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끼리는 통하는 것일까? 문화방송 MBC가 사실 확인을 배제하고 문화일보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해 공영방송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25일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준 문건이 '기밀문건'이었다는 문화일보 주장을 차용한 보도를 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날 3번째 꼭지에서 "국가 비밀 문서를 건넸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며 공방으로 이 건을 다뤘지만 화면의 제목은 <비밀문서 건넸나?>였다. 권재홍 <뉴스데스크> 앵커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서를 건네는 대목이 있다"며 "이를 놓고 국가 비밀 문서를 건넸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비밀문서를 건넨 것처럼 보이는 뉴스 화면과 권 앵커의 코멘트는 노 전 대통령이 김 국방위원장에게 건넨 것이 '기밀문건'이라고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큰 대목이었다.

이어, MBC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날 무렵 김정일에게 '심심할때 보라'며 보고서 하나를 건넸다"며 "일각에서는 이 문서가 비밀문서에 해당한다며 우리측 전략을 북한에 노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설명자료'라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 MBC <뉴스데스크>는 25일자 보도. (MBC 뉴스데스크 화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건넨 문건이 '기밀문건'이라는 주장은 문화일보에서 처음 나왔다. 문제는 주장의 근거가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익명의 정부 당국자라는 점이다. 또, 이 정부 당국자의 발언에는 '기밀 문건'을 입증할 만한 논거가 없었다.

문화일보는 25일 <盧, 김정일에 준 문건 '국가기밀' 이었다> 기사에서 "지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건넨 ‘보고서’는 국가 주요 현안들과 관련한 관계부처 종합보고서로 '비밀문서'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또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국가정보원이 일반문서로 분류해 공개한 노무현·김정일 회담록 전문에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위원장에게 건넨 것으로 되어 있는 '보고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 등과 관련한 관계부처 종합보고서로 당연히 비밀문서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어, "쉽게 말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반국가단체 수장에게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보고서를 건넨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일보 보도 이후 당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국장은 <연합뉴스>에 "김 위원장에게 우리의 입장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기밀자료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연합뉴스>는 김 국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경제협력 등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구두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 김 위원장이 자료를 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며 "북측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내용을 구성했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의 해명 이후, 이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MBC가 다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조선일보도 26일자 기사 <盧가 金에 "심심할 때 보라"며 건넨 보고서의 정체는…>을 통해 이 논란에 동참했다. 종합해 보면, MBC는 문화일보의 주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반박을 공방 기사로 다룬 것이지만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일부 언론사의 주장을 메인 뉴스의 화면으로 뽑아 사실인 것처럼 보도를 한 것이다.

MBC 보도는 보수 언론의 '노무현=종북' 프레임을 빌려 쓴 것으로 보인다. '낙인찍기'에 MBC까지 동원됐다는 얘기다. 적어도 공영방송이라면 근거가 미약한 일부 언론사의 주장을 인용하기보다 적어도 기밀 문건이었는지 여부에 대한 충분한 취재와 확인을 거쳤어야 했다.

▲ 문화일보 25일자 기사 <盧, 김정일에 준 문건 '국가기밀'이었다> (문화일보 인터넷 홈페이지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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