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침 신문을 펼쳐들고, 난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9인 가운데 3인은 "이거 뭐 하는 짓이냐"며 항의 퇴장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임명한 위원 6인만 덩그마니 남아 MBC < PD수첩>에 대해 "시청자에게 사과하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전날 심야의 소식이 실려 있었다. 15일 밤, 그리고 16일 아침, TV와 인터넷으로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편을 두 번에 걸쳐 꼼꼼히 뜯어본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대회의실에서 MBC < PD수첩>, KBS <뉴스9> 등을 심의하는 방통심의위 전체회의가 16일 오후 열렸다. ⓒ송선영

나도 'PD수첩' 보고 감탄했다

고백하건대, 난 그 프로그램을 보고 감탄했다. KBS 손관수 기자가 "방송쟁이 입장에서 PD수첩을 봤을 때 굉장했고, 왜 우리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나 느꼈다"고 말했다는 16일치 미디어스 기사를 보고, 잠깐 방송쟁이를 했던 나도 공감했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1, 2편도 각각 두 번을 봤는데, 사실구성이 다소 거칠고 연출에서 조금 촌스럽다는 것 말고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시청자로서 일반감정에 동업자로서 약간의 질투심을 가미한 구성이라고 보면 맞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덩그마니 남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은 느낌이 사뭇 달랐나 보다. 나름의 직업적 전문성을 자부하는 나와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이 전문성을 부여한 방송통신위원 6인은 텍스트 읽기에서 얼마든지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덩그마니 남은 그들 6인에게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쥐어준 심의권이 있다. 내겐 없다. 그 있고 없음이 바로 권력의 유무다. 그들 6인의 권력은 이미 행정권력뿐 아니라 사법적 권능을 넘어섰다.

▲ 7월15일 방송된 MBC < PD수첩> 'PD수첩 진실을 왜곡했는가?'
'사과 방송' 결정의 위헌성…'사과 받기 강요'에서 받는 모욕감

PD수첩에 대한 '시청자 사과 방송' 결정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아고리언의 글을 읽었다. 덕분에,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양심과 인격을 훼손하면서 "사과한다"고 광고하게 하는 법원의 결정은 허용될 수 없다며, 1991년 헌법재판소가 민법 제764조(명예훼손의 경우의 특칙)의 사죄광고 부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법원조차 갖지 못한 사과 명령권을, 자기들끼리 덩그마니 남은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은 갖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그 권력은 방송사에만 미치는 게 아니다. '시청자 사과 방송' 결정은 논리구조상 방송사에 대한 징계를 넘어 시청자에 대한 조처다. 사과는 '하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이 있어야 성립한다. 논리까지도 필요 없다. 남녀가 뜻이 맞아 하룻밤을 잤는데, 제3자가 끼어들어 남자 멱살을 잡고 여자에게 무릎 꿇고 빌라고 요구한다면 그 여자는 뭐가 되겠는가. 자기들끼리 덩그마니 남은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은 시청자인 내게 명령하고 있다. <PD수첩>의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난 모욕감을 느낀다.

시청자 목구멍에 사과 쑤셔넣기 전에 했어야 할 일

▲ 방송인총연합회와 이명박정권방송장악저지행동은 16일 오후 2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방통심의위의 'PD수첩'과 '뉴스9'에 대한 부당심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선영
간단하다. 시청자 사과 방송 결정은 위헌 가능성이 높다. 설령 위헌이 아니라 해도, 시청자의 뜻을 거스르는 시청자 사과 방송 결정은 '시청자에 대한 폭력'이다. 물론 내가 모든 시청자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끼리 덩그마니 남은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도 마찬가지다. 그 6인은 시청자들의 목구멍에 꾸역꾸역 사과를 쑤셔넣기 전에 먼저 시청자들의 뜻을 살폈어야 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조자룡의 헌 칼 쓰듯 권력을 휘두를 일이 아니었다.

사과 방송의 주요 근거가 됐던 영어 오역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이 오히려 영어를 오역한 것은 필연적인 실수(또는 왜곡)로 보인다. 급하긴 급했나 보다. 미디어스에는 자기들끼리 덩그마니 남은 그들 6인이 연출한 현장 삽화가 있다. (▷ 참조 : 방통심의위 회의 방청 '이게 뭥미?') 공개 심의가 회의장 밖 '유리방'이나 별도의 방에서 질 나쁜 스피커와 직원 한 명의 입을 통해 이뤄지는 풍경은 어의가 왕의 여자의 손목을 실로 연결해 진맥하는 기이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참으로 조선시대 풍속화스럽다.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6인의 조선시대스런 풍경

▲ '영어 오역' 심의 결정과 MBC의 반박 ⓒ한겨레
질 나쁜 스피커로 공개된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의 발언을 정리한 어록은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 의자왕과 왕자, 신하들이 벌이는 어전회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이들 6인의 대화는 <PD수첩>에 대한 인상평과 사실 왜곡, 논리 비약으로 점철돼 있다. 사법적 권능은커녕 행정 집행 능력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조선시대 풍속화스런 형식에 꼭 부합하는 내용이다. (▷ 참조 : 'PD수첩 의견진술, 심의위원 발언록을 공개합니다') 공개된 게 이 정도이니 비공개된 발언은 어느 정도일지 내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다. 먼저 박명진 위원장 어록을 보자.

"공교롭게도 '미국 소는 모두 광우병 소다' '고 아레사 빈슨은 광우병으로 죽었다'는 방향으로만 오역이 이뤄졌다." (PD수첩 어디를 봐서 "미국 소는 모두 광우병 소다"라는 메시지가 있는가? 이거야 말로 심각한 오역 아닌가? 아레사 빈슨의 사인이 확정되기 전에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일러 '합리적 의심'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시는가?) "다우너 소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나온다. 이때 '최우수 공급업체가 이렇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렇다면 미국의 모든 도축장이 이럴 거라는 일반화가 이뤄질 수 있다." (최우수 공급업체가 이런 걸 PD수첩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내레이션에 '삐리리' 처리라도 할까?)

MBC 내부강령으로 방통심의위가 징계?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다음은 손태규 위원. "MBC 보도강령에 '사회적으로 논란 있는 사안인 경우 음악과 음향효과는 가능하면 넣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PD수첩은 음악의 강렬한 비트를 사용해 감정의 충동을 일으키는 것들을 끊임없이 사용했다…개인적 느낌으로는 '감정의 충동'을 일으키는 것들이 끊임없이 사용되더라." (PD수첩이 MBC 보도강령을 어겼으면 MBC가 내부 징계할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이 MBC인가? 개인적 느낌이라…. 그런 얘기는 나머지 5인과 술자리에서 하면 제격이다.)

박정호 위원. "냉철하게 (국민들이) 협상의 문제점을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을 초기부터 (PD수첩이) 힘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박 위원은 국민이 아닌가 보다. 나를 비롯한 모든 국민 위의 국민? 아니면 미국시민권자?) 김규칠 위원. "정부가 심각한 자세로 재빨리 사과를 두 번 한 데 비해 공영방송은 빨리 사과를 안했다. 재빨리 사과만 했더라도 검찰 수사를 안 받았을 것이다." (정부가 사과를 재빨리 했다고? 촛불소녀에게, 아니 거리의 전경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PD수첩에게도 정부처럼 사과 뒤 뒤통수치는 것까지 인정하겠다는 건가? 무엇보다 왜 정부 사과와 PD수첩 보도가 비교대상이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비문화적 문화 권력, 행정·사법 권력, 이데올로기 권력

지금 자기들끼리 덩그마니 남은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이 휘두르는 권력은 무소불위다. 문화산업의 콘텐츠를 비문화적인 잣대로 재단하는 비문화적 문화 권력이자, 사법부의 권능조차 넘어서는 행정·사법 권력이며, 전 국민에게 사과받기를 강요해 마침내 국민의 사과를 받아내려는 이데올로기 권력이다. 그들 6인은 자신의 지적 능력이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을 부여받았다. 벅찬 권력은 당사자를 위험에 빠뜨린다. 다치기 전에 '재빨리' 내려놓기를 권한다.

나는 그들의 문화 권력에도, 사법 권력에도 필적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다. 난 <PD수첩>으로부터 절대 사과 받지 않겠다. 대신 나같은 시청자들에게 모욕감을 안긴 이명박 대통령 및 한나라당 임명 방송통신심의위원 6인에게 '재빨리' 사과할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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