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국정원 진상조사특별위원회-법사위원 공동 기자회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불구속은 MB와 MB 측근들에 의한 외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면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불구속은 TK라인의 외압에 의한 불구속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한 데 이어 17일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12월 16일 권영세 종합실장과 박원동 국정원 정보국장이 여러 차례 통화했다는 제보가 민주당에 들어왔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간 민주당 측은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하며 국정조사 실시 등 강력한 대응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3월 17일 정부조직개편안 협상 타결 시 이한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정원 직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관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를 했었다. 이후 지난 11일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를 발표하는 등 이에 대한 수사가 사실상 종결됐고 박영선, 박범계 의원의 폭로까지 더해지면서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양상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 (뉴스1)

사실 민주당 측의 강력한 대응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첫 대정부 질의가 진행되던 지난 4월 23일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및 경찰의 은폐·축소수사 의혹을 헌정질서를 파괴한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원세훈 국정원장 등에 대한 구속수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민주당은 지난 13일에도 의원총회를 열어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박영선, 박범계 의원의 폭로는 민주당의 이런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TK가 문제인 이유

하지만 특이한 것은 ‘TK’라는 어휘의 등장이다. TK는 대구경북을 의미하는 말로 보수적 지역정서를 표현하는 수사로 읽혀왔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법무부장관, 청와대의 수사 개입에 왜 TK가 문제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민주당의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 정권에서 자행된 일로 이전 정권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공작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으로 인해 직접적인 이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이지만 어쨌든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전임 정권의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권영세 주중대사. (뉴스1)
하지만 ‘권영세’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영세 의원은 이명박 정권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대표적인 인사이다. 한참 분위기가 암울했을 때에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진행하는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나와 신세한탄을 할 정도였다. 이 분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는 당연히 친이가 아니라 친박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였으니 위세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국정원 직원 선거 개입 사건에 권영세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이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사건의 성격은 순식간에 전 정권과 현 정권이 함께 벌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가 TK라는 키워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포항 출신이다. 대통령의 형으로 대활약했던 이상득 전 의원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TK의 피가 흐른다”라고 말하여 구설수에 휩싸인 일이 있다. 이전 정권에서 동지상고 출신과 ‘영포회’라는 사조직이 상당한 실력을 자랑한 것으로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 달성군을 지역구로 하는 의원 출신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계 자체가 TK의 본류로 불린다. 권영세 의원 역시 고향을 안동으로 하는 TK출신 인사로 분류된다. 즉, 민주당의 주장은 전임 정권과 현 정권 모두 TK이며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두 정권의 합작품이고 그에 대한 직접적 피해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당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어디까지 대응할 것인가?

물론 민주당의 억울한 사정이야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이 민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의 패배가 오로지 국정원의 선거 개입 때문이라는 듯한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명한 행보라고 볼 수는 없다. 국민들은 이미 민주당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을 거두지 않고 있는데 ‘억울하게 졌다’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에 민주당이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개혁을 바라고 환골탈태를 바란다. 따라서 민주당으로서는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격적으로 하더라도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정치행보를 이어나갈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 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신경민 의원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와 관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발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의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경민 의원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 개입은 완전히 범죄 집단화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치적 문제이기 앞서 원칙의 문제”라면서 재발방지 대책, 처벌, 조사 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신경민 의원은 “국정조사를 계속 이렇게 무리하게 파탄을 내려고 한다면 국민과 당을 거리로 몰아내는 조치로밖에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는데, 이는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을 기점으로 하여 원외에서 투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안될 것 같은데

하지만 민주당이 이러한 투쟁을 감당할 수 있는 지경인지는 의심스럽다. 장외투쟁은 ‘국회 공전’이니 ‘극한 대치’니 하는 온갖 비난을 이겨내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과거 김대중 총재와 같은 리더십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장외투쟁에 대한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외부에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독자세력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상징적 존재로서 역할을 해야 할 김한길 대표는 존재감이 더욱 엷어지고 있다.

▲ 분노하는 문재인 의원. (뉴스1)

16일 기자들과 함께 북한산을 등반한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해 “분노, 분노, 분노가 치민다”는 표현을 동원하여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재인 의원은 이제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국정원, 경찰을 바로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박근혜 정부가 그 기회를 제대로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인트가 국정원과 경찰에 대한 개혁문제로 맞춰지면 앞서 박영선 의원 등이 제기한 ‘TK’프레임은 무력화 된다. 박근혜 정부가 그냥 개혁을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의원의 당 혁신 방안에 대한 발언에 김한길 대표가 반박을 하면서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런 상황 자체가 민주당이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인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극한투쟁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당처럼 리더십이 구축이 안 되는 당이 또 없다. 과연 민주당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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