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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요금 70원' 정몽준과 '복당녀' 박근혜[신학림] 정몽준 의원의 판단력,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신학림 기자 | 승인 2008.07.03 11:35

정몽준 의원의 '버스 요금 70원' 발언 보도를 처음 들었을 때 사실 기자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그럴만한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1.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난리가 났다. 월드컵조직위원회 홈페이지 영어가 완전 엉터리에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문장으로 FIFA에서도 문제가 되는 등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된 적이 있다.

 

   
  ▲ 한국일보 6월 30일자 8면  
 

부랴부랴 대변인을 비롯한 조직위원회 간부들을 경질하고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새로운 홈페이지 관리자를 찾아 위탁함으로써 떨어진 명예를 회복하고 무사히 월드컵을 치룰 수 있었다.

기자는 그 때 일하던 영어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 홈페이지 관리자 경쟁 입찰을 직접 맡아 월드컵 조직위원회 홈페이지를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직접 관리해 준 적이 있다. 그 때 일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 홈페이지 관리 책임을 맡아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조직위원장으로서 조직위 홈페이지 관리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한 달에 200만원도 안되는 돈을 주고 맡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엉터리 영어 컨텐츠가 올라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이야 웬만하면 초중고 다닐 때 영어 연수다 뭐다 해서 해외에 다녀오는 바람에 학생들 영어실력 수준이 장난이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어학연수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라 대학생들의 영어수준도 그리 신통치 않았던 때이다. 당시 기자가 보기에 조직위 홈페이지에 올라있던 영어 콘텐츠는 고등학교 3학년이나 대학 1학년 학생들의 수준 정도 되었던 것 같다.

2002년 FIFA 월드컵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각각 독자적으로 월드컵조직위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조직위 홈페이지는 일본의 그것과 당장 비교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직위 홈페이지는 한국의 월드컵 준비 상황 등을 알리는 얼굴과도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일에 한 달에 불과 200여만원도 안되는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기가 찼다. 그 때 기자는 정몽준 의원을,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판단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에피소드 2.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몽준 의원은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대선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당시 4번 연달아 지역구인 울산(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계속 무소속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대선 가도에서 핵심 역할을 해 줄, 이른바 '계보 국회의원이나 중량급 정치인 참모'가 거의 없었다. 

이 때 핵심 참모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바로 강신옥(71) 전 의원이었다. 강신옥 변호사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70년대 초반 이래 박정희 독재 권력에 대한 지난한 투쟁의 역사에서 결코 우리 사회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60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기 전에 고시행정과(현 행정고시)와 고시사법과(현 사법고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1962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한다.

1963년 변호사로 개업해 활동하던 중, 1974년 4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부가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해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한 재야인사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소속 학생 등 1024명을 조사해 이 중 180명을 구속하고 조작을 통해 배후로 지목한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도예종 씨 등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선고 다음 날인 4월 9일 형이 집행됐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24시간 내에 형이 집행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국제법학자회의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주동자들이 '4단계 혁명'을 통해 노동자·농민에 의한 정부를 세울 것을 목표로 일본공산당과 결탁해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하며 사건을 일단락지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온 관련자들의 증언은 달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당시 핵심 관련자였던 이용택 전 중앙정보부 6국장 등은 "적화 통일 전술을 써서 우리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는 것을 입증하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전기고문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민청학련을 변호했던 강신옥 변호사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동아일보, 2008년 4월 3일자 <책갈피 속의 오늘> 기사 참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자의적 요구로 수사 방향이 미리 결정돼 집행됐으며 인혁당이나 민청학련이 무리하게 반국가단체로 만들어지는 등 사건의 실체가 과장됐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 1월 31일 발표했다.

이에 앞서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던 고 우홍선 씨 등 8명에 대해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사형이 집행된 지 33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강신옥 변호사는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자 안동일 변호사와 함께 김재규 등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그는 1986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기존 야당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규제가 이뤄질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실상 정치 외곽조직이나 다름 없었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인연 등으로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마포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강 변호사가 '정몽준 신당' 창당을 위한 기획단장에 임명되는 등 정 의원의 핵심 참모로 일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발끈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근혜 의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강신옥, 안동일 두 변호사가 김재규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안동일 변호사가 김재규 재판 과정 등을 자세히 기록해 2005년 펴낸 <10·26은 아직도 살아있다>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 문제가 나온다. 청와대 옆 궁정동 안가에 끌려가 박정희 대통령의 시중을 들었던 여성이 무려 20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안 변호사는 '대통령의 사생활도 역사'라며 고민 끝에 이 문제를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좋지 않은 과거를 끄집어내려고 쓴 책이 아닙니다. 최근 일고 있는 박정희와 김재규의 재평가 움직임과 관련해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는 게 첫째 목적이고, 둘째 목적은 우리 현대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대사건의 공판조서를 토대로 기록을 남겨 우리나라 기록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치적인 의도는 없습니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한사코 밝히기를 꺼렸던 박정희의 여자 문제에 대해 변호인 접견을 통해 털어놓았다고 한다. 안 변호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재규는 항소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박정희를 두 번 죽일 수 없다'면서 그 얘길 꺼내지 않았죠. 그런데 사형선고를 받은 뒤 1980년 2월19일 접견 때 항소이유보충서에도 차마 담지 않은 얘기를 뒤늦게 털어놨어요. 박정희의 치부를 공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 어렵게 입을 뗀 거죠. 그날 그럽디다.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를 찾아오는 빈도가 높았고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고. 상대하는 여자로는 영화배우와 탤런트, 연극배우, 모델 등 연예계 종사자가 가장 많았다고 해요. 그 숫자가 200명을 넘었대요."

박선호(당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사형집행)도 자신의 변호를 맡은 강신옥 변호사와의 접견에서 명색이 중앙정보부장 의전과장인 자신이 이른바 '채홍사(採紅使)' 노릇을 한 것에 대해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몽준 의원이 강신옥 변호사를 자신의 핵심 참모로 영입했다는 사실이 박근혜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불쾌했을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측에서는 정몽준 의원에게 강 변호사를 참모에서 배제할 것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몇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정몽준 의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문제가 되자, 정 의원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을 원치 않은 강 변호사가 알아서 참모 역할을 그만 둔 적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두 사례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정몽준 의원의 판단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가정: 만약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박근혜와 연대했다면 결과는?

역사에서 가정이 무의미하지만, 만약 그 때 정몽준 의원이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지 않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초등학교 동기동창인 박근혜 의원을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에 앉힌다는 고리로 박 의원과 연대해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치뤘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기자의 예상과 판단으로는 정몽준 후보 아니면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역사는 그렇게 해서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이는 작은 사건 하나로 물줄기를 바꾸게 되는지 모른다.  

이제 정몽준 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자신을 5번씩이나 국회의원에 당선시켜 준 울산(동구)을 버리고 서울(동작구)로 지역구까지 옮기며,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것 등으로 볼 때 다시 2012년 대선 행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표최고위원 경선의 유력한 상대는 우리나라 집권당의 최장수 대변인에다 '백전노장'인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71세, 5선)으로 보인다. 박 전 의원은 18대 공천과정에서 본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낙천의 고배를 마시고 '마지막 꿈'인 국회의장직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을 집권당의 대표가 됨으로써 달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런데 정 의원의 대선 가도에서 그가 넘어야 할 산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상대인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허태열, 공성진 의원 등이 아니다. 그가 이번 '버스 요금 70원' 파동을 무사히 넘기고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된다고 해도 그 앞에는 박근혜 의원이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와 정몽준은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오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다. 정 의원의 정치적 판단력 등에 비추어 볼 때 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상대하기는 버거워 보인다. 물론 박근혜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은 박근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산'이 될 수도 있다.

'복당녀' 박근혜의 최근 행보에서 정몽준 의원은 위안을 얻을까?

 

   
  ▲ 한국일보 7월 1일자 6면  
 

다만 정몽준 의원 입장에서는, 지난 4월 총선을 통해 국회 안팎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시장 전면 개방에 따른 촛불시위 정국에서 내내 침묵하며 한나라당 '복당' 이야기만 한다고 해서 네티즌 사이에서 '복당녀'로 불리다가 최근 '뒷북치는 듯한 양비론(兩非論)'으로 구설에 오르며 리더십에 상처를 받고 있는 것에서 위안을 삼거나 한 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가 격렬하게 이어진 6월 내내 박근혜 전 대표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 차례 한 뒤 줄곧 침묵을 지켰고, 6월 30일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쇠고기 고시 얘기를 꺼냈지만 이도저도 아닌 수준의 얘기만 했고, 정부는 추가협상 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뒤에 고시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성급했고 과격 시위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고 오마이뉴스는 최근 보도했다.

그런데 설사 정 의원이 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고 해도, 보다 근본적인 장애물은 남는다. 그의 아버지의 실패한 대선 행보에서 드러났듯이, 한 사람이 경제권력과 정치권력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쥐는 것을 우리 국민들이 과연 허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부와 경제력을 가지고 대한축구협회장과 FIFA 부회장 그리고 다선 국회의원이 되는 것과 대통령이 되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정 의원이 아버지의 못다 이룬 마지막 꿈을 대신 이루려는 생각은 가상하다고 볼 수 있으나 실패한 아버지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또한 아버지의 불행한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보통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정치인에게 판단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판단 잘못 내지 판단력 부족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70% 정도 수준 이상의 자리를 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얘기하는지 모른다.

신학림 기자  mediashi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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