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가 제출한 세제개편안이 중산층 세부담을 증가시킨다며 일부 부분에 대해 원점재검토를 지시한 이후 당·정이 내놓은 새로운 세제개편안에 대한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평가들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내용이 극명히 나뉘며 이념적 대립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복지 공약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복지공약 축소하고 증세 필요성 말해야

가장 입장이 강경한 것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1면, 3면, 4면, 5면을 할애해 세제개편안에 대한 ‘제언’을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이 제언을 통해 “착한정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며 “그 많은 복지공약을 100% 다 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는 게 경제계 원로들의 중론”이라고 주장했다. 또 <동아일보>는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이후에도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국민 차원의 설득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동아일보>는 국민들의 인식도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공짜 점심은 없다”며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함을 인식해야 하고 선거 때 포퓰리즘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 공약을 재검토하라고 주장한 14일자 동아일보 보도.

▲ 대통령이 공약을 다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동아일보의 14일자 4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세제개편안 논란을 다루면서 1차로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증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백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책임 등을 강조하며 세수 확보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조선일보>는 구체적으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 인상을 언급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언급한 중앙일보의 14일자 사설.

▲ 공약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간접세 인상을 모색하라는 조선일보의 14일자 사설.

1차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은 피해갈 수 없는 성격인 것으로 보인다. 취임 직후 직접적인 증세 없이 복지공약을 모두 실현하겠다는 대통령의 고집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이때마다 대통령은 자신이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점을 들며 공약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내비쳤다.

대통령 책임 크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나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등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관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정통 경제 관료라는 점을 들어 대통령의 입장에 일정한 수정이 가해지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있었지만 이들도 한결같이 (세율조정을 통한) 증세 없는 복지공약 이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을 모아 이야기 한 바 있다. 현오석 부총리는 경제기획원, 재정경제부, 한국개발연구원장 출신이고 조원동 경제수석 역시 경제기획원, 재정경제부, 조세연구원장을 거쳤으며 둘 다 예산·기획 파트를 오랫동안 다뤄온 사람들인데도 이런 주장을 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들이 애초에 내놓은 세제개편안이 이들의 기존 입장에 비추어보면 나름대로 ‘모범답안’일 수 있었다는 지적은 이런 측면에서 타당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정국이 꼬여있단 할지라도 다른 측면에서 해법을 모색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면돌파를 하는 게 장기적으로 올바른 해결책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수정론’을 꺼내든 것은 대통령이었고 결국 똥물은 관료들이 뒤집어쓰는 결과가 돼버렸다.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장기적으로 지금보다 향상된 수준의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조세체계와 복지 수준에 대한 논란이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득공제 축소 정도의 조치로 정국을 돌파하지 못해 봉급생활자들의 반발에 무릎을 꿇은 것은 향후의 논쟁에 치명적인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부자감세 철회하고 법인세 등 인상해야

물론 연 소득 3,450만원 이상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근거가 없고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들의 불만은 가뜩이나 어려운 삶 속에서 실질적인 세 부담이 증가하는 것에 대한 고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기준을 연봉 5천만 원으로 올려도 마찬가지다. 무한 경쟁을 조장하고 있는 한국 사회 특유의 시스템에서는 수치상으로 중산층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경제적 측면에서의 고통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어려움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 세제개편 논의에 부자감세 철회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한겨레의 14일자 사설.

때문에 이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기를 요구해야 한다면 먼저 이명박 정부 시절 실행된 소위 부자감세 철회를 선행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다. 법인세 인상 등의 조치를 통해 세수를 먼저 늘린 후 봉급생활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내용의 사설을 통해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 정부가 대기업과 부자들은 내버려 둔 채로 졸속으로 세제개편안을 마련하였다고 지적한 경향신문의 14일자 사설.

재정경제부 등에서는 한국의 GDP대비 3.5%에 달하는 법인세 세수 비중이 다른 선진국 수준보다 높다는 점을 들어 여전히 법인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으나 또 일각에서는 법인세의 실효세율이 낮고 그럼에도 법인세 세수비중이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업의 과세 소득이 과다한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든 고소득층과 기업에 대한 세율 조정 및 세제개편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이를 통해서 확보한 세수로도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에는 부족할 수 있다. 때문에 일부 중산층의 세 부담 증가는 필연일 수 있다. 다만, 먼저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세제를 공정하게 하고 중산층에 고통 분담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