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위기다. 대선 패배로부터 시작된 민주당의 위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위기는 신당 창당 등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독자세력화 논의에 불이 붙으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은 호남 지역에서 40%의 지지율로 민주당(18%)과 새누리당(9%)를 크게 앞섰다. 또 전주KBS와 전주MBC, 전북도민일보가 전북도민 100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도 ±3.1%p)를 실시해 지난달 28일 보도한 결과에서도 안철수 신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5%에 달해, 22.8%의 지지를 얻은 민주당의 배에 달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뷰가 지난달 26~27일 전북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800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율 조사(RDD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3%P)를 벌인 결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26.6%로 안철수 신당(45.4%)에 18.5%포인트 뒤졌다. 민주당의 안방이라는 호남에서조차 안철수 신당을 꺾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취임 1달을 기념해 3일 진행된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호남 지역에서의 지지율이 낮은 것과 관련해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반영된 것이며 그 핵심은 대선에서 진 것”이라고 단평했다. 그러면서 김한길 대표는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쌓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그냥 되는 것은 아니고 민주당이 그분들이 기대하는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한길 대표의 취임 1달 기념 인터뷰를 진행한 한겨레신문의 5일자 보도.

김한길 대표는 ‘변화’의 핵심을 두 가지로 꼽았다. 한 가지는 정상적인 정당민주주의의 구현이고 또 한 가지는 정책정당으로의 변모이다. 특이한 것은 민주당을 향한 지지를 회복하는 방안으로 정당민주주의의 구현을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정당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겠느냐는 한겨레신문 측의 질문에 김한길 대표는 “놀랍게도 관심이 있다”면서 “여론조사와 면담조사를 진행한 결과 국민들이 민주당에 대해 요구하는 변화의 1순위는 내부 개혁”이라고 답했다.

당직자 구조조정으로 정당민주주의 구현?

그러나 국민들의 원하는 ‘내부 개혁’을 김한길 대표가 진행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김한길 대표가 진행하는 내부 개혁이 다소 엉뚱하게도 민주당 사무처 당직자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한길 대표는 “중앙당 당직자를 100명 이내로 두게 돼 있는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아 중앙당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하다”며 “아픔이 있더라도 정상화할 것”이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지난달부터 시작된 민주당 사무처의 명예퇴직을 둘러싼 논란을 정면돌파 할 것이라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박기춘 사무총장. (뉴스1)
4일 국회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가진 박기춘 민주당 사무총장 역시 사무처 당직자 구조조정에 대한 언급을 했다. 박기춘 사무총장은 “10년간 야당생활을 하다 보니, 고참급 사무처 당직자들의 대외진출 기회가 전무 하다시피해 인사적체가 심해져 당 사무처 조직 구성이 역피라미드 형태가 되어버렸다”고 발언했다. 또, 박기춘 사무총장은 “많은 분들이 ‘백년 가는 정당’을 말씀했지만, 현재 구조로는 당장 1년 후도 기약할 수 없다”며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0일부터 국장·부국장급 당직자 105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당직자들 일부는 “협의나 대화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명예퇴직을 추진해 당직자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사무처 당직자 80여명이 민주당사에서 간담회를 열고 지도부 사과, 재발방지 약속, 공정한 정기인사 등의 요구안을 박기춘 사무총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무처 구조조정을 반김한길파 숙청이나 친노 솎아내기 등이 아니겠냐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박기춘 사무총장은 “더 큰 민주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계파청산'에는 고위 당직자부터 평당원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당의 심장인 사무처부터 친노․비노, 주류․비주류의 명찰을 모두 떼어서 이제 박물관 유물로 보관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적 정당의 틀 갖추려는 노력 병행돼야

박기춘 사무총장의 이러한 발언에도 사무처 당직자들은 김한길 대표 체제의 구조조정 방식이 비합리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상황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말이 특별명예퇴직이지 강제적인 구조조정이다”라며 “손학규·정세균 대표 시절에도 이런 식의 선전포고는 안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해놓고 좀 너무한 것 같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한 시사평론가는 “민주당의 문제는 구성원들의 역량이 당으로 전혀 모아지지 않고 오히려 각 계파가 당을 이용하기만 한다는 것”이며 “민주당의 경우를 보면 과연 정당으로서 합리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럽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상황은 민주당의 정책연구원인 민주정책연구원의 문제에서 더욱 잘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패배 이후 일부 언론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와 민주정책연구원을 비교하며 여의도연구소가 상당한 역량을 가진 전문성 있는 집단으로 권한을 보장받고 있는데 비해 민주정책연구원은 당 지도부의 성향에 따라 흔들리며 사실상 중앙당에서 밀려난 당직자들의 인건비를 지급하는 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진단을 앞다투어 내놓은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민주당의 이러한 상황이 대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됐으며 이 문제가 극복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살 길이 없다는 진단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책이 ‘당직자 구조조정’으로 귀결되며 당 지도부가 이것을 무리하게 ‘국민이 원하는 정당민주주의’로 연결시켜가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러워 보이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민주당으로서는 현대적인 정당의 꼴을 갖추고 합리적인 조직적 틀을 도입하는 전면적인 당내 개혁에 돌입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게 차라리 낫지 않느냐는 여론을 귀담아 들을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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