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민족의 대 명절, 설이다. 30대에 막 접어든 나에게 설은 거창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그저 하나의 휴일일 뿐이지만, 어렸을 적 그때 그 시절을 되짚어보면 당시 꼬꼬마 어린이에게 설이라는 녀석은 마구 설렘을 주는 꽤나 큰 의미였다.

한껏 멋을 내며 한복을 곱게 입은 연예인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며 까치까치 노래를 떼창으로 부르던 그 모습. 지금 생각하면 되게 촌스럽고 오글오글 거리지만, 꼬고마 어린이 눈에 비친 TV 속 당시의 풍경은 정겨웠고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그 촌스러움이 민족의 대 명절 설날의 훈훈함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TV 속에서 오롯이, 그것도 되게 많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 금상첨화였다.

그 사이, 나도 변했고 세상도 변했고 그리하여 TV 속 풍경도 변했다. 너도 나도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지금, ‘TV 가 뭐가 대수냐’고 떠드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TV가 없는 명절은 감히 상상 수 없다고 단언한다.

▲ 2006년 팔도모창가요제 ⓒMBC
하지만 이런 TV애청자라도 불만은 있다. TV를 향한 애정을 듬뿍 담아 곱게 바라보려고 해도, 수년 째 아니 수십 년 째 사골국처럼 푹푹 우려진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루함이 마구 몰려든다.

팔도모창대회, 톱스타 X파일, NG 열전, 외국인 며느리 장기자랑 혹은 노래자랑, 기인열전, 스타 닮은 꼴, 드라마NG 모음 등. 우려먹어도 너무 우려먹었다. 프로그램 속 출연자만 바뀌었을 뿐, 프로그램 진행 방식과 설정은 똑같다.

이해는 한다. 각 방송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한정된 예산’이라는 팍팍한 현실 가운데서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 노력을 모르는 게 아니다. 또, 나름 최선을 다해 ‘설날’이라는 밥상 안에 차려질 ‘반찬’들을 준비한 KBS, MBC, SBS 각 방송사 편성 담당자들의 노고도 인정한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이 같은 아이템들은 너무 지루하고, 진부하고, 식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제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TV를 사랑해마지않는 이 애청자 간절히 읍소한다. 유익하면서도 통통 튀면서도 재밌는 프로그램들을 많이많이 만들어달라고. 기존 TV를 통해 만날 수 없었던 참신한 프로그램들을 많이많이 기획해 달라고. 이와 함께, 기회가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 세대가 함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담은 프로그램도 엿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더불어 민족 최대의 명절에도 마냥 웃고 떠들 수만은 없는 이들을 향한 따스한 배려도 만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 설특집 <아이돌 육상·양궁·풋살·컬링 선수권대회> ⓒMBC
물론 각 방송사들이 최대 명절을 맞아 넉 놓고 손 놓은 건 아니다. 각 방송사들은 야심찬 포부를 안고 파일럿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기막힌 남편스쿨> <음악쇼> <엄마를 부탁해> <주먹쥐고 소림사> 등 따끈한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또, SBS에서는 설 특집 드라마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마련했으며, MBC에서는 다큐멘터리 <바람의 말> 방송을 준비했다. 명절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아이돌 스타 육상 양궁 선수권 대회>도 MBC에서 볼 수 있다. 한 동안 TV에서 볼 수 없었던 이영애의 근황도 SBS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설 특집 다큐멘터리 <이영애의 만찬>에 모습을 드러내 음식을 통해 한국인의 음식문화와 정체성을 말한다.

최근까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최신으로 볼 수 있는 영화도 TV에서 만날 수 있다.

<반창꼬> <베를린> <도둑들>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연가시>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 <은밀하게 위대하게> <감시자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어벤져스> <타워> .

명절 편성전략의 기본은 최소 투입-최대 산출인 것을 우리는 안다. 투입요소는 ‘사람’이고 산출요소는 ‘시간’이다. 방송사 사람들도 연휴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쉬어야 하므로 적게 일하고 길게 때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각박한 현실에서 설 특집 프로그램 편성을 쥐어짜느라 고생하신 분들께 고생했다는 덕담을 마지막으로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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