개혁’ 때 대대적인 인사조치의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니. 그때도 여전히 노조위원장은 “인사권자가 자신의 권한인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므로 이에 대해 코멘트할 노조의 입장은 없다”면서 침묵을 지킬 테이니. 하라면 하고, 가라면 가는 명령의 체계, 훈령의 질서가 KBS 안에 확고히 자리잡혀야 하므로. 그래야 사회 공론과 민주 여론, 자유 언론의 통제가 가능할 것이므로.

2008년 9월 KBS에서 벌어지는 야만의 드라마를 역사의 기록, 기억의 역사에 반드시 남겨야 한다. 약해서 상처 입은, 순해서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명령하는 사장과 복종하는 노조위원장, 그리고 방임하는 사원들에게 결코 망각될 수 없는, 절대 회피할 수 없는 이야기를 새겨두고자 한다. 야수극의 연출자, 보복극의 조력자, 잔혹극의 방관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경고하기 위해서다. 처벌·처리되는 듯한 진실의 운동, 양심의 세력들은 반드시 살아남아 복귀할 것이다. 귀환해 오늘의 비참을 진실의 언어로 증언할 것이다. 그게 한국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힘, 역사가 생생하게 증거한 미래다.

맞다. 권력은 진실을 혐오하는 법. 진실한 언론, 진정한 저널리즘의 목소리를 두려워한다. 오직 진실을 은폐하고 진실의 이야기를 억압함으로써 권력은 그 비루한 생명을 존속할 수 있다. 그 특수한 이익, 각별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KBS를 손보는 이유다. 무리한 인사를 강행하지 않을 수 없는 목적이다. 모든 게 사람의 문제. 사장을 새로 앉히고, 미운 놈들에게 발령을 내고, 그렇게 사람을 통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진실통제의 필요, 언론규제의 문제는 해소된다. 이렇게 의미심장한 조치의 뜻을 정확히 기록에 남겨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말하는 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

부산으로, 중계소로, 다른 어디로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참 미안하다. 그래도 참아내시라. YTN의 처절하게 투쟁하는 동지들을 생각하고, MBC의 열혈한 얼굴들을 떠올리시라. KBS의 남은 ‘식구’들을 기억하시라. 그래도 화가 치밀거나 너무 슬프다면, 신자유주의 공황·공포 속에서도 고통을 인내하는 수천만 호모 사케르들을 살펴보시라. 약하고 선한, 벌거벗은 삶들을 챙기시라. 그러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새롭게 일할 길을 찾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될 것이다. 이 피디, 나 기자, 최 피디, 그리고 많은 착한 사람들. 잘 다녀들 오시게. 아직 할일이 많기에, 미래의 역사는 그대들을 필요로 하오. 원하오.

지금처럼 ‘비평의 무기’를 예리하게 연마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때가 있을까? 벼락같은 이성의 도끼질, 결을 거스른 감수성의 대패질에 열중하지 않을 수 없다. ‘래디컬’한 저널리스트로의 변신. 자본권력과 국가권력, 매체권력, 지식권력이 나의 상대다. 가끔 참패당하고 때로는 붙잡고 버티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왼손펀치 한방을 가진 선수로 남고 싶다. 인민은 착하고 또 무섭다. 이들과 함께하는 비평 말고 그 어떤 것이 후기근대, 후기자본의 불모지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목청 낮춘 채 예의주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삶, 이들의 언어에 스며들어 비평의 유격전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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