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안성시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있는 골프장들을 집중 취재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대규모 택지 개발과 같은 공공사업과 마찬가지로 골프장을 지을 때도 전체 부지의 80%만 확보하면 나머지 20%는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하는 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2003년에 개정된 국토계획법 2조 6항은 도로, 철도, 항만, 공원, 수도·전기·방화설비, 화장장, 하수도 등을 ‘기반시설’로 묶어, 부지 확보 등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국가나 지자체가 ‘도시계획시설’로 개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명백한 공공시설 목록에 체육시설, 즉 골프장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관련법을 잘 뒤져 보면, 공익사업법이라는 것도 있다. 이 법의 4조 8항은 ‘다른 법률에 의하여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사업’을 ‘공익사업’으로 정의한다. 그러니 국토계획법에 의해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골프장 사업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 ‘공익사업’인 것이다.

▲ 경향신문 8월 13일자 1면 기사
“댁의 집이 골프장 부지에 강제 수용될 예정이니, 보상 협의에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점잖게 한 말이지만 실은 마을을 떠나라는 얘기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골프장 업체 관계자에게서 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전해들은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동평리 주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개인 사업자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골프장을 짓겠다는 걸 국가가 ‘공익사업’이라며 ‘법’으로 보장해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 골프장의 회원권 가격을 보니 개인 9억 원, 법인은 18억 원이다. 우리나라의 골프 인구는 아무리 늘려 잡아야 전체 성인의 10%도 안 된다. 성인 10명 가운데 9명은 평생 골프채 한 번 제대로 쥐어본 일 없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익(公益)’이란 말인가?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골프장 업체는 아예 한술 더 떠, 골프장 건설에 반발하는 주민들이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낼 요량으로 방송을 앞세워 언론플레이까지 서슴지 않는다”며 몇몇 경제신문에 낯간지러운 비방성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 ‘법대로 하라’는 것이다. 도대체 그 법은 누구를 위한 ‘법(法)’이란 말인가?

법은 평등한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는데, 골프장을 ‘공익시설’로 만들어 ‘강제수용’할 수 있게 해주는 법 앞에서 동평리 주민들은 과연 다른 어떤 법에 기대야 할까?

▲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지난해 9월,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을 두고 일반 국민들이 보인 반응은 법이 추구하는 법적 정의라는 이상과 재판의 결과로 나타나는 법의 현실적 적용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경제개혁연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미온적인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국민들조차도 정작 범죄를 저지른 재벌총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이중적인 법 감정’이라는 웃지 못 할 현실의 근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없는 자에겐 쇠방망이, 가진 자에겐 솜방망이’가 농담처럼 지껄이는 유행어가 되어버리고, 그 주된 요인인 ‘전관예우’의 폐단은 비판의 화살에서 비껴간 지 이미 오래다. 강준만은 “불가사의한 건 이런 비판은 수십 년 간 계속돼 왔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라며 “전단예우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비난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법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었던지 심지어 법조인들조차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은 우리 사회의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액을 횡령한 사회고위층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소액을 횡령한 힘없는 서민들은 실형을 사는 것이 우리의 사법현실. 2004년 10월 법원 국정감사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한 사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김동건 전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수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한다’거나 혹은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이런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보신 적 있습니까?”

노회찬은 ‘보통 국민’과 달리 죄를 짓고도 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형 집행이 끝나버리는 ‘특별 국민’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아낸다. 첫째, 재판을 거듭하며 형이 가벼워진다. 둘째, 확정된 가벼운 죗값마저도 다 치르지 않고 자유인이 된다. 그러니 법이 돈 앞에 평등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이런 사례를 일일이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 노회찬은 이 책에서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X파일’ 사건도, 외환은행의 론스타 불법 매각 사건도 모두 정치권과 경제계, 법조계가 똘똘 뭉친 ‘검은 커넥션’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일갈한다. 대통령은 화이트칼라 범죄자의 특권으로 불리는 ‘사면’ 권한을 남발하고, 그럴수록 국민들 사이에 ‘사법 허무주의’는 나날이 커져 간다는 것이다.

▲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 (노회찬의원실, 정보와 사람 2007)
그런데도 법에 대한 국민들의 이런 불신을, 놀랍게도 이 정부는 교묘하게 역이용하고 있다. 말끝마다 법치와 법질서 확립을 외치는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공약에서 “법질서 파괴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면서 “사면권 오·남용 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비리 기업인과 정치인들을 대거 사면해줌으로써 스스로 다짐했던 사면 원칙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말썽 많았던 청와대 수석·장관 인선 파문에 대해서는 ‘이 정도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이야기했을 정도니, 법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기회’로 이용했다는 뜻으로밖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는 셈이다. 결국 또 다시 거듭,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는 씁쓸한 현실. 지난 국회에서 법사위 위원이었던 노회찬의 의정기록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시시때때로 불거지는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포함해 ‘잘못된 법’과 ‘법의 잘못된 적용’이 우리 사회를 얼마만큼 병들게 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드문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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