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정부와 여당이 속도조절론 등을 제기하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20일자 기사를 통해 정부의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의 방침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면 ‘이대로 가면… 올 稅政 28조원 펑크’, 4면 ‘稅政 줄자 기업 쥐어짜기… 경제 불안 키워 小貪大失’, 같은 면 ‘성장률 1%p 오르면 세수 2조원 늘어’, 같은 면 ‘은행 수익 절반 줄어 세금 1조4000억 덜 걷혀’ 등의 기사를 통해 정부의 정책 방향을 비난했다.

▲ 조선일보가 기업의 세무조사 등을 걱정한 20일자 1, 4면 기사들.

조선일보는 “세수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인데, 정부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 세무조사에 목을 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기업들이 반발하는 경제 민주화·근로 조건 개선 관련 법 개정 추진 내용’이라는 표를 게재하기도 했는데, 이는 정부는 세무조사에 집착하고 정치권에서는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제정하고 있으니 기업들 입장에서는 매우 큰일이 났다는 식의 인상을 주는 지면배치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러한 용감한(?) 총대메기는 오히려 정부 측의 최근 행보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관점도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18일 서울 렉싱턴호텔에서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관세청장과 조찬 간담회를 갖고 “경제정책의 목표가 바람직하더라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위축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울고 싶은 정부에 뺨 때려준 격

현오석 부총리는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은 시대적 과제로 반드시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겠다”면서도 “공정위와 세정 당국도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의욕을 저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현오석 부총리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에는 과도하게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면서 “이런 법안이 마치 정부 정책인 것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현오석 부총리가 18일 서울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및 국세ㆍ관세청장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도 현오석 부총리의 입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때 시급성이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국정과제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되, 불필요한 과잉규제가 되지 않도록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하겠다”면서 “갑을관계법 및 공정거래법상 집단소송제도나 3배 손해배상제 등 기업제재를 강화하는 입법들은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 보다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

김덕중 국세청장과 백운찬 관세청장도 "지하경제 양성화는 조세 정의 차원에서 과거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적으로 바로잡는 것"이라며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말해 사실상 그간 강조된 정부의 정책방향에 일정한 후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반발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일사불란한 후퇴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도 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이기도 한 이혜훈 최고위원은 19일 MBC라디오 <시선집중>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의 발언에 대해 “저로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고 발언했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경제권력기관장이라고 불리는 분들에게 기업활동을 위축시키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설마 뭐 불법행위가 있는 데도 덮어둬라, 그런 얘기는 아니지 않겠나?”라면서 “그러면 남는 가능성은 불법행위가 없으면 기업을 괴롭히지 말라, 이런 얘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사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당연한 얘기를 새로운 얘기인 듯 말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인 것이다.

또,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라는 건 대통령의 대표공약이었고 명분 면에서도 실리 면에서도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라면서 “백보를 양보해서 지하경제를 양성화 하려면 기업들이 어려워한다, 이런 현실이라고 보더라도 기업들 편하게 해주려고 탈법이나 불법을 정부가 덮어줄 순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에 대한 현오석 부총리 등의 부정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집단소송제도나 3배 손해배상제도, 이런 것들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법들이 소위 말하면 기업을 옥죄고 위축시킨다고 얘기하신 걸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이 법안들이 박근혜 선거 공약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오랫동안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는 점,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손해를 끼치는 법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현오석 부총리와 관련 기관장들이 과도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혜훈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경제민주화는 어디로?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혜훈 최고위원은 “과잉입법이나 부실입법을 방지하는 것은 찬성한다”고 말해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처리에 어느 정도 논란을 고려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혜훈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법을 저희들도 과거에 만들다 보면 마음이 급하거나 의욕이 앞서서 부실입법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입법의 파장을 모든 각도에서 면밀히 따져보고 부실입법이 되지 않게 대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20일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한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 역시 “입법 취지에 걸맞은 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현실에 기초해서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고 특히나 법 제정으로 인한 후광 효과를 잘 계산해서 얘기치 않은 효과를 차단하는 면밀한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구더기가 장 전체에 차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장은 안 담그는 것이 낫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을 고려해보면 여당 내부에서 반발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오석 부총리를 필두로 한 정부,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이 합심해서 제기하는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후퇴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시민사회의 대응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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