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일(25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 오늘(25일)자 한겨레 1면 기사
25일자 ‘조중동’의 1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실상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해석을 유도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1면은 국정원이 ‘무단’ 공개를 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조중동’을 보수로 ‘한경’을 진보로 보는 시각 자체가 진부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한 통념이나 편견을 그대로 두고 말한다면, 보수와 진보가 뒤집어졌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는 진보를 아이 취급, 혹은 청년 취급 하려는 경우가 많다. 조롱할 때는 아이 취급이고 그나마 긍정성을 인정해줄 때가 청년 취급이다. 민주주의가 제법 고착화되어 나이든 진보정당원과 젊은 보수정당 지지자가 많은 미국과 유럽에서조차도 수사의 차원에서는 그렇다.
이는 단지 한 사회에서 변혁을 추구하는 이들의 생물학적 연령이 낮았다는 점에서 나온 우연적인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보수의 가치라는 것이 사회와 인생을 충분히 경험해본 이들의 연륜과 비슷한 내용을 담게 되었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선전되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진보세력이 대체로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선 무슨 수단이든 정당화된다고 여겼다면, 보수세력은 형식이나 절차를 중하게 여겼다. 절차를 섣불리 우회하려는 태도가 장기적으로 어떤 파멸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진보세력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선 어떠한 손해든지 감수해야 한다고 보았다면, 보수세력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익이나 위치해 있는 이해관계를 훼손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보수와 진보의 이러한 전형적인 태도들은 대체로 모든 사회에서 노인과 청년의 유비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단지 어떠한 당위나 윤리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실은 이미 권력을 가지고 국가를 경영해본 이들 특유의 조심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체로 어떤 사회에서나 보수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전통 사회에서 노인의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것을 의미했다. 또 반대로 바로 그랬기에 모든 사회에서 어떤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은 청년의 감수성을 지닌 진보세력을 포용하고 설득해야 하며,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에서 우리가 거듭 확인하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보수는 이러한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버튼’을 눌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할 뿐 절차적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조중동’ 중 한 신문이라도 국정원장의 결단으로 정국을 파행으로 몰아넣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을 보도의 중심 기조로 삼았어야 했다. 적어도 그들 중 하나라도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이러한 폭로 이후 한국 외교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걱정하는 것을 보도의 중심 기조로 삼았어야 했다.
▲ '버튼' 눌린 오늘(25일)자 조선일보 사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은 애초에 미소냉전으로 인한 미묘한 동아시아 질서가 체제 존립을 보장해주는 사회를 살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권력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치매’가 온 탓인지 이런 시각 자체가 전무하다. 진보세력의 환상이 친일파를 쓸어내 버려야 그제서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면, 보수세력은 적어도 그 기준의 자의성과 비합리성과 비현실성을 비웃어야 할 텐데, 실은 그들이 이미 친북파를 쓸어내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진보세력이 운동권이라면 보수세력 역시 단독정부 수립 이후 계속해서 반혁명분자를 숙청하는 혁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 보수세력이 아무리 엉터리라도 처음부터 얼치기 학생운동권이 나라를 맡았을 때나 만들어낼 이런 파행을 만들어낼 정도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이미 ‘똥’과 ‘된장’을 구분해내는 자정작용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양대축 중 하나인 보수세력이 이처럼 혁명적 운동권처럼 행세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가의 장래를 고민하는 어려운 문제가 진보진영은 물론 한국 사회 시민 전부에게 던져지게 되었다. 6.25 발발 63주년, 종전 60주년에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 심각한 문제다.
▲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지난 20일 강원 동해시 해군 제1함대사령부 광개토대왕함에서 장병들과 함께 식판에 밥을 담고 있다. 밥만 먹게 되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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