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에는 스포일러가 한가득이니 주의바람)

▲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극장판 (애니플러스)

계약이라는 계기

모든 마법소녀물에는, 아니 마법소녀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주인공을 가진 모든 작품에는 특별함의 '계기'가 존재한다. 예컨대 2000년대 들어 유행하고 있는 할리우드 히어로영화들을 보자면, 주인공들이 힘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작품의 시작인 동시에 작품의 주제를 가르는 문제가 된다. 예컨대 배트맨의 트라우마, 슈퍼맨의 외계인 정체성, 엑스맨의 돌연변이와 피실험 경험 모두 마찬가지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이하 '마마마')에서 마법소녀가 되는 계기는 '계약'이다. '큐베'가 한가지 소원, 기적을 이루어주는 대신에, 마녀와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마법소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마마마의 마녀는 그냥 놔두면 사람을 해치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법소녀의 활동은 매우 중요하고 유의미하며 마법소녀들은 그런 일을 한다는 보람과 사명감으로 고되게 살아간다.

주인공 마도카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도, 마법소녀의 이러한 성질에서 기인한다. '나는 잘 하는 게 아무 것도 없고, 언제나 남에게 의존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최악의 자존감을 보이는 마도카에게 마법소녀의 세계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인 것이다.

심지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가 되는 것이 자신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에, 특별한 소원성취의 보상 없이 그냥 마법소녀가 되고 싶다고 속내를 말하기도 한다. 물론 3화(극장판의 경우에는 전편의 가운데쯤)의 '그 장면'을 보고 또 마법소녀를 둘러싼 진실들 점차 알게 되면서, 계약 즉 마법소녀가 되겠다는 결단은 계속 미뤄진다. 물론 마도카가 마법소녀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것은 호무라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결국 마도카가 마법소녀가 되는냐 마느냐, '마법소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내용이다.

▲ 소울젬이 근처에 없으면 이렇게 시체나 마찬가지다 (애니플러스)

'존재가치'를 위한 계약

지난 글에서 마법소녀는 전통적으로 어린 여자아이들의 판타지를 의미해 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요컨대 변신을 통해 마법소녀가 된다는 것은 '무기력한 어린 소녀'가 새로운 정체성, 곧 특별한 마법을 통해 남을 돕거나, 악을 물리치는 등 뛰어난 존재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곧 변신이란 부양되어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지탱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많은 마법소녀물에서 (정작 변신의 주체는 어린 소녀임에도) 변신도구가 화장품, 악세서리 등 '성인여성'을 상징하는 아이템인 것도, 예컨대 자신의 생존자체를 지탱해 주는 엄마와 같은 존재가치를 얻고 싶어하는 욕망의 반영일 것이다.

마마마의 마법소녀들도 마녀를 사냥하며 가족을 친구를 세상을 지키는 노동을 통해 그러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마도카가 마법소녀를 동경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신도, 마법소녀가 되면 존재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린 소녀의 마음과 다름 없다. 이러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는 변신도구가 보석인 것도 위에 언급한 전통에 충실하다. '소울젬'이라는 이름의 이 보석을 통해, 필요할 때 마법소녀로 변신하며 존재가치를 얻는다.

3화의 '그 장면'이 마법소녀의 삶, 즉 존재가치를 획득하기 위한 행위가 낭만이 아닌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것을 드러냈다면, 작품에서 두 번째로 충격적인 소울젬의 실체는 (존재가치를 주는) 새로운 정체성이 과연 편리하게 분리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요컨대 소울젬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변신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소유자의 영혼이며(따라서 역설적으로 소유자가 소울젬에게 소유되고 있는 셈이다) 마법소녀의 육체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필요할 때 마법소녀로 변신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인 '마녀사냥기계'인 것이다.

▲ 3화 중 문제의 그 장면 (애니플러스)

계약의 비극

마도카의 절친인 사야카는 작중 인물 중에서도 마녀로부터 도시를 지킨다는 마법소녀의 공적 이상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가장 사적인 연애문제를 계기로 가장 빨리 정신이 무너져버린다. 위에서 언급한 소울젬의 실체를 깨닫는 사건과 겹쳐 '나는 대체 뭐지'라는 견딜 수 없는 혼란을 처한 것이다. 거기에 전철에서 우연히 듣게 된 남자들의 저속하고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지켜야 할 세계라는 이상마저 잃어버린다.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아예 잃어버린 사야카를 통해, 마녀에 대한 진실마저 드러난다. 마법소녀가 삶의 이유를 잃고 절망에 빠지면 소울젬이 오염되어 마녀가 되는 것이다. 결국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며 모든 마법소녀는 마녀에게 패해 죽거나 또는 마녀가 될 운명인 것이다.

게다가 마법소녀의 소울젬은 마법을 쓸 때마다 빛을 잃으며, (마법으로 유지되는 '껍데기'이기 때문에) 육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소모된다. 마녀와 싸우는 아니 싸워야만 하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사야카처럼 정의감의 문제가 아니라, 마녀를 쓰러뜨리고 얻을 수 있는 '그리프 시드'가 소울젬을 정화해 마력을 충전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마녀가 되지 않기 위해 죽을 때까지 마녀와 싸울 밖에 없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마법소녀와 마녀의 관계는 선/악이나 적대라기 보다는 생태계의 일부에 가깝다. 큐베가 소원을 들어주며 마법소녀를 만드는 이유 또한 마법소녀가 언제가 마녀가 될 그 순간을 위해서, 그때 발생하는 방대한 에너지를 채집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수집한 에너지는 엔트로피를 넘어서 우주를 유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왜 하필 10대 소녀인가 하는 이유도 감정의 변화가 가장 심하기 때문에, 희망에 차 있다가도 금새 절망에 빠져 마녀가 되기 좋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계약을 한다는 것은, 전체를 유지하기 위한 부품이 됨을 수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 큐베, "우주를 위해 죽어줄 생각이 들거든 언제든 얘기를 걸어줘." (애니플러스)

큐베가 말하지 않은 것

처음에 마마마가 계약의 문제, 마법소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계약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소녀들이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다(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철이 든다'는 말이 의미를 더 잘 전달할 것이다). 노동하고 무언가를 해냄으로써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도카에게 계약의 의미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점차 달라진다, 아니 정확히는 넓어진다. 말하자면, 큐베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묻지 않은 사실은 알려주지 않을 뿐이다.

계약은 본인의 자유의지이고, 일견 평등해 보인다. 그랬기 때문에 초반의 마도카는 동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생각지 못했던 진실들, 큐베가 말하지 않았던 계약의 진실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마마마는 (적어도 3화부터는) 마도카가 마법소녀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들이 밝혀지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무엇보다 큐베가 우주의 존속 운운하며 대의를 위해 희생해 줄 것을 이야기할 때는 전체주의에 대한 거부함까지 자극한다.

계약을 거부하라는 설득은, 10화에서 호무라의 타임루프 이야기를 통해 절정에 달한다. 호무라는 여러 차례에 걸친 시간 반복을 통해, 큐베가 알려주지 않았던 마법소녀와 계약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진실이 초래한 파국을 모두 경험했다. 10화의 내용은 위에서 언급했던 마법소녀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들, 호무라가 마도카의 계약을 막으려는 이유를 압축해 놓은 것이다. 요컨대 마마마는 어른이 된다는 것 곧 계약의 판타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비틀어, 그러한 판타지가 말하지 않는 맹점을 드러낸다. 작품이 말하고 싶은 것은 곧 큐베가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 계약하고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마도카 (애니플러스)

그럼에도 다시 계약

그러나 마마마의 결말은 이러한 흐름을 다시 한번 뒤집는다. 계약에 대한 진실은 모두 드러났음에도, 주인공 마도카는 결국 계약을 한다. 그리고 모든 소원으로 세계를 바꾼다. 또 그러한 초월적인 소원의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마도카가 마법소녀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 호무라 덕분이었다.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노력의 반복은, 마도카의 계약이 낳을 수 있는 위험을 증대시켰지만 동시에 마도카가 계약을 통해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그만큼 커지게 만들었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계약에는 비극이 약속되어 있다. 마도카의 초월적인 소원조차, 마녀는 없앴을지언정, 마법소녀들의 위험한 노동과 세계의 부정적인 요소들 없앨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세계는, 계약은, 마법소녀의 처우(?)는 나아졌다. 마마마는 작품의 대부분에 걸쳐 계약의 부정적인 면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계약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계약을 영원히 회피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호무라와 같은 다른 희생자를 전제할 때만 가능하며, 훗날의 더 큰 위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마마마가 드러내는 계약의 새로운 가능성은, 이렇게 길고 긴 '계약에 대한 부정'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계약이 가지는 온갖 문제와 위험 위에서만, 계약을 통한 진정한 변화가 가능했다. 마마마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긍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판타지를 넘어서려고 하지만, 동시에 계약은 부정적이므로 모두 거부해야 한다는 허무주의에도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적임을 낱낱이 드러내고 그런 가운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 또한 판타지가 아니냐고 순환론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것 즉 문제 많고 위험한 ‘계약’ 이외에 우리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조은상 하위문화평론가
'잉여'나 '덕후'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주류 언론에게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의 유의미한 집단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은 잉여/덕후의 정치적 가능성,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만 쏠려있을 뿐, 정작 그들의 정체성과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 하위문화(sub-culture)에는 무관심하다.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을 비롯해 하위문화는 지금 경계선에 서 있다. 수적으로는 이미 다수의 위치를 넘보고 있지만, 사회적 위상은 여전히 바닥에 있다. 물론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문화에도 왕후장상에 씨는 따로 없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 연재에서는 주류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으나 유의미한 향유집단을 가지고 있는 하위문화 콘텐츠 등을 소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편파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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