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방송사가 부리는 횡포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단연 중복편성일 것이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8일 개막식 이래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3사는 같은 시간대 어디를 틀어도 똑같은 붕어빵식 중계방송을 반복하고 있다. 인기종목이나 금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종목 위주로 이들 방송3사가 시청률 경쟁을 벌이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개막식은 방송 3사의 시청률 합계가 서울을 기준으로 40.3%로 나타났다고 한다. KBS1이 19.6%, MBC가 12.7%, SBS가 10.1%로 집계됐다. 박태환의 400m 결선 시청률도 MBC 17.4%, SBS 13.1%, KBS2 11.6%였다. 3개 방송사간의 순위만 바뀌었을 뿐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방송을 내보냈다. 문제는 이러한 중복편성이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침해하고, 비인기종목에 대한 소외현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해외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방송사들간의 이런 과다한 시청률 경쟁에 대해 네티즌들의 쓴 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네티즌들은 배드민턴, 체조, 조정 등의 비인기 종목들이 방송사에 의해 철저한 소외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네티즌은 ‘방송사에서 방송해주는 종목 외의 경기는 모른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우리가 인기 종목만 좋아하고 그것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 그것 외의 종목은 잘 방송해주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비인기종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 안 하는 종목이 있을 뿐”이라며 “심지어 일부 아이들은 올림픽 종목에 수영, 양궁, 축구, 유도 등 몇몇 종목만 있는 줄 알고 있다”고 꼬집었다.

네티즌들은 또 금메달에만 집착하는 방송사의 행태에도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부상에도 불구하고 은메달을 획득한 유도 왕기춘 선수와 펜싱 남현희 선수 등의 시상식 장면을 생중계로는 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박태환 선수의 은메달 시상식을 보며 은메달 딴 다른 선수들이 생각났다”며 “이들은 4년후를 기약하며 우리가 다시 격려하고 위로해줘야 할 선수들인데, 방송사들은 4년 후 이들을 마치 안 볼 것처럼 외면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방송국이 너무 금메달에만 목을 매면서 은메달은 ‘취급’도 안하는 것은 고질적인 엘리트 스포츠의 병폐”라며 방송사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방송사들의 중복편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번 똑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인기종목 위주의 중계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시청률에 따른 광고수입때문이다.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베이징 올림픽 중계를 위해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됐다”면서 “방송사 입장에서 광고수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광고수입으로 운영해야하는 방송사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우리와 비슷한 일본 방송사들을 본받아야 할 사례로 들고 있다. 올림픽 개막 5일째인 13일 기준 금메달 4개로 7위를 차지한 일본의 경우도 올림픽에 대한 열기가 우리나라 못지않다. 이러한 열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개막식 시청률은 36%를 웃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점은 이 시청률이 NHK 단독중계로 나온 수치라는 것이다. 같은 시간 민영방송사들은 정규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이는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전파 낭비를 줄이기 위한 방송사 간의 사전 합의된 편성이라고 한다.

▲ 신영은 선수의 싱글스컬 8강전 경기장면, 국내 방송3사 모두 중계방송을 하지 않자 한 네티즌이 외국 방송사 방송 화면을 찾아 캡쳐한 동영상과 글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렸다.
NHK와 일본의 민영방송사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공동으로 베이징올림픽 방송권을 구입한 뒤 방송사별로 방송시간을 안배해 중복편성을 피하고 있다. 또한 인기종목에 대한 방송은 제비뽑기로 결정한다고 한다. 일본이 금메달을 딴 수영 남자 100m 평영 결승전은 NHK, 여자 마라톤 경기는 니혼TV, 남자육상 100m 결승전은 TBS, 유도 남자 100kg급 경기와 여자 78kg급 경기의 결승전은 후지TV가 중계하는 방식을 채택해 중복편성으로 인한 전파낭비를 줄이고 시청자들의 채널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얘기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방송사들은 하는데 왜 우리 방송사들은 못하는 것일까. 더욱이 공영방송인 KBS에서조차 민영방송인 SBS와 똑같은 중복편성으로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것을 과연 수신료를 내고 있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지금 이시간에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인기종목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그동안 흘린 땀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이 흘린 땀이 헛되지 않도록 TV를 바라보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있는 시청자들은 공영방송 KBS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촛불을 들고 KBS 본관 앞 시멘트 바닥에 앉아있다. 이들의 촛불을 보면서도 공영방송 KBS가 MBC나 SBS와 마찬가지로 중복편성을 일삼으며 시청률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것인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