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당국자 간 실무접촉을 통해 오는 12~13일 서울에서 남북당국회담을 열기로 함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도 큰 흐름의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남북 실무진들은 10일 새벽 마무리 된 실무접촉에서 회담의 이름을 남북당국회담으로 하기로 하고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측 대표단이 서울에 방문하는 일정을 확정했다. 다만, 회담 의제와 수석 대표의 성격에 대해서는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한 추가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특히 미중정상회담 직후에 내려진 것이어서 국제정세까지 포함한 상황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국제정세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미중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미중정상회담 전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파견해 북한의 입장을 전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고 미중정상회담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우리 측에 대화의 의지가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그간 강경론으로 일관해온 북한의 일정한 태도 변화의 근거로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이 유력하게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미중정상회담의 성과

때문에 7~8일 진행된 미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양국의 의미 있는 의견접근이 진행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중 양국은 ‘비핵화 원칙 확인’외의 다른 한반도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캘리포니아 란초미라지에 있는 사유지 써니랜즈에서 더위를 견디며 회담을 진행한 오바마와 시진핑 (AFP=뉴스1)

오히려 중국 측이 주요하게 제기한 것은 ‘신형대국관계’라고 부르는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관계 형성과 관련한 것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국에 대한 두 가지 선입견을 숨기지 않아왔다. 하나는 경제적인 상황과 관련해 미국을 위협할 만큼의 고도성장을 이루고 있는 국가라는 게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와 관련해 후진적 인식과 제도를 갖추고 있는 국가라는 관점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전자에 대해서는 위안화 절상 요구와 같은 현실적 접근을 취해가면서 후자를 근거로 변화된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해왔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신형대국관계’가 인정되면서 미국의 이러한 스탠스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게 됐다. 신형대국관계란 결국 미국이 세계 강대국의 양대 축으로서 중국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이러한 합의에서도 미국은 ‘이제 막 강대국의 지위를 갖추게 된 중국과 이미 강대국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프레임과 ‘사이버안보’ 등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어쨌든 중국보다는 미국이 우위라는 점을 새삼스럽게도 재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신형대국관계가 의외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미국이 중국을 인정함으로써 ‘비핵화’를 핵심 목표로 하기만 하면 동아시아 질서에서 중국이 상당한 자율권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그간 꾸준히 제기해왔던 ‘중국역할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중국의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고수하는 선에서 한반도 문제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상당한 명분을 획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이 중국으로 넘어온 셈이다.

한중정상회담의 중요성 커져

문제는 이 다음이다. 명분을 갖고 한반도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입장부터 들어보는 것이 순서이다. 북한은 이미 중국과 대화를 한 차례 했으므로 이제는 우리 측 입장이 제기될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중국을 국빈 방문하게 되면 이러한 과정은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한중정상회담의 결과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고수가 다시 한 번 공표될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한중정상회담에서 도출된 메시지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이야기 하는 것에 그칠 수는 없다. 즉, 한중정상회담에서 중요하게 제기되어야 할 것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뉴스1)

따라서 곧 진행될 남북당국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이러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는 구성을 갖고 주도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기할 수 있다. 만일 남북당국회담에서 비핵화, 체제 문제 등에 대한 공방만을 주고받다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게 된다면 한중정상회담에서도 구체적인 우리 측의 입장을 제기할 수 없게 되고 상황이 이대로 8월까지 흘러갈 경우 남북관계는 또다시 냉각기에 접어들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경제협력 등을 우선 추진할 수 있다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내용이 다시 한 번 상기될 필요가 있다. 최소한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의 재개에 대한 상당한 의견 접근이 남북당국회담에서 이루어 져야 박근혜 대통령이 이 성과를 가지고 한중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방법론을 논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남북의 협의에 의해서만 풀릴 수 있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문제가 해결돼야 국제적 수준의 문제가 돼버린 북핵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최고의사결정기구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될 수 있다.

6자회담 재개 가능성도

비핵화 문제를 풀어갈 방법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상정할 수 있는 것은 6자회담의 재개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 것에 대해 일본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러한 가능성에 더욱 강한 근거를 제공한다. 일본은 한반도 상황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틀이 와해되는 분위기에서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참여를 돌발적으로 북한에 파견함으로서 국제정치에서의 지렛대를 확보한 바 있다.

▲ 아베 신조 일본내각총리대신(뉴스1)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하게 되고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갑작스럽게도 자칫 잘못하면 북핵을 둘러싼 문제 해결의 틀에서 일본이 배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납북자 문제 등을 이슈로 하여 7월 참의원 선거 승리와 개헌 여론 조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오는 17일부터 이틀간 진행되는 G8정상회담에서 미일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자리에서 주요하게 의견조율이 될 만한 문제는 미중정상회담의 결과와 동중국해 영토 분쟁 문제, 일본인 납치 문제, 소위 양적완화에 대한 양해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미국 뿐만이 아닌 동아시아 주변국들과의 협의를 통해서도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6자회담의 틀이 재가동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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