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정치 반성문? 보수 언론의 호들갑스런 '환대'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의 이른 바 ‘진보정치 반성문’에 대한 보수언론의 반응이 뜨겁다. 심상정 의원은 11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거대 양당체제의 정치제도 개혁 없이는 진보정치와 새 정치의 길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상정 원내대표는 “진보정치가 과거의 낡은 사고틀에 갇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다”며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 세력과 북한 등에 관련된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12일 사설을 통해 심상정의원의 발언을 “지난 10년 간 민주노동당 내에서 비판이 허용되지 않았던 북한과 민주노총이라는 2대 성역(聖域)을 겨냥하고 있다”며 향후 진보정당이 북한과 민주노총을 버려야 활로가 생길 것이라는 조언을 했다.

▲ 진보정치의 미래에 대해 나름의 조언을 한 조선일보의 12일자 사설.

중앙일보 역시 12일 칼럼을 통해 심상정 의원의 자기반성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무엇보다 또다시 종북세력과 손잡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훈수를 뒀다. 또, 중앙일보는 “진보정치는 파이를 쪼개자는 타령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조선일보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언인 셈이다.

심상정-안철수 연대론?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이 연설을 계기로 심상정 의원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의 연대설이 점쳐지기도 한다. 경향신문은 12일 심상정 의원의 연설을 보도하면서 안철수 의원 측과의 연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심상정 의원이 10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이 독자정당을 추진한다면 진보정당이 직면했던 거대한 기득권 정치체제에 직면하게 되지 않겠나”라며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정치개혁에는 충분히 공조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 근거다.

▲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의 연설을 보도하면서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의 연대설을 보도한 경향신문의 12일자 기사.

지난해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결선투표제 등의 선거제도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는 사실상 양당제처럼 운영되는 측면이 큰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결선투표제라도 도입되지 않으면 진보정치를 비롯한 제3세력이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반영한 것이다.

새정치를 기치로 제3지대를 공략해야 하는 안철수 의원 측 입장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선거제도 개혁은 나쁘지 않은 전망이 된다.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한 강연에서 “양당제는 시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부정적인 정당체제, 담합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면서 “대통령제 하에서 4, 5개 정당이 경쟁하는 체제를 갖추려면 결선투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장을 맡고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도 “두 개의 당으로 양분된 상황에서는 강요된 선택에 의한 사표(死票)가 많다”며 최장집 이사장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러한 맥락을 감안하면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 등을 고리로 하여 제3정당을 추구하는 안철수 의원 측과 진보정치세력이 어떤 형식으로든 행보를 같이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셈이다.

우경화? 대중적 진보정당?

하지만 진보정치세력 일각에서는 이런 전망을 ‘우경화’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한 활동가는 심상정 의원의 연설을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며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그 사람들은 통합진보당에서도 애국가 논쟁 같은 것을 통해 국가주의에 투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사람들이다”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진보정의당 내의 왜곡된 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진보정의당원은 “내부에서도 대중적인 진보정치를 하자는 얘기와 당의 이념을 바꾸자는 얘기가 뒤섞여져 논의되고 있다”며 “심상정 의원의 말이 이제는 갈 길을 정하자는 것처럼 들려 걱정이 된다는 사람들도 당 내에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실제 진보정의당 내의 논의에서는 출신별로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과 향후 전망에 대한 의견 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정의당 내의 민주노동당 출신 당원들과 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의 생각이 다르고, 같은 민주노동당 출신 당원들이라 하더라도 이른 바 인천연합으로 불리는 자주파 출신 당원들의 입장과 통합연대라고 불리는 평등파 출신 당원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지난 달 25일 열린 진보정의당 6차 전국위원회의에서 당대회에서 다뤄질 ‘일곱가지 대국민 약속 채택의 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과정에서 안건에 포함돼있던 북한에 대한 입장과 민주노총과의 관계에 대한 입장 등이 보다 완화된 형태로 수정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상의 우경화를 인정할 수 없다’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3세력? 진보정치 부활…'북한·민주노총' 결별선언만 끝나선 안돼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언론을 통한 모처럼의 조언이 북한, 민주노총과의 결별을 촉구하는 데에서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가능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과 결별하는 혁신 이후에 닥칠 정치적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어떤 포지션을 고수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진보정의당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결국 이러한 혁신 이후에 진보정당이 자기 역할을 포기하고 제3세력의 존재감만을 취하려 할 것이라는 걱정을 반영하는 것이고, 진보정의당이 혁신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고립된 상태의 진보정치를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보수언론의 고루한 지적들은 진보정당이 자기 역할을 포기하고 기존 체제에 투항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아직도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인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수언론은 더 이상 분배의 정의만을 외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사회에 지금 분배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보수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표적인 진보적 담론인 경제민주화를 선점해서 승리한 것을 높게 평가하지만 진보정당이 자신의 전통적 역할을 고수하며 분투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황이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즉, 진보정치의 부활은 진보정치가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지, 우리 정치 전반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으로부터 모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으로서 북한, 민주노총과의 결별만 외치고 마는 것은 다소 단순한 접근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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