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Mein kampf)’을 선물했다는 한 매체의 보도를 두고 묘한 갈등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북한 및 탈북자 관련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신문인 <뉴포커스>는 18일 북한 출장자로 해외에서 근무 중인 통신원을 인용해 김정은이 생일인 지난 1월 8일을 맞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장급 간부들에게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선물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뉴포커스>는 “김정은이 고위급 간부 앞에서 ‘핵+경제 병진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을 짧은 기간에 재건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잘 연구하고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보라고 지시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뉴스1)

또, <뉴포커스>는 “평양의 간부 사이에서는 요즘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시절 히틀러를 연구하고 공부했다는 소문과 심지어 김정은이 어린 시절 군사와 관련한 외국TV프로그램을 녹화해 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욕하고 기물을 마구 던졌다는 소문도 나돈다”면서 “김정은은 ‘어린 나이’라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히틀러를 모방한 공격적 언사로 걸핏하면 간부들 앞에서 목청을 높인다”는 사실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19일 북한 인민보안부는 특별담화를 통해 “현 괴뢰 당국과 날강도 미국의 부추김 밑에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리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단행하기로 결심하였다”면서 “남한 정부가 탈북자들을 북한 전문가로 둔갑시켜 공개적인 비난전에 앞장세운다”며 크게 반발했다. 사회주의 국가를 자처하는 북한이 당 간부들에게 파시스트인 히틀러의 저작을 선물한 사실 자체도 모순적이지만 당 핵심의 내밀한 사정이 외부로 새어나가 웃음거리가 되는 상황에 대한 반발이 반영된 것으로도 읽힌다.

경제가 너무 어려우니 히틀러라도 연구하자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의도는 1차대전 이후 보잘 것 없는 자원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빠른 시간 안에 경제를 복구하고 다시 전시동원체제를 가동시킨 나치 정권을 연구해보라는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 역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짧은 시간 안에 어느 정도 이상의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핵심이기는 하지만 그에 발맞춰 경제체제도 발전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선물을 하게 된 것 아닌가 하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경제사정은 물론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핵실험 등 모험주의적 외교노선으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 데 많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받고 제재를 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입장에 서있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로 방중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직후 중국 정부 관리의 영접을 받으며 귀빈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최근 강경일변도의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어 일본, 중국, 우리 정부 등을 상대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해온 것 역시 이러한 사정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일본의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의 방북을 허가한 데 이어 중국에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로 파견하는 등 대화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격’ 문제로 무산되기는 했지만 우리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남북당국회담 성사를 통한 유화국면을 조성해 27일로 예정된 한중정상회담 이후 유리한 입장을 취하려 한 것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상황은 북한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대 우방인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다 한·미·일 국제 공조의 틀이 다시 분명해지는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공조 복구로 북한은 곤란한 상황

▲ 조태용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뉴스1)
한·미·일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회동해 의견을 교환한 결과는 이러한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3자회동에 앞서 “북한이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인 비핵화가 중요하다”며 “최소한 2.29 합의 때 했던 의무사항보다 강한 의무가 이번에 부가돼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미국이 지난해 합의한 2.29 합의에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의 대가로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핵·미사일 실험 유예,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허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대화를 위해서는 이 수준보다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북한도 중국을 통해 나름의 대응을 하려는 구상인 것으로 보이나 상황은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방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19일 열린 북·중 외교당국 간 전략대화에서 김계관 제1부상은 “조선(북한)은 유관 당사국과의 대화를 희망한다”며 “6자회담을 포함한 어떠한 형식의 각종 회담에라도 참가, 담판을 통해 평화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미·일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상황이기 때문에 상당한 조치가 전제되지 않고 6자회담 등의 형식으로 문제가 풀릴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때문에 결국 조만간 북측이 전향된 입장을 제출하는 등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가 시작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한중정상회담의 결과와 6자회담 당사자국의 마지막 한 곳인 러시아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이후 상황이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가능할 수 있다.

▲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뉴스1)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북한이 우리 정부에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북한에게 불리한 요소로 돌아올 수 있는 국면이기 때문에 아무리 분통이 터져도 최소한 당분간은 북한이 탈북자들에 대한 ‘물리적 제거’에 나서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