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제출되면서 체포동의요구서에 적시된 범죄 사실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과 피의자들은 ‘남한사회 변혁운동’을 강령으로 하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를 결성해 지난 5월 회합을 갖고 정전협정이 백지화 되는 등의 정세를 고려해 전쟁위협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내란음모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포동의안 제출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는 이날 정기국회 개회식 직후 여야 합의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에 착수했다. (뉴스1)

공개된 체포동의요구서에 기술된 범죄 사실은 일관되게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피의자들이 북한과의 전쟁 상황에서 주요 통신시설 타격 등 북측에 유리한 기동을 준비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들어 체포동의안에는 이석기 의원이 지하혁명조직 'RO'의 수괴로서 'RO' 조직원들에게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할 것을 선동하는 한편, 공동피의자들과 공모하여 폭동할 것을 음모하였다고 판단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RO란?

RO라는 명칭은 과거 군사독재시절부터 일부 운동권 조직에 남아있는 조직 형태의 잔재로부터 온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독재정부 시기에는 운동권 지도부가 검거될 경우 조직 전체에 심대한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해 조직 지도부를 보호할 목적으로 2겹으로 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비선’과 ‘대중조직’을 분리해서 운영하는 행태 등은 이런 환경에서의 조직 원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비선은 비공개조직이며 대중조직은 공개조직이다. 대중조직은 보통 비선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지만 비선은 대중조직의 모든 부분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조직 형태에 따라 비선 조직도 다층적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있는데, 일부 언론은 따르면 이석기 의원이 과거 활동했던 민혁당의 경우 비선 조직을 3겹으로 운영했다는 보도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와 이러한 부분에 관련된 관계자들의 진술 등에 따르면 민혁당 비선은 VO(전위조직), RO(혁명조직), RMO(혁명대중조직)로 구분되며 피라미드의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아래로 향할수록 더 많은 구성원이 포함되며 위로 향할수록 조직의 핵심 정보와 세부 방침을 더 많이 공유한다는 것이다.

▲ MBN뉴스가 보도한 민혁당의 조직 구성. (화면캡쳐)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모임에서 분임 토론을 진행한 단위가 북부, 동부, 중서부, 남부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 모임은 경기도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게 본다면 과거 이석기 의원이 책임자를 맡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민혁당 경기남부 재건모임의 후신으로 파악하는 관점도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 형태 등 고려하면 ‘녹취록’ 발언 실제 존재했을 수도

정리하자면 이번에 정보기관에 의해 파악된 해당 모임은 과거부터 이어진 비선-대중조직의 이중조직형태를 고수해온 조직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일 수 있으며, 이런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해당 모임의 자리에서 상당히 내밀하고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가 여과되지 않고 논의됐을 것이라는 사실도 전제해볼 수 있다. 즉, 정보기관은 일반 대중으로서 받아들이기 황당한 수준의 이야기도 나올 수 있는 자리였다고 보는 것이고 체포동의서에 적시된 범죄 사실은 이들의 이런 판단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결과 북한 체제나 소련 체제를 대안적인 체제로 여기가 됐다는 고백을 하는 이들이 많다. 북한을 대안으로 여긴 세력을 소위 NL(National Liberation)이라고 하고 소련을 대안으로 여긴 사람들을 소위 PD(People’s Democracy)라 하는데, 후자의 경우 소련 붕괴와 함께 상당한 사상적 타격을 입었으나 NL의 경우 아직까지 그 신념을 이어오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모두 전제하면 이석기 의원이 중심이 돼 모인 이른바 ‘RO’는 여전히 북한 사회를 대안적인 것으로 사고하면서 80년대의 조직 형태를 유지해 명맥을 이어온 모임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렇게 보면 일부 언론에 의해 공개된 소위 ‘녹취록’에서 등장하는 발언들의 경우도 상당 부분은 실제로 현장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공안당국의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수사와 관련,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당원을 거액으로 매수해 자당을 사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더군다나 당사자인 통합진보당이 국정원이 당원을 거액의 금전으로 매수해 증거를 수집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일부 뒷받침한다. 통합진보당 측에 따르면 수원에서 활동하는 유력 당원이 RO모임에 결합해 논의된 내용을 국정원 측에 보고하였다는 것인데,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면 당연히 수집된 증거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의 주장처럼 녹취록이 조작이라고 한다면 굳이 거액의 금전을 소요해 내부자를 매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향후 정국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듯

▲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따라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태도 등이 향후 정국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야권이 체포동의안에 대한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거나 반대할 경우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레드컴플렉스’를 자극해 야권 전반이 ‘종북’의 혐의를 벗지 못하고 공멸할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야권이 체포동의안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 찬성할 경우 국정원 개혁 등의 여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하게 되거나 ‘배신자’ 프레임에 갇히게 될 우려도 있다. 사실상 진퇴양난의 국면에서 묘수를 발견하거나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진보정당의 경우 여기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상당기간의 어려움에 빠지게 될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과거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할 때 소위 당 내 자주파에 대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의 문제를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당의 경우는 과거 통합진보당을 창당할 때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위 ‘경기동부연합’으로 표현되는 세력과 손을 잡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라도 정치적인 선택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을 놓고 진보정치 지지자들 중에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연대의사를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어 이러한 과감한 선택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상황인 것 같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순간에서 피해를 감수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역시 ‘정치세력’ 보여주어야 할 기예라는 점을 돌이켜보면 이번 사태를 그야말로 예견된 ‘시련’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상황인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