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8일) 17층 사장실로 향하는 문 앞에 의자를 놓고 3시간 넘게 앉아 있었던 구본홍 YTN 사장. 오늘(9일) 오전에는 그 자리에서 더 밀려나 17층 복도 한중간에 2시간30분 남짓 혼자 있다 돌아갔다. 이번엔 아예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날 오전 8시54분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17층에 도착한 구 사장은 '출근 저지'를 위해 모인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노종면) 노조원 50여명의 강한 반발로 사장실로 향하지 못했다.

▲ YTN 노조원 50여명이 사장실로 가려는 구본홍 사장을 막고 있다. ⓒ송선영
YTN지부는 전날까지만 해도 사장실로 향하는 문앞까지 구 사장의 '진출'을 허용했으나, 이날은 구 사장의 출입 자체를 막겠다며 '낙하산 저지 투쟁' 의지를 담은 현수막을 펼치고 엘리베이터 앞에 배수진을 쳤다.

노조원 50여명이 강경한 자세로 사장실로 향하는 길을 막자, 다소 당황한 구 사장은 "여러분 왜 이래요. 이건 불법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한 마디마저도 노조원들의 "구본홍은 물러가라"는 외침에 묻혀 주변에 있던 소수에게만 들렸다.

구 사장은 노조원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자 안절부절 못한 채, 현수막을 들고 있던 노조원들을 두 차례 밀치며 사장실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좌절, 이윽고 복도에 앉아버렸다.

▲ 구 사장이 사장실로 들어서려고 노조원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을 밀어내고 있다. ⓒ송선영
노조원들의 "구본홍은 물러가라" "불량간부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계속되자, 곁에 서 있던 한 간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시의 상황을 대화로 정리하면 이렇다.

간부: "노조위원장,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어요. 난 생각이 달라. 왜 강요합니까. 나도 양심의 자유가 있어요."
노조원: "양심이 뭡니까. 말로 해보세요."
간부: "글로써 하겠어요."
노조원: "말로 안 나오죠? 양심이 없으니까. 양심이 있으면 말로 금방 나옵니다!"
간부: "당신만 옳은 건 아니야! 여러분들이 날 자르세요!"
노조원: "대선 특보는 언론사 사장으로 올 수 없다는 게 내 양심이에요. 말이 안 나오죠? 한참 머리를 굴리고 짜내야 글로 나오는 거죠? 왜 글로 해요? 말로 해요, 즉각."
간부: "노조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나의 양심의 자유가 있는 거에요."
노조원: "제가 왜 불량간부라고 하는 줄 아세요? 제가 좋아하던 선배가 후배들 다 보는 앞에서 (구본홍씨) 옆에서 굽신굽신하기 때문에 불량간부라고 하는 겁니다."

옆에 있던 다른 노조원은 구 사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딱 한 사람 때문에 회사가 이렇게 망가지는 걸 보셔야겠습니까?"

노종면 지부장은 "구본홍씨는 어제 경영기획실에 지시해 사장실 앞에 있던 노조원들 사진을 컬러 프린터로 뽑아 열람했다"며 "구본홍씨는 경영기획실이 법적 자문을 구해 권고한 '투쟁지침'을 따라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경영기획실이 작성해 구 사장에게 자문한 이 자료에는 "(노조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시간이 많이 걸려 실효성이 떨어지고 노조원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며 "몇 가지 사례를 참고하라"는 첨언이 덧붙어 있고, 구체적으로 '외환은행 파업'을 예시했다.

경영기획실이 구 사장에게 자문한 '외환은행 파업' 사례란 지난 2006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두고 내부 갈등을 겪을 당시, 회사 쪽이 노조에 대화를 하자며 미리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펴려 했고, 노조가 이에 반발한 일화다.

▲ 17층 복도 바닥에 앉은 구 사장이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송선영
노조원들은 구 사장을 향해 "차라리 징계를 하고 사법처리를 해라" "고소를 하려거든 본인 이름으로 직접 해라" "명분 쌓으려는 거 다 아니까 빨리 공권력 투입해라"라고 말했다.

노조원들의 분노(?) 섞인 외침을 가만히 눈 감고 듣고 있던 구 사장은 오전 9시47분, "말을 삼가해" "자네 누군지 아는데 말을 삼가게"라고만 짧게 말한 걸 빼곤 내내 입을 다물었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대면 대치상황'은 오전 9시50분, '구본홍씨와 아예 얼굴도 마주치지 말자'는 노조 지침에 의해 마무리됐다.

▲ 구 사장이 17층 복도에 앉아 있는 가운데, 간부들이 멀뚱히 선 채 구 사장 곁을 지키고 있다. ⓒ송선영
홀로 복도에 앉게 된 구 사장은 주변에 있던 간부들에게 "다들 앉으세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를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간부들 중 아무도 구 사장과 함께 복도 바닥에 앉지 않았다. 이에 간부들이 자신의 말을 못 들은 것이라 생각한 구 사장은 한 번 더 "앉아요"라고 말했으나, 간부들은 또 한번 구 사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

구 사장 나름의 '투쟁' 방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사장실에서 3박4일을 보냈는가 하면 호텔에 외부 직무실을 구해 업무를 봤다. 또 사장실 앞으로 향하는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서류를 보더니, 노조원들의 행동에 항의하는 의미로 마침내 복도 맨 바닥에 앉아 '연좌농성'을 벌였다.

▲ 오전 9시50분 노조원들이 모두 복도에서 물러나 사장실 앞에서 농성에 들어간 가운데, 구 사장이 간부들을 곁에 세운 채 처음 노조원들과 대치했던 17층 복도에 주저 앉아 있다. ⓒ송선영
결국, 이날 구 사장은 오전 11시 20분 쯤 몇 명의 간부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한 노조원은 이날 구 사장의 행동에 대해 "청와대 쪽이나 언론에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노조원들이 갖다 준 의자도 필요 없다면서 거부했다"고 말했다.

회사 쪽은 이날 오전 상황에 대해 '구본홍 사장 출근…노조 또 저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구 사장은 물도 드시지 않고 노조원들이 갖다 준 의자에도 앉지 않은 채 복도 찬 바닥에 앉아 침묵을 지키며 노조원들과 대치 중"이라고 전했다.

2시간 넘게 찬 복도 바닥에 앉아있던 구 사장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그러나 그 모습이 언론을 통해 비쳐졌을 때, 그의 의도가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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