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꼬일대로 꼬인 정국이다. 민주당이 2주 넘게 장외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마무리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야권을 압박할 수 있는 공세를 거듭하고 있고 안철수 의원 측은 최장집 교수와의 결별설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에서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에게 국회가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게 된 것이 그나마 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면의 진전이다. 물론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에 대한 청문회를 언제 실시할 것인지를 두고 또 여·야가 대립하고 있어 국정조사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꼬여버린 정국, 해소될 가능성은?

이렇게 꼬여버린 정국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지금 정국이 해소되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양대 정치세력 중 하나가 일방적인 항복 선언을 하는 경우고 또 다른 경우는 생산적인 논의와 합의를 거쳐 서로 일정한 양보를 하며 꼬인 매듭을 푸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경우 실질적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다가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가 정권의 정통성 논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든 지금 확보하고 있는 고지를 지키려고 들 것이다. 김한길 대표가 제안한 영수회담을 5자회담으로 바꿔 역제안 해 민주당을 무안한 처지로 만든 것이나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두고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세금폭탄이라며 민주당이 긴 호흡의 반격을 준비할 태세를 보이자 대통령이 나서서 논란을 차단해버린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야당에게 기회 자체를 주지 않으려는 행보다.

▲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여한 박근혜 대통령. (뉴스1)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민주당이 사실상의 백기 항복을 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백기항복 시나리오를 가동하려면 민주당 지도부가 다른 이슈를 타고 정국을 넘어가며 적당한 구실을 찾아 국회로 복귀하면서 국정조사를 대충이라도 마무리 하는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구실 자체를 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명분있는 퇴각이 불가능하다.

명분이고 뭐고를 떠나서 그냥 여당의 입장을 수용하는 경우의 수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5자회담에도 응하고 국정조사도 여당이 하자는 형식으로 해버리고 국면을 일단락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김한길 지도부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는데다가 해묵은 계파 갈등 논란에 다시 불이 붙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야 모두 내부 사정 복잡해

다음 주에 이어질 소위 ‘사초 실종 논란’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사실상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경위와 대선 활용에 대한 특검을 주장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사초 실종은 국기 문란”이라는 입장을 직접적으로 밝히는 바람에 정상회담 회의록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세력이 정쟁의 무대 안으로 끌려 들어와야 한다는 점은 민주당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새누리당이 2012년 집행예산에 대한 결산안을 심의해야 한다는 이유로 8월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렛대로 한 정치협상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이 입법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협조가 없이는 결산안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늦어도 9월에는 심의해야 할 경제정책 관련 법안들도 쌓여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여·야 나름의 대타협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전망해볼 수도 있다.

▲ 취임 100일을 맞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7일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당직자로부터 선물받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손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부의 세제 개편안과 관련, "세금폭탄 저지 서명운동에 돌입할 것"이라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원내외 병행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하지만 이러한 대타협을 사실상 여당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또 다른 우려를 낳게 한다. 당 내의 비주류인 구 친이계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당정관계에 대해 일정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오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반복해서 야당과의 관계를 쉽게 풀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상황을 잘 드러내준다. 다양한 자리에서 구 친이계 의원들이 내놓은 발언들을 종합하면 당 내 비주류는 5자회담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 야당과의 관계, 세제개편안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여당과의 관계,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정부 시절 진행된 사업에 대한 태도에 관한 문제 등을 둘러싸고 대통령에게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친박계가 사실상 독점적인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구조를 떠올려보면 이런 상황에서 야당과의 정치적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당 내 비주류에게 명분을 주는 행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즉,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쉽게 행동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스텝 꼬이는 안철수

양당의 대치 국면이 길어지면 당연히 정치적 이득을 보는 것은 제3세력이다. 하지만 제3세력의 대표주자라 할 만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이렇다 할 선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 또 문제다. 최근 최장집 교수가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사퇴하면서 안철수 의원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점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장집 교수 측은 학자의 역할을 넘어 정치에 지나치게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밝히고 있으나 이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안철수 의원을 떠난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 어떤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대되고 있다.

▲ 생각에 잠겨있는 최장집 교수. (뉴스1)

일부 여론조사 등에서 무당층이 늘어나는 등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감이 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논란이 확대되는 것은 안철수 의원 측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의원이 ‘새 정치’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명망있는 인물들을 영입하고 그들을 구심점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 측에 합류하면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면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최장집 교수의 이탈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물론 없겠지만 어떤 ‘신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안철수 의원 측이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의 독자세력화를 위해서는 10월 재보선을 경유해 2014년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떤 정치행보를 보여줄 것인가가 핵심인데 이 과정의 정국에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안철수 의원 측이 내놓는 메시지가 한 발씩 늦고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메시지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정국이 양당의 대치에 집중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하반기에도 국회에서 양당의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안철수 의원 측으로서는 쉽지 않은 시기가 될 수 있다. 이래저래 힘든 일들만 남아있는 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