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정의로운 가치를 걸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방식으로 싸워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다."(야간 동행에 참여한 한 시민)

YTN 해직기자들의 마지막 일정은 시민들과의 '동행'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소외된 '미디어 피폭지'를 직접 찾으며 400여 km를 걸어온 YTN 해직기자들의 일정은 27일과 28일의 야간 연속 도보 행진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미디어스>는 YTN해직기자들의 마지막 일정에 참여하기 위해 27일 오후 8시 30분, 50여 명의 시민, 언론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팔당역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 YTN 해직기자들과 시민들이 27일 오후 10시경 팔당역 앞에서 '공정방송 쟁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언론노조 YTN지부)

한시간 가량이 지나자, 버스는 팔당역에 다다랐다. 버스에 내린 지 30분. 10시경 YTN 해직기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50여 명의 시민들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혹은 그들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환영했다. 국토순례단 단장을 맡은 조승호 기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실 줄을 몰랐다"며 찾아온 시민들과 조합원들에 감사를 표했다.

회포를 푸는 길. YTN해직기자와 50여 명의 시민, 그리고 중간중간 그들을 보기 위해 참여한 언론노조 YTN지부 조합원들은 밝은 얼굴로 걷고 또 걸으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 덥지도 않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던 한강변에서의 야간 동행은 어두운 언론 현실에서 희망의 빛을 따라가는 원정대의 모습이기도 했다. 국토순례단에서 언론 문제는 빠질 수 없는 이야깃거리였다.

야간 동행에 참여한 한 시민은 "하루 정도는 YTN해직기자들과 연대를 하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한국 언론의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언론들은 단지 똑같이 보도를 하면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신문, 방송, 각 언론사마다 다른 방향과 시각으로 보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은 마치 모든 방송들이 예전 땡전 뉴스 때처럼 방송을 하고 있다. 다른 시각을 한국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고 꼬집었다.

뻔한 언론,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과 같은 보도. '설상가상'으로 권력이 언론사를 좌지우지한다. '국정원 직원의 보도 개입'이 대표적으로 이를 보여준다. 노종면 기자에게 현 YTN 상태에 대한 소견을 물었다. 노 기자는 YTN 구성원들의 피로감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적극적인 문제 의식이 발현되지 않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우리가 공정방송 국토순례를 하는 동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사건이 터졌다. YTN 내부에서도 고민들이 깊을 것이다. 밖에서는 해직자들이, 안에서는 그러한 일(국정원 보도 개입)이 터졌지. 그러나, 개선을 위한 내부의 의지가 사안에 비해 그리 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YTN 구성원들이 지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문제 의식) 수준에 동의할 수는 없다. 앞으로 걷는 시간 동안, 내가 YTN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대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등을 고민할 것이다"

노종면 기자와의 이야기가 끝나자, 시간은 28일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오전 1시 국토순례단은 덕소삼패한강시민공원에서 야참 시간을 가졌다. 이날 야참은 언론노조 KBS본부가 준비를 했다. 김현석 본부장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준비한 음식이 모자랄 것 같다"며 난감함을 표하면서도 손수 음식을 나르며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메뉴는 계란이 올라간 흰 쌀밥, 김치, 닭곰탕, 수박 등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조승호 기자에게 그간 방문했던 현장 중 어느 곳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 물었다.

조 기자는 "마지막 며칠 간 봤던 4대강이 인상 깊었다. 피폭지들 모두 가슴 아픈 장소이지만, 4대강과 강정은 사람 대 사람의 갈등이 아니라, 그 갈등으로 자연이 파괴된 것이잖나"며 "사람 대 사람의 갈등은 훗날 치유될 수도 있지만 파괴된 자연은 되돌릴 수가 없다. 인간이 자연에 죄를 짓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 기자는 마라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순례의 단장을 맡았다. 그는 동행 내내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순례단의 걸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폈다.

이어, 조 기자는 "순례를 하게 된 것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해보자는 취지였다. 변하지 않는 상황에 지친 YTN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힘이 되고 싶었다"며 "우리는 밖에서 편하게 걷기만 하면 되지만 안에 있는 후배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조 기자는 "YTN이 국민들의 신뢰를 너무나 잃어버린 것 같아 큰 걱정"이라며 "국정원이 보도에 개입하고, 특종이 불방되는 현실 속에서 YTN이 언론사로서 얼마나 생명력을 유지할 지 불안하기도 하다"고 우려했다.

▲ 언론노조 YTN 지부 조합원들도 '국토순례' 마지막 일정에 참여했다. (언론노조 YTN지부)

야간 동행에 참여한 또 다른 시민은 도보 연대를 하는 시민들과 YTN해직기자들의 이날의 모습을 "감동적"이라고 표현했다. 이 시민은 "YTN도 현재 공영방송 사수, 해고자 복직을 주창하고 있지만 KTX 철도 노동자들도 '민영화 반대'와 '해고자 복직'을 주장하며 호남선과 경부선을 타고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며 "전국 각지에서 정의로운 가치를 걸고 시민들을 만나면서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방식으로 싸워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새벽 4시 30분에 서울을 통과했고 30분이 지나자 날이 밝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논현동 사저를 시작으로 쌍용차 평택공장, 아산 유성기업, 삼성전자 온양공장, 광주 5·18 국립묘지, 제주 강정마을,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고공농성장, 진주의료원,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 등 언론에 의해 소외되거나 왜곡된 '미디어피폭지'를 돌고 돌아 19일 만에 다시 밟은 서울이었다.

정유신 기자는 "처음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나나 했는데, 3주도 금방 지나갔다"며 "조승호 단장의 영도하에 서울로 잘 돌아오게 된 것 같다. 목표가 분명하게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덜 지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 기자는 "1년이면 끝나겠지, 2년이면 끝나겠지, 그랬던 것이 5년 동안의 싸움으로 이어졌다"며 "이번 순례를 통해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드시 복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6시경 컵라면과 김밥으로 허기를 채운 YTN 해직기자들은 서울 여의도를 향해 다시 무거운 발을 뗐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면 다리 밑에 누워 더위를 피하고 다시 걷는 식이었다. 1시간 걸으면 15분 쉰다. 조금씩 계속 걷는다. 그렇게 밟아온 길이 400km였다.

▲ 28일 YTN 사옥 앞에서 열린 해단식에 참여한 YTN 해직기자들 ⓒ미디어스

YTN해직기자들은 이날 오후 3시 국회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해 200여 명의 조합원들의 큰 격려와 박수를 받았다. 이어 6시께는 장재구 회장의 편집국 폐쇄 조치로 밖으로 내몰린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를 지지 방문했다. 노종면 기자는 '격려사'에서 "2008년 YTN이 제대로 싸우지 못해 안타까운 선례를 만들었다"며 "다시 한국일보에서 그때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여러분들의 투쟁을 끝까지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28일 오후 7시. 70여 명의 언론노조 YTN 지부 조합원들은 YTN 사옥 앞에서 해단식을 열고 YTN해직기자(권석재, 노종면, 우장균, 정유신, 조승호)를 맞이했다. 조합원들과 YTN 해직기자들은 3주 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포옹과 눈물로 대신했다. 노종면 기자는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메시지를 읽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발바닥 통증도 싹 사라졌다. 너무나 고맙다"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9일의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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