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핵심 당직자들을 내란음모예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한 것에 대한 논란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무분별한 발언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정원의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정원의 압수수색 의도는 상당 부분 이들의 조직을 보위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정원 개혁이 이슈가 되면서 조직적 차원에서 상당부분의 피해를 감수하게 됐으므로 이를 뒤집기 위해 일을 벌였다는 지적이다. 야권 등에서 주장하고 있는 국정원 개혁안의 핵심은 국내정치파트 해체와 수사권의 폐지인데 이 두 가지 수단 없이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라는 국정원의 위상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을 검토하면 이들의 의도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로 눈여겨볼 수 있는 것은 하필이면 국정원이 직접 의원회관을 압수수색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압수수색의 광경은 검찰이나 경찰에 의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의 경우에도 검경이 압수수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주거지 등 10곳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한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 사무실에서 국정원 관계자들이 압수품 박스를 들고 영장 집행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이번 사건은 특별히 국정원이 직접 요란스럽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국정원 마크가 압수수색 물품 상자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사진도 보도됐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국정원에 수사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직무와 관련하여 제한적인 부분에 대해 사법경찰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 제한적인 부분이란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부정사용의 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국정원 직원은 사법경찰관리 및 군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러한 법조항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정원의 직접적인 압수수색이 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 눈여겨볼 수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만한 사안에 굳이 ‘내란음모예비죄’를 적용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함의를 읽어낼 수 있다. 첫 번째는 최대한 시끄러운 상황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내란음모예비죄의 적용은 자극적인 방식을 통해 최대한 이목을 끌 수 있는 수단이라는 얘기다.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뉴스1)
두 번째는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직접 압수수색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의 신분이 아니라면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의원회관을 직접 압수수색 하기 위해서는 더욱 대단한 명분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법안 자체에 대한 찬반여론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쟁점화가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내란음모예비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이석기 의원의 관련 발언들을 의도적으로 종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모아놓고 추론해보면 결국 국정원이 원했던 것은 ‘국정원이 직접 의원회관을 압수수색 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었으며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보면 충분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는 관계없이 보수적인 유권자들은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 대해 ‘종북주의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이번 압수수색으로 이들의 이러한 인식이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통해 국정원은 국정원 개혁과 관련하여 국내정보파트의 존속과 수사권의 유지를 주장할 수 있게 됐으며, '종북주의자가 국회에까지 진출한 상황인데 덧글도 못 달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항변할 수 있게 됐다. 다음 달 초 국정원이 국회에 ‘자체 개혁안’을 내놓기로 한 상황에서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최근 국가보안법 등 공안 사건의 경우 압수수색을 할 때에는 커다란 혐의를 걸지만 실제 사법처리가 시작되면 작은 혐의로 유죄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번 압수수색의 성과가 국정원의 개혁 논의에만 영향을 미치고 국내의 안보 등 이슈에는 미미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위 ‘자주파’들의 친북적 성향을 고려할 때 자신들끼리의 모임에서 극단적인 발언 등이 돌출적으로 제기됐을 가능성도 고려해볼 수 있기는 하나 이러한 상황조차도 재판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다뤄지게 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 국회의원이 국가 전복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음모했으리라고까지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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