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역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영등포 점. 롯데시네마 임을 알리는 간판에 ‘HAPPY MEMORIES’라는 문구가 또렷하게 보인다. 행복한 기억, 이는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행복한 기억을 얻길 바라는 롯데시네마의 배려(?)깊은 의도였으리라.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결국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에게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행복한 기억이자 행복한 기록이다.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에 맞서 딸의 죽음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도체 전문가가 되어 언론사, 민주노총, 시민단체 등을 수없이 찾아다녔던 지난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상기씨 머리 위로 ‘HAPPY MEMORIES’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미디어스
하지만 영화를 통해 행복한 기억을 얻으려는 많은 대중들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을 앞두고 여럿 생겨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서로 보겠다고 난리인데도 말이다. 특히 롯데시네마에서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점인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가운데 유독 롯데시네마는 상영 취소, 대관 취소 등을 반복하면서 노골적으로 영화 상영을 막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을 향한 대중의 관람 열망을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물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결과, 6일 오후 기준으로 실시간 예매율은 <수상한 그녀> <겨울왕국>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좌석 점유율은 전체 영화를 통틀어 1위이다. 그런데도 상영관은 턱없이 적다. CGV 45개 극장, 롯데시네마 17개 극장, 메가박스 25개 등 전국 117개 극장에서만 이 영화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롯데시네마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5일 기준으로 예매율 6위인 <프랑켄슈타인>은 전국 <롯데시네마> 81개관에서 상영하고 있으며, 예매율 9위인 <레고무비>도 전국 72개관에서 상영하고 있다. 하물며 예매율 26위인 <굿모닝멘하탄>도 전국 19개관에서 상영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시네마를 비롯한 영화 상영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손’을 규탄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삼성선자서비스 노동조합은 6일 오후 1시 영등포 롯데시네마 앞에서 주최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삼성선자서비스 노동조합이 6일 오후 1시 영등포 롯데시네마 앞에서 주최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상영관 확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디어스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우리 유미…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황상기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우리들로 하여금 꼭 만들게 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자는 노동자를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자를 자기 하수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노조 행세를 못하게 하고 있고, 노동3권을 보장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만약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우리 유미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려서 죽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이런 영화도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롯데시네마 CGV 메가박스, 영화관들이 대기업에 얽힌 이야기라고 국민에게 배급 안한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건희 부자 못지 않게 심한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영화를 상영해서 많은 노동자, 국민이 영화 볼 수 있게끔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도 영화 상영을 막고 있는 ‘검은 손’을 호되게 꾸짖고 나섰다.

“둘 중 하나다. 외압을 밝히던지,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것을 밝히던지 하면 된다. <또 하나의 약속> 사태는 시장의 논리를 적용하더라도 (예매율이 높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화 내용이 무엇이든 관객은 볼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 극장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것이다. 자신의 이익으로, 정치적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안타깝게도 <또 하나의 약속>을 막고 있는 검은손은 이미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영화를 보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들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사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또 하나의 약속>이 어느덧 개봉했다. 소셜 미디어,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에서는 “개봉 첫 주 주말 예매율이 중요하다”며 너도 나도 보러가자며 서로 서로 관람을 권장하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롯데시네마 예매 취소 사례는 다음과 같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 서비스지회 포항분회가 2월4일 ‘포항 롯데시네마’에 <또 하나의 약속> 전관을 예매하고 영화표도 받았음. 그러나 하루 뒤엔 5일 영화관 쪽은 돌연 전화를 하여 “환불 다 해줄텐디 취소해 달라” “그 시간에 원하는 영화를 공짜로 보여주겠다”고 함. 이 같은 일은 ‘울산 롯데시네마’에서도 벌어짐.

△ 서울대 로스쿨 인권법학회 산하 산소통(산업재해노동자와 소통하는 모임) 학생들이 <또 하나의 약속> 단체관람을 위해 ‘롯데시네마 서울대입구 지점’에 3주 전부터 지속적인 문의를 함. 당시 상영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가 2월3일 오전, 해당 상영관 매니저로부터 “상영이 확정되었으므로 단체관람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음. 그러나 4일 오전, 영화관 쪽으로부터 상영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을 받음. 이에 산소통에서는 ‘대관’이라도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으나 해당 상영관에서는 개봉하지 않는 영화는 상영해줄 수 없다는 게 롯데시네마의 입장이라고 거절함.

△ 배우 조달환씨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팬클럽 3백명에게 <또 하나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해 2월4일 건대 롯데시네마에 대관신청을 함. 당초 롯데시네마는 가능하다고 했으나 두 시간 뒤 기사가 나가자 돌연 취소 결정이 되었다고 통보함. 연예인 컬투 역시 롯데시네마 합정에 신청했으나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음.

△ 제작두레 회원 000씨가 개봉일에 맞춰 지인들과 단체관람을 하려고 건대 롯데시네마에 2월4일 오후 5시 30명분의 단체관람을 신청해 확정 연락을 받았으나 당일 오후 8시 취소 결정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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