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이 국정원 대선 개입 관련 특종 보도를 한 YTN 기자에게 ‘국정원 입장도 반영해 달라’, ‘보도국장에게도 국정원 입장이 전달될 것’이라는 내용의 전화를 걸고, 보도국 회의 내용까지 확인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선 개입 의혹을 받는 국정원이 ‘보도 통제’까지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YTN은 지난 20일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글 등 2만 건 포착’이라는 뉴스를 단독 보도했다. 이 사안을 취재한 사회1부 기자는 국정원 SNS 의심 계정 10개에 올라온 대선 전 3개월 글을 복원·분석해, 해당 계정 사용자들이 박원순 시장, 반값 등록금, 무상보육 등에 대해 ‘비판 일색’인 글을 올리고 리트윗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국정원이 대선 개입뿐 아니라 국내 정치 일반에도 간여해 여론 조작을 벌인 정황이 포착된 ‘특종’이었다.

당시 임종렬 YTN 편집부국장은 “리포트 내용이 좀 어렵고 애매하니 그만 내도록 하라”고 PD들에게 지시해 이 뉴스의 오전 10시 이후 방송 보도를 중단됐다. 임종렬 편집부국장의 이 같은 지시에 국정원의 ‘입김’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김종욱, 이하 YTN노조)는 24일 성명을 내어 “‘국정원 SNS’ 관련 YTN 특종 리포트 방송 중단 지시가 내려지기 전, 국정원 직원이 이미 이 리포트에 대한 보도국 회의 내용을 파악하고 YTN 기자에게 회의 내용을 전달하며 ‘국정원 입장 반영’을 요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 YTN노조는 24일 성명을 내어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글 등 2만 건 포착’리포트의 방송 중단 전, 국정원 직원이 해당 뉴스를 취재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국정원 입장 반영'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화면 캡처)

YTN노조는 “한 국정원 직원은 당일(20일) 리포트가 방송되고 있던 오전 시간대에 YTN 기자(특종 보도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국정원 입장도 반영했으면 한다’며 ‘보도국 회의에서도 기사 내용이 어렵고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단독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하니 참고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국정원 직원은 기자에게 ‘보도국장에게도 국정원 입장이 곧 전달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직원이 언급한 내용은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가 특종 리포트 방송 중단에 반발해 보도국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자, 이홍렬 보도국장이 내 놓은 해명과 일치한다. YTN노조는 “당시 보도국 회의 참석자 외에 구성원 대부분은 모르고 있던 회의 내용을 국정원 직원이 어떻게 알고 기자에게 전화를 했단 말인가”라며 “YTN 내부 누군가가 국정원과 내통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SNS, 박원순 비하글 등 2만 건 포착’ 보도는 개별 리포트의 경우 오전 10시 뉴스를 끝으로, 단신의 경우 오후 2시 뉴스를 끝으로 더 이상 방송되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과 기자의 통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YTN 보도국에서 해당 리포트의 ‘방송 중단’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에서 인용 보도됐던 YTN의 특종 뉴스는 20일 오후와 저녁 시간대 뉴스에서도 자취를 감추었고, 오후 5시 뉴스에서 전문가를 불러 진행한 국정원 사건 관련 대담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YTN노조는 “국정원 규탄 집회들이 YTN 간부에 의해 아예 취재단계에서 차단된 사례들이 지난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연이어 발생했다”며 “휴일 근무 인원까지 늘려놓고 당연히 처리할 사안을 취재도 못하게 한 상황은 국정원이 ‘보도국 회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21일부터 국정원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 집회가 계속됐으나 YTN은 주말 내내 해당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이어 YTN노조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정치 개입 의혹이라는 중대한 사태 속에서 국정원이 언론사 보도국 회의 내용을 파악하고, ‘입장을’ 전달하고, 실제로 방송이 중단돼 버린 상황은 국정원이 언론사 보도까지 통제하는 5공 시절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라며 “권력의 언론탄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이라고 비판했다.

임장혁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24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이 언론사 보도를 통제하고자 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검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 발표 중계 취소, 특종 리포트 불방에 주말 촛불집회는 아예 취재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기자들 사이에서 공분이 굉장히 높고, 기자협회에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강성남, 이하 언론노조)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YTN의 ‘국정원의 박원순 시장 비하 SNS 글 2만 건 포착’ 기사에 대해 국정원 직원이 YTN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최근 드러났다”며 “유신 시절, 5공 시절에나 있을 법한 정보기관의 노골적인 언론 통제는 충격”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이 선거 개입은 민주주의 파괴와 헌정 질서 문란이라는 점에서 범국민적 관심사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며 “국민의 알 권리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권력의 눈치만 보는 자들은 역사적 단죄를 각오하라”고 밝혔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역시 “이른바 ‘보도지침’의 존재가 노골적으로 확인된 사례”라며 “권력에 대한 보고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것은 보도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국정원 사건’은 메인 뉴스에서도 외면 받고,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아예 해당 내용을 다룬 꼭지 하나가 불방되는 등 계속 외면당해 왔다”며 “여러 방송사에서 이렇게 ‘국정원 사건’을 축소 보도하려는 경향은, 이 사건이 청와대에도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알아서 기며’ 보도 방향을 필터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홍렬 YTN 보도국장은 24일 오후 입장을 내어 “노조가 통화 당사자로 지목한 국정원 직원과 YTN기자에게 확인한 결과 양측으로부터 그런 내용으로 통화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라며 “YTN의 어느 간부도 보도국 회의 내용을 국정원 직원에게 전해준 사실이 없으며 노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반박했다.

이어, “보도국장인 저는 이번 기사와 관련해 국정원 직원과 어떤 통화도 없었음을 명백히 밝힌다. 사전 통화 사실이 있다면 어떤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홍렬 보도국장은 “국정원은 당일 오전 YTN 뉴스가 나간 뒤 반론 주장 차원에서 담당 기자에게 전화를 했고, YTN은 방침에 따라 국정원의 반론을 실었을 뿐”이라면서도 “국정원이 반론 요구를 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과 담당 기자 사이에 대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표현상에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뒤집지는 못하고 있어 국정원의 보도 통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직원과 취재기자 사이의 통화가 있었고, 이들의 통화 이후 해당 리포트의 방송 중단 지시가 내려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해당 리포트는 오전 10시 뉴스 이후 방영되지 않고 단신으로만 2차례 소화됐다는 점에서, 국정원 직원과 기자 사이의 전화를 '일반적인 반론 게재 요청 전화'로 표현한 사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 YTN노조는 오는 28일 공정방송위원회를 열어 사측에 특종 리포트 불방 사태, 국정원 직원의 전화 통화 건의 발생 원인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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