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안성시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는 골프장들을 집중 취재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규모 택지 개발과 같은 공공사업과 마찬가지로 골프장을 지을 때도 전체 부지의 80%만 확보하면 나머지 20%는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하는 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3년에 개정된 국토계획법 2조 6항은 도로, 철도, 항만, 공원, 수도·전기·방화설비, 화장장, 하수도 등을 ‘기반시설’로 묶어, 부지 확보 등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국가나 지자체가 ‘도시계획시설’로 개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명백한 공공시설 목록에 체육시설, 즉 골프장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관련법을 잘 뒤져 보면, 공익사업법이라는 것도 있다. 이 법의 4조 8항은 ‘다른 법률에 의하여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사업’을 ‘공익사업’으로 정의한다. 그러니 국토계획법에 의해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골프장 사업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공익사업’인 것이다.
법은 평등한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는데, 골프장을 ‘공익시설’로 만들어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해주는 법 앞에서 동평리 주민들은 과연 다른 어떤 법에 기대야 할까?
이 책이 소개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법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었던지 심지어 법조인들조차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은 우리 사회의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액을 횡령한 사회고위층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소액을 횡령한 힘없는 서민들은 실형을 사는 것이 우리의 사법현실. 2004년 10월 법원 국정감사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한 사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김동건 전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수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한다’거나 혹은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이런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보신 적 있습니까?”
노회찬은 ‘보통 국민’과 달리 죄를 짓고도 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형 집행이 끝나버리는 ‘특별 국민’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아낸다. 첫째, 재판을 거듭하며 형이 가벼워진다. 둘째, 확정된 가벼운 죗값마저도 다 치르지 않고 자유인이 된다. 그러니 법이 돈 앞에 평등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이런 사례를 일일이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 노회찬은 이 책에서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X파일’ 사건도, 외환은행의 론스타 불법 매각 사건도 모두 정치권과 경제계, 법조계가 똘똘 뭉친 ‘검은 커넥션’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일갈한다. 대통령은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특권으로 불리는 ‘사면’ 권한을 남발하고, 그럴수록 국민들 사이에 ‘사법 허무주의’는 나날이 커져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에 대한 국민들의 이런 불신을, 놀랍게도 이 정부는 교묘하게 역이용하고 있다. 말끝마다 법치와 법질서 확립을 외치는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에서 “법질서 파괴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면서 “사면권 오·남용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비리 기업인과 정치인들을 대거 사면해줌으로써 스스로 다짐했던 사면 원칙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말썽 많았던 청와대 수석·장관 인선 파문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이야기했을 정도니, 법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기회’로 이용했다는 뜻으로밖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셈이다. 결국 또 다시 거듭,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는 씁쓸한 현실. 지난 국회에서 법사위 위원이었던 노회찬의 의정기록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시시때때로 불거지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포함해 ‘잘못된 법’과 ‘법의 잘못된 적용’이 우리 사회를 얼마만큼 병들게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드문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